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가시 감사, 진심일 수 있을까?

장미부케와 결혼생활

by 한꽃차이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매번 궁금했다. 장미꽃 가시가 알고 보니 꼭 필요한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인지, 나를 찌르는 장미꽃 가시까지도 감사해내겠다는 인내의 고백인지.


꽃시장에 가면 단골집 사장님께 "가시 적은 걸로 추천해 주세요."라고 하곤 한다. 특히 100만 원어치 꽃을 사서 행사데코를 해야 하거나 30명 수업을 할 때는 다듬는 시간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장님이 대꾸하신다. "가시가 세야(발음은 '쎄야', 억양도 강조톤) 꽃이 튼튼한겨~"


맞는 말이긴 하다. 확실히 가시가 우악스러운 장미는 자기 보호를 잘해서 튼실하다. 그렇다고 다듬는 수고가 가뿐해지고 장미 가시가 고맙지는 않다. 가시가 적은데도 상태가 좋은 몇몇 종이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하다. 이런 종이 부케에 많이 쓰인다. 부케 줄기에 가시 훑어낸 흔적이 적을수록 깔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미부케가 만들기 수월할까? 신부님들이 많이 선택하는 만큼, 과연 장미는 무난한 꽃일까? 가시제거기로 쓱쓱 문지른다고 스르륵 떨어지지 않는 장미 가시가 많다. 부케용으로 쓰려면 가시제거기에 긁힌 흔적과 상처를 줄기에 남기지 않기 위해 칼이나 가위로 일일이 제거하는 게 정석이기도하다. 사람이나 꽃이나 가시를 솎아낸 후 멀끔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부케에 많이 쓰이는 수입장미는 물 건너오면서 줄기 속 수분이 빠져 줄기에 힘이 없어진다. 장미는 튼튼한 꽃이라고들 생각한다. 온도 변화가 크지 않은 상태로 물에 잘 꽂혀있을 땐 맞는 말이다. 골판지에 포장되어 오기에 겨울이면 더 변수가 많다. 실외와 실내 온도차가 40도까지 나니 골판지가 눅눅해질 수 있다. 안경에 서리 끼듯,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히기 때문이다. 그 습기가 장미꽃잎에 스며들어 갈변하곤 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없듯이.


꽃잎을 한 잎 한 잎 떼어낸다. 똑똑 소리가 은근 시원스러우니, 이 지난한 과정에 리듬감을 더해본다. 매일 비슷한 날들에 음악만 다르게 깔아보아도 생동감이 생기니까. 꽃잎이 중간에 잘려 아래쪽이 남아있지 않고 흔적 없게 제거하는 손놀림은 꽤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최소 결혼 10년 차는 되어야 갈등 후에도 찌꺼기가 남지 않는 연륜이 되는 것처럼.


우선 겉잎부터. 장미 가장 바깥쪽은 겉잎에 싸여있다. 다소 투박하고 초록빛이 섞인 잎으로,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 잎을 시들었다고 하고, 젊은 층은 빈티지하고 내추럴하다고 떼지 않는 걸 선호하기도 한다. 부케에서는 이것까지 겉잎이라고 할만한가 애매한 꽃잎까지도 모두 없앤다. 상대방이 모호하게 싫어하는 것까지도 안 하면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듯.


이제 흠있는 꽃잎 차례다. 상처 났거나 갈변했거나. 겉은 괜찮은데 깊은 속까지 습져있기도 하고, 많이 떼어내야겠다 짐작했더니 속은 멀쩡하기도 하다. 살아봐야 아는 결혼생활 같다.


부케에 쓸 수 있을 합격선을 넘은 장미는 50~80%. 아직 꽃받침을 잘라내는 단계가 남았다. 꽃마다 5개씩. 평소에는 꽃아래쪽을 감싸는 고마운 존재지만 없애야 꽃이 동글동글해지고 부케가 완전무결해진다. 저렴하게 파는 장미부케를 보면 꽃등급과 크기부터도 다르지만, 꽃잎 꽃받침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여기까지의 공정에 공을 들여야 시작부터 다른 부케가 준비된다.

다 다듬었다고 한숨 돌릴 수 없다. 얼른 줄기 끝을 뾰족하게 잘라 물에 꽂아야 한다. 줄기 밀도가 촘촘한 만큼, 물을 충분히 흡수하는데도 다른 꽃보다 시간이 걸린다. 장미잎과 꽃잎, 줄기만으로 50리터 쓰레기봉투 절반은 금방 채워진다.


다른 부케를 다 만들고 난 뒤 장미 상태를 살핀다. 줄기가 짱짱해지고 물을 머금은 꽃잎이 활짝 벌어져 꽃이 커져있으면 비로소 한시름 놓는다. 기다림과 세심함은 어지간해서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만드는 여정에도 변수가 많다. 직선 줄기에 동그란, 모두 똑같은 꽃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처럼 조화의 세계에만 존재한다. 매끈한 표면과 단단함이 줄기를 서로 밀어낸다. 미세한 휘어짐과 툭툭 튀어나온 마디도 서로 붙어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꽃도 완벽한 공이 아니라 타원형이 더 많다. 꽃얼굴이 가장 예뻐 보이는 각도에 있어야 하는데 자꾸 돌아간다.


우리는 참 닮은 천생연분이지 했는데, 무척 다른 남남이라는 사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이고 나만 찔리는 미세 가시가 촘촘하거나 속이 곪아있을 수 있다. 서로 속이고 결혼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런 면모를 알게 될 만큼 누군가와 가까이 지낼 일이 없었을 확률이 크다. 내가 모르던 온갖 방어기제와 고집에 당황스럽다.


부케로 만들어지기까지 서로 밀착해 본 적 없는 장미들이 자석처럼 착 붙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삐걱거리며 맞춰나가는 게 당연하다. 가시도 겉잎도 그가 살아오는 동안 보호해 준 고마운 존재로 여겨볼까. 뾰족하고 거칠수록 험난하게 살아왔을지도. 찬송가 가사를 마주하듯 온갖 의문이 말갛게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그 불투명함이 어쩌면 희망이니까.


'장미꽃 가시 감사' 다음 가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연결고리 없던 앞뒤가 부케를 만들다보니 이어진다.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Thanks for home and Thanks for fireside

Thanks for hope that sweet refrain)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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