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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16. 2020

난임 우울증을 겪었다

episode #09

생전 우울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난임 우울증을 겪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이식이 또다시 피검사 수치 0.1로 마무리되자 마음이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4년여의 기간 동안 십수 차례의 채취, 다섯 번의 이식을 겪으면서 분노, 우울감, 좌절감, 죄책감 등 갖은 부정적 감정을 경험했지만, 그 감정을 오래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일주일 내로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섰다. 슬픔에 싸여 실패를 곱씹고 있을까 봐 휴가를 내 내 옆에 있어주고, 화사한 꽃다발을 사들고 오는, 따뜻하고 살가운 남편이 일어설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남편의 노력도 소용없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번 배아 이식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믿고 모든 총력을 다했었기에 그만큼 허탈감도 컸다. 내 몸 상태가 폐경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고, 지칠 대로 지쳐 그냥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이식 날부터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최소한으로만 움직였다. 매 순간을 기분 좋은 상태로 보내기 위해 스트레스가 될 만한 것은 모두 다 제거했다. 처리해야 하는 일도 모두 미뤘다. 오로지 내 기분좋은대로, 나 편한 대로 열흘을 보내었다. 이번엔 될 거라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아니 이쯤 했으면 이번에는 되어야 한다는 확률 논리도 작용했던 것 같다. 나름 호기롭게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진료실에서 주치의의 표정을 본 순간 바로 직감했다.

 '안 됐구나...'


진료실에서 나오는 나에게 남편이 소곤대며 물었다.

"뭐래?"

"..."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의 고갯짓을 못 알아들었는지 남편은 다시 물었다.

"아, 안 됐다고!"

조용하지만 대차게 쏘아붙이고는 수납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납 후 남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때 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남편은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물을 틀어놓고는 크게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내 앞에서 늘 웃었고, 파이팅 넘쳤던 남편의 속마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아렸다. 그날도 남편은 회사에 반차를 취소하고, 아예 하루를 쉬면서 내 옆에 있겠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남편을 달래어 출근시키고, 보다 만 드라마를 보면서 오후를 그렇게 나름 쿨하게 보냈다.


이제는 이력이 나서 이식 실패가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지만, 실패는 언제나 아팠다. 다른 여느 때처럼 며칠이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금요일 저녁에 떠난 횡성 휴양림으로의 여행도 숙제를 미루고 노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덤덤한 듯 하루하루를 보내었지만, 일상으로의 회복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식을 기점으로 시간이 멈춘 듯, 마치 아직도 이식기간인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누워서 TV와 영상들만 주야장천 봤다. 모닝 루틴으로 매일 하던 QT와 성경통독은 눈으로 검은 글자만 훑을 뿐이었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았고,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자주 멍 때리게 되었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거나 거실 한켠에 놓여있는 식물들만 쳐다보았다. 자꾸 눈물이 났다.


평소 그렇게도 당당했던 나는 왠지 죄인 된 심정이었다. 시어머니는 통화에서 "나는 그런 거 전혀 신경안 쓰는 현대식 엄마여. 그러니께 니들끼리 잘 살면 되야. 맘 편히 살어." 라고 며느리를 애써 다독이셨지만, 그 말이 내 마음에 닿지는 않았다. 시어머니가 스트레스원이 아닌 것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내 절망의 근원이 시어머니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말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었다. 나는 내 존재 가치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나 같은 거 뭐하러 사나' '나는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은 그때, 나는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찾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상담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호기심 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반으로 개인상담을 신청했다. 우울증 상담을 신청했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때서야 남편은 내 상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어찌할 줄 몰라했다. 남편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어떠한 위로도 먹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시험관 시술을 그만하자고 했다.

"당신이 아프면 아이가 있는 게 무슨 소용이야. 힘들면 그만 하자."

내 짐을 덜어주려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그 말도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는 보건복지부 위탁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상담기관으로, 난임 부부 및 임산부를 위한 상담 사업을 하고 있다. 온라인 예약 후 상담 하루 전날 상담사로부터 확인 전화가 왔고, 가는 길에 대한 안내를 들었다.


일대일 개인 상담은 상담사와 우울 진단 설문지를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센터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던 설문으로, 내 경우 '중증 정도의 우울'로 나타났다. '어떻게 여기를 찾게 되셨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나의 이야기는 상담사의 꼬리는 무는 질문에 이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1시간 동안 대체로 나는 이야기하고, 상담사는 들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상담사는, 나이는 어려 보였지만 노련한 상담사다운 말투를 지니고 있었다. 어찌나 그 목소리와 말투가 나긋나긋한지 듣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상담사는 내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다 말고 울음이 터져 나와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남편한테 제일 미안해요."

"아이가 없어도 가정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때 상담사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 붉어진 눈이 고마웠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내 얘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같이 울어주었다.


1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상담사는 마무리하며 그제야 한 마디를 건네었다.

"애도의 시간 갖기를 권해요."

더불어 남편과의 여행도 제안했다. 난임 기간을 통해 배운 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도 말했다. 아이가 있어야만 완전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쳐야 할 비합리적 신념이라고도 했다.


상담사의 짧은 몇 마디의 말은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는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것이다. 실패로 인한 슬픔과 절망을 어떻게든 빨리 수습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울을 키웠던 것 같다. 나의 비합리적 신념도 알았고, 난임으로 애쓴 시간이 헛된 시간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개인 상담 이후 바로 일상 복귀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상담사의 조언이 회복의 기초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듯이, 시간에 기대어보기로 했다. 넘어졌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훌 털고 일어나기보다 넘어진 채, 있는 그대로의 아픔을 느껴보기로 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편해졌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쉼을 주면서 동시에 집단 상담에도 참여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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