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Sep 24. 2020

내가 상담을 받다니...

episode #10

앞선 글 <난임 우울증을 겪었다>에서도 언급했지만, 상담은 내 삶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개인 상담에 이어 참여한 집단 상담은 거의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우울감은 개인 상담으로 충분하다고 느꼈지만, 집단 상담이란 것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알고 보니 집단 상담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 듯했다. 여러 명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로켓맨'의 집단 상담 장면처럼 여럿이 둘러앉아 자유롭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있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일정한 순서에 따라 상담을 이끌어나가는 방식도 있다. 내가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에서 받은 상담은 후자에 속했다.




매주 1회 진행하는 4주짜리 프로그램. 5명의 내담자와 1명의 상담사, 1명의 보조 상담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나눠준 파일에는 동의서, 설문지, 여러 장의 유인물이 들어있었고, 서로의 닉네임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상담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시간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자신, 타인, 미래에 대한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알아차리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의 감정과 이유는?

난임 시술을 결심했을 때 나의 감정과 이유는?

앞으로 내가 원하는 감정과 이유는?

난임 시술 과정 중 힘들었던 순간, 감사했던 순간?

질문들에 답을 적는 동안 나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었다' '슬펐다' '기뻤다' '좋았다'로 돌려 막기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유인물에 있던 다양한 감정 어휘들이 적힌 '감정 카드'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들뜬', '기대되는' , '심란한', '무료한' 등 60여 가지의 긍부정의 감정 형용사들을 보면서 나의 감정을 세밀하게 짚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시간은 '생각(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나의 왜곡된 생각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안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는 시간이다. 이것은 심리학자 Beck의 인지치료기법을 적용한 것으로, 인지 왜곡의 유형 11개가 적힌 유인물을 보면서 내 안의 왜곡된 생각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지 왜곡 유형 : 과잉 일반화, 정서적 추론, 흑백논리, 독심술, 재앙화, 낙인찍기, 선택적 추론, 개인화, 당위적 사고, 의미 확대, 임의적 추론 등


우리는 동일한 상황에서 모두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고,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각자의 관점(schema, 인지 도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탁자 위의 물이 반쯤 담긴 유리컵을 보면서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생각이 잘 안 고쳐지는 것은 각자의 스키마가 깊이 뿌리내려 있어서다.


상담사가 질문을 던졌다.

만약 길을 가는 도중, 앞에서 걸어오던 대학교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교수님이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어떤 기분,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질문에 대해 나를 포함한 집단 상담 참여자들은 대답했다.

"기분 안 좋죠. 나를 무시하나? 그런 생각할 거 같은데요."

"겸연쩍어질 거 같아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이상하게 변했나 하면서 씁쓸할 것 같기도 해요."

"글쎄요. 저는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요. 바쁘거나 시력이 안 좋아서 잘 못 보셨을 수도 있죠."


사실 대학 교수님이 지나쳐버린 이유는 그분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가 없다. 다만 지레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때, 이 지레짐작 안에 각자의 스키마가 드러난다. 만약 자신을 자책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인지 왜곡 유형 중 '개인화'가 작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적 사건의 원인을 자신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개인화'의 오류이다. 자신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인지 왜곡 유형 중 '의미 확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 상황을 자기 자신에 대한 무시로 확대 해석하는 인지 왜곡일 수 있다.


상담사는 <거짓말탐지기 연습>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기분 나쁜 상황은 무엇이고, 그때 어떤 '자동적 사고'가 생겼는지,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대신할 긍정적인 대안적 반응은 무엇일지 적어보는 과제였다. 나는 시험관 실패의 상황을 적었다. 그때 드는 부정적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 자동적 사고는 "이번에도 실패했으니 이제 해봐야 소용없다."였다. 이것은 인지 왜곡 유형 중 '과잉 일반화'에 해당된다. "자녀가 없으면 결국 이혼하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인지 왜곡 유형 중 '재앙화(파국화)'로서, 최악의 극단적 결과를 예상하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내 안의 부정적 스키마를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바꾸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제일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시간은 '행동'이 주제였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서도, 인지도 중요하지만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행동계획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적정하게 세우고, 돌발사태가 생길 경우에는 어떻게 계획을 수정할지 '대안 계획'까지 세우도록 했다. 예를 들어 '운동하기'를 마음먹었다면, 행동계획은 "매일 아침 6시 1만 보 걷기"이다. 돌발사태 계획에서는, "만약 늦잠을 잔다면 저녁에 1만 보 걷는다"라고 적어보는 것이다.


과제는 계획 내용을 바탕으로 한 주 동안 주간 활동 차트를 작성해오는 것이었다. 한 주간 내가 한 일을 시간대별로 적어보니 내 생활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났다. 목적 없는 영상 시청시간이 많았다. 의미 없이 소비되는 시간이 많았음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네 번째 마지막 집단 상담 시간. 상담을 총 마무리하면서 그간 어땠는지를 나누었다. 또, '최고로 가능한 자기(BPS ; Best Possible Self) 훈련'이란 것을 했다. BPS훈련은 긍정성, 낙관성 훈련이다.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도 좋다. 10년, 20년 후 최고로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말이 안 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이 훈련을 그림으로 그렸다. 20년 후 되고 싶은 나와 나의 가정, 나의 일을 상상하니 꿈에 한걸음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거기서 끝나면 안 되고, 그 꿈을 위해서 10년 후, 5년 후, 3년 후, 당장 내년, 내일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꿈은 그저 영화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꿈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니 마음에 꿈틀대었다.





집단 상담 마지막 시간에 받은 꽃다발

집단 상담은 설문지와 후기 쓰기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사실 집단 상담의 묘미는 내담자 간 소통을 통한 공감과 위로일 텐데, 코로나로 인해 내담자 간 친밀한 교제는 이루어지지 못해 서로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헤어지는 길에 상담사는 내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꽃다발과 작은 선물을 건네었다. 마음을 위로하는 꽃이었다. 모두들 서로에게 감사를 건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새로운 경험 또 하나를 한 셈이다. 나의 감정에 대해, 나의 왜곡된 생각에 대해, 나의 실생활 패턴에 대해, 그리고 내 꿈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개인 상담으로만 끝났다면 알 수 없었을 것들을 집단 상담을 통해 배웠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무엇보다 나를 한 뼘쯤 더 알게 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임 우울증을 겪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