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의 신장 결석
사실 부케샵이라기보다 부케작업실이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소품샵, 기프트샵, 굿즈샵 등 샵이란 보통 뭔가 진열해 놓고 파는 곳으로 통용되니까. 부케샵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이렇게들 묻는 것도 당연하다.
"부케를 진열해서 팔아요?"
주르륵 늘어놓고 판매하면 재밌겠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드레스를 입고 완벽한 메이크업을 받은 신부님들이 웨딩촬영 전, 결혼식 전 들른다. 이 부케 저 부케 들어보며 (아직은 예비)신랑에게 묻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자기야 어느 게 어울려?"
어느 옷이 어울리는지도 어려운 보통의 남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꽃들과 올림피아드급 고난도 질문에 진땀을 뺀다.
"다.. 다 예뻐."
신부님은 입술을 샐쭉한다.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아무래도 은방울 부케에 시선이 가는데 가격이 4배다. 그 앞에서 서성거려 보는데 새벽부터 메이크업샵 다녀오느라 피곤한 신랑은 눈치 없이 하품만 한다. 이러다 결혼식 늦지 싶다. 자칫 다퉈서 못 가거나 진심으로 웃지 못할지도. 아, 이렇게 상상해 보니 그렇잖아도 예비신랑에서 신랑으로 넘어가기 위해 수많은 관문을 거쳐야 하는 남자가 안쓰럽다. 부케는 아무래도 신부 혼자 미리 정해야겠다.
상상력이 좀 과한 플로리스트는 눈을 살며시 감고 다시 그려본다. 신부님이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부케를 직접 들어보고 고르는, 브리저튼 부럽잖은 장면을. 드레스샵 안에 있는 부케샵은 어떨까? (드레스샵 사장님 연락 주세요 >.<)
어쩌면 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자라면 아니까. 옷만 입어보고 사는 게 아니라 가방, 구두, 스카프, 주얼리 같은 소품도 들어보고 신어보고 걸쳐보고 옷에 어울리게 매치해야 실패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패션에는 컬러, 크기, 체형, 질감 등 수많은 요소가 존재하기에. 물론 부케 전문 플로리스트는 신부님이 드레스 입은 사진만 보내줘도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부케를 매치하고 추천하지만, 신부님의 감탄을 듣고 싶다. "어머 이 드레스에 튤립이 어울릴 줄 알았는데 카라가 정말 찰떡이네요!"
긴 상상에서 벗어나 부케샵이라는 표현으로 돌아가보자. 어찌 보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니긴 하다. 같은 '샵'으로 끝나도 헤어숍, 네일숍 등은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예약해 두고 가야 하는 장소로 여겨지니까. 여하튼 예약 없이 살 수는 없는, 주문받은 부케만 만드는 곳이다.
개인 주문도 있지만 웨딩홀을 예약하면서 시안을 보고 주문한 신부님이 많다. 웨딩홀이나 웨딩플래너가 서비스로 제공하는 부케도 있다. 웨딩홀에 따라 부케의 시안과 급도 달라진다. 꽃 종류에 따라 또는 같은 꽃이어도 더 풍성하게 해달라고 추가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고급웨딩홀에서 주문한 부케, 금액 높은 부케는 신경을 바짝 쓰게 된다.
매주 금요일 이른 아침, 이번 주말에 예약된 부케꽃 컨디셔닝을 시작한다. 컨디셔닝이란 꽃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기 위해 다듬고 물 올리는 작업이다. 물을 올린다는 것은 꽃반대쪽 줄기 끝에서부터 꽃까지 물이 짱짱하게 거슬러 올라오도록 하는 일이다.
제일 비싼 은방울꽃, 줄기가 약하고 물이 잘 내리는 비싼 꽃들부터 휘리릭 컨디셔닝 한다. '물이 잘 내린다'는 것은 물에 꽂아놓지 않으면 금방 시든다, 물에 꽂아둬도 줄기가 물을 잘 빨아올리거나 머금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꽃을 최대한 싱싱하게 유지하는 기술이 플로리스트의 자부심이다. 줄기가 연약하지만 꽃이 여리여리하게 예쁘기에 가죽이 부드러운 명품 가방처럼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 꽃이나 사람이나 청순하면 최소 95점이니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컨디셔닝한 고급꽃은 대부분 온도에도 민감하니 얼른 꽃냉장고에 넣는다. 고이 모셔놓는 순간은 손도 발도 조심스럽지만, 냉장고문을 닫고 뒤돌아서면 발걸음이 빨라진다. 장미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장미 얼굴이 너무 작지 않고, 꽃잎에 습이 지지 않았고, 줄기도 약하지 않다면 한숨 돌린다. 가끔 꽃시장에 다시 보내달라고 해야 하는 사태가 생기니 꽃시장이 마감하기 전인 오전동안 모든 꽃을 점검해야 한다.
잘 휘는 카라와 튤립은 습자지로 잘 말아서 줄기가 일직선이 되게 해야 부케를 만들기 쉬워진다. 열탕처리(줄기 끝을 뜨거운 물에 10초 담가서 줄기가 물을 훅 빨아올리게 하는 기법)할 꽃들, 자잘하게 떼어낼 게 많은 꽃과 그린 소재들 등 아름다운 것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정성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만드는 시간보다 다듬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점심 먹기 전까지 컨디셔닝을 마치면 그날은 늦지 않게 퇴근할 소망이 생긴다. 일단 밥을 든든히 먹고, 날개뼈를 뒤로 접고 고개를 젖혀 스트레칭을 한다. 몰입해서 만들다 보면 자꾸 거북목이 되니까. 중간중간 물마시기와 화장실 가기도 잊지 않아야지. 신장 결석은 만들기 전에만 생각나는 직업병이다.
물이 충분히 올라서 준비가 된 꽃들부터 시작한다. 까다로운데 개인적으로 예쁜지 모르겠는 꽃들도 있어서 에너지가 바짝 쓰인다. 특별히 편애하는 꽃과 향기 진한 꽃들이 손끝에 코끝에 닿으면 다시 힘이 난다. 일을 하는지 힐링을 하는지,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는 신선놀음 같아진다. 장미부케는 맨 마지막에 만든다. 겉잎을 모조리 떼서 작아진 꽃얼굴이 다시 피어나고, 밀도 높은 줄기가 단단해지려면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
부케를 만든다고 끝이 아니다. 신랑의 가슴에 소속을 표시할 부토니에를 만들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 보낸다. 사진으로 보면 수정할 부분은 언제나 보인다. 아마도 내 눈에만 보이겠지만, '일생에 한 번뿐'은 모든 노고를 감수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언제나 예상보다 늦어지는 퇴근시간, 문을 잠그면 알리바바가 보물이 숨겨진 동굴 바위를 닫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집에 도착해서도 꿈결 같은 황홀감이 남아있다. 숨을 훅 들이마시면 오늘의 향기가 선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