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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pr 09. 2021

난임기간 최악의 스트레스는?

episode #15

난임부부는 난임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의 부담과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의 강도도 크지만, 스트레스의 유형도 다양해서 어느 하나를 해결한다고 스트레스가 줄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다.


매일 시간 지켜 맞아야 되는 과배란 주사는 그중 하나의 스트레스이다. 정확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1~2시간 차이는 상관없다고 하나, 웬만하면 알람을 맞춰놓고 매일 주사 맞는 시간을 지킨다. 사실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긴장을 일으키는 것은 자가주사 자체이다. 과배란 초기에 맞는 주사는 하나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기배란억제주사, 난포성숙주사 등등 다양한 주사를 맞아야 되는데, 주사마다 맞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자가주사를 할 경우 주사 놓는 법을 익혀야 한다.


원래 주사 바늘에 대한 공포가 있는 사람이라도 난임시술 중에는 없어야 된다. 주사 바늘과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사를 실수 없이 조작해서 투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주사액 용량은 한정돼 있어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날에프 같은 펜 형태의 주사는 부담이 덜 하지만, 가루와 주사액을 조절해야 하는 바이알 타입 주사의 경우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신경을 쓰다가도 잠깐 정신을 놓으면 실수하기 쉽다. 내 경우, 공기를 안 빼고 배에다 찔렀다가 모기 물린 듯 부어오르기도 했었다.


평생 주사기를 잡아본 적 없는 내가 이렇게나 주사를 수십 번 놓게 될 줄은 몰랐다. 한 주기가 지나갈 때마다 "이젠 이 주사 조작이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주사는 늘 어색하고, 무섭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자가주사보다 엉덩이에 맞는 근육주사가 더 스트레스일 경우가 많았다. 과배란 주사인데 엉덩이 주사를 처방받는 경우가 있다. 이  주사는 자가주사가 불법이기 때문에 주사를 맞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보건소로 가야 한다. 만약 다니고 있는 난임 병원이 집 근처에 있다면 그 병원으로 가면 되지만, 집에서 멀 경우 동네 내과나 산부인과에 주사를 맞을 수 있는지 먼저 문의해야 한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에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을 체크해둬야 한다. 한 번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중급 규모 산부인과인 봄빛병원에 과배란 주사를 맞을 수 있는지 문의했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주사를 맞을 수 있으나, 자기네 주사약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주사를 공짜로 맞혀달라는 것도 아닌데, 주사약까지 구매해야지만 주사를 놔주겠다니. 요즘 병원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목숨 가지고 장사하는 곳으로 전락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코로나로 보건소 가기도 힘든데,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서 '주사 구걸'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서글퍼질 때가 있다.


이식 전후로 맞는 슈게스트 주사와 같은 프로게스테론 주사도 나름 스트레스였다. 일명 '돌 주사'라 불릴 정도로 엉덩이를 딱딱하게 만든다. 근육이 뭉치는 것인데, 매일 엉덩이에 한쪽씩 번갈아가며  맞기 때문에 그날그날 뭉치지 않게 근육을 풀어주는 게 관건이다. 나는 워낙 몸이 근육질이어서 잘 뭉치는 체질이라, 돌 주사는 쥐약이었지만, 질정 알레르기가 있는터라 주사 외엔 방도가 없었다. 뭉침을 풀어주는 별별 도구를 다양하게 사용해봤는데, 그중 추천하는 건 돌돌이도 아니고, 남편의 손  마사지도 아니다. 일단 남의 손은 강도 조절이 안되고, 내 손은 팔이 빠질 듯이 아프고 힘들다. 따뜻한 동그란 볼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마사지해주는 기기가 제일 편했다.






사실 난임 여성이 난임 기간 중 직접적으로 가장 크게 느끼는 스트레스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난임 커밍아웃 단계부터가 시작이다. 커밍아웃을 안 하면 직장이나 가족 행사에서 배려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활이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커밍아웃을 하면 스트레스가 없을까? 주변의 과도한 배려가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난임시술을 커밍아웃 한 순간, 주변 사람들은 본인이 경험하지 않았지만, 다른 정보원을 통해 알게 된 온갖 정보와 사례들을 전달해주려 한다. "00 한의원 한약 두재 먹고, 우리 시누이 자임됐잖아." , "내가 아는 사람은 와이프가 휴직하자마자 임신되더라고." 관심과 배려도 어떨 땐 스트레스가 된다.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이 스트레스원이 되기도 한다. 듣기로는 지인의 시어머니는 난임 병원에도 따라다니셨다고 한다.(헐...) 한약을 지어주시거나 좋은 음식을 보내주시거나 병원비를 찬조해주는 정도를 넘어서는 과도한 친절과 배려, 아니면 반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관여하지 않는 무관심과 방관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좀 더 강도 높은 '사람 스트레스'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이 임신을 했을 때가 아닐까. 아예 나보다 한참 어리거나 완전히 다른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의 임신 소식에는 크게 동요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면서 나와 감정을 공유했던 사람의 임신 소식은 희망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난임부부에게 최악의 스트레스는 무엇일까? 감히 단언컨대, 최고의 스트레스는 '내가 문제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일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생명'의 문제는 특별하다.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난임 병원 주치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마지막은 누가 정하나요? 제가 정하는 건가요.."


언제까지 이 시험관 생활을 해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물론 임신을 하게 되면 저절로 마지막이 정해진다. 반대로 폐경도 마지막을 암시해줄 것이다. 그러나 임신도 폐경도 아닌 상황이라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인간은 자기결정적인 존재라고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인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난임 상황에서는 나의 '자기결정'이 온데간데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하나 있다면, 내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한다는 그 정도랄까. 나머지 상황은 내 몸 컨디션과 의사의 처방과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이 난임 상황이 스트레스가 된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성적이 조금이라도 올라야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난임은 나의 노력과는 별개의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하고자 하는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 그저 로또를 기다리는 기분이랄까. 나에게 찾아올지 아닐지 모를 그 운에 기대어 희망고문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낚시하는 사람과 같다. 언제 물고기를 잡아 올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맛에 낚시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낚시가 생존과 관련이 없는 단순 취미니까 가능한 소리다. 시험관은 취미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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