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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Dec 12. 2020

슬기로운 난임 생활: 배우기의 힘

episode #14


난임 생활을 슬기롭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난임 생활은 일종의 싸움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을 견디는 마음의 싸움이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을 공유해본다.




난임 생활이 시작되면서 모든 관심을 난임 정보 수집에 쏟아부었던 때가 있었다. 온라인 난임 카페를 수시로 들락거렸고, 난임 블로그의 글을 찾아 읽었으며, 유튜브를 검색했다. 하루 중 수면 시간과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 온통 관심은 난임 정보였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었고, 프리랜서처럼 일을 하게 되면서 난임에 집중하는 시간은 더 늘어갔다.

하루 24시간을 난임에 집중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난임 정보는 내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주고 마음에 작은 위안을 줄 뿐이었다. 분명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힘이 되기는 한다. 생식 기전을 알고, 도움이 되는 음식, 영양제, 생활수칙들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 난임 기간을 줄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난임 의사도 이런 대체의학적 요법을 필수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난임계 고수 '꼴통 주부'님은 영양제니, 운동이니 시험공부하듯이 하는 것보다 스트레스받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성공요인이라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올해 초 새해 계획을 세워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놓았다. 남들 계획한다는 영어공부와 운동을 포함해 악기 배우기, 드로잉, 자격증 따기, 성경 1독, 북로그(서평 쓰기 블로그), 마인드맵 배우기 등을 기록해두었다. 거의 1년에 다다른 지금 결산해보았더니, 마인드맵을 제외하고 계획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1. 자격증 따기
올해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직업상담사' 자격증 실기 시험이었다. 작년 초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실기시험을 계속 미루고 있던 차였다. 코로나19로 시험 일정이 불안정해지면서 지금 공부해서 올해 따놓지 않으면 결국 필기시험을 다시 봐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달 동안 오랜만에 머리 아프게 외워 가며 공부했고, 5월 시험에서 합격했다. 공부한다고, 시험 본다고 해서 시술을 쉬지 않았고, 병행했었다.

2. 영어공부
도대체 언제까지 영어공부를 해야 할까?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일 영어 루틴을 실행하고 있다. 해도 해도 제자리인 것 같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는 재미, 한 뼘 정도는 성장하고 있다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지속 중이다. 나의 영어 루틴은 꽤나 간단하다. 매일 5~10분 남짓한 유튜브 영어 강의를 듣고 따라 말하고, 영어 소설 한 페이지를 읽는 것. 만약 30분 이상의 강의이거나 10페이지씩 읽는 루틴이었다면 아마 루틴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성취가 습관 만들기에는 더 좋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3. 바이올린 배우기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우다 말았다. 손가락도 짧고 재능도 없어서 체르니 30번을 끝내지 못한 채 피아노 학원을 관뒀다. 지금 생각하면 취미로라도 할 걸 하는 맘도 든다. 그 당시에는 왠지 진로와 관련된 것만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나이 먹고 이제 와서 '평생 함께 할 친구 같은 악기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이올린 학원을 찾았다. 언젠가부터 바이올린 선율에 매력은 느껴 주변에 바이올린 하는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전공자들은 다들 말렸다. 피아노와 달리 현악기는 소리 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많은 아이들이 깽깽이 소리를 내다 6개월 안에 관둔다며 우쿨렐레나 아예 오카리나를 권했다.

망설이기를 약 5년 동안 한 것 같다. 하지만 호기심쟁이인 나로서는 그들의 말만 듣고 단념할 수 없었다. 올해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도전하기 좋은 기회였다. 음악학원 수업 3 회차쯤 됐을 때,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꼭 바이올린을 하셔야 되는 이유가 혹시 있으신가요? 바이올린 말고도 악기 종류는 많아요." 내 바이올린 소리는 그야말로 깽깽의 극치였다. 게다가 난 팔도 짧고, 손가락도 짧고, 어깨는 또 처졌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선생님도 정말 듣기 싫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깽깽이 소리를 결국 이기고, 바이올린을 넉 달째 지속 중이다. 잘하든 못하든 중요치 않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기에.

4. 마카 드로잉 배우기
최근 취미를 하나 더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평생 함께 할 것은 음악뿐 아니라 미술도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취미 플랫폼이 여럿 생기면서 학원이나 개인 교습 없이 집에서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다양한 미술 유형 중 난 마카와 색연필을 이용한 강좌를 선택했다. 누구와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시간에 강의를 보고, 따라 그릴 수 있어 좋다. 20~30분 남짓한 시간. 드로잉에 흠뻑 빠져 몰입하고, 생각지도 못한 예쁜 결과물이 내 손 끝에서 탄생할 때, 비로소 '이런 게 힐링인가' 생각한다.




난임 정보 찾기, 난임 지식 공부로만 점철되었던, 단조롭기 그지없던 내 일상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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