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이 따뜻하면 이 부케 주문하지 마세요

필까 봐 클까 봐 걱정입니다

by 한꽃차이

주문받으면 걱정되는 부케가 있다. 사실, 마음 편한 부케는 거의 없긴 하다. 꽃을 못 구할까 봐, 딱 맞는 크기와 컬러가 없을까 봐, 싱싱하지 않을까 봐, 가격이 너무 오를까 봐 등등. 아무리 수년간의 경험과 데이터가 쌓여있어도 꽃은 생물이라 다음 주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반년 전에 주문받으니까. 여름에 딸기케이크 주문을 미리 받는 듯한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튤립은 무던해 보이지만 꽃시장 상황과 가격 외에도 기본적인 변수가 늘 있다. 첫째는 꽃잎, 둘째는 그린잎, 셋째는 줄기다. 그러니까 모든 부분을 다 갖추기 쉽지 않다. 튤립에 얽힌 전설처럼.


네덜란드의 한 소녀가 세 청년에게 동시에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왕관을 주겠다는 왕자, 대대로 내려오는 명검을 주겠다는 기사, 금고를 주겠다는 부자상인. 이 지점에서 기혼 플로리스트는 세속적인(?) 상상에 빠져든다. 왕관과 명검은 받아서 어디 쓰지도 못하잖아? 왕권은 언제든 찬탈당할 수 있고 기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당연히 상인 아닌가? 비련의 여인이나 과부는 피해야지.


그러다 옛날에는 신분이라는 기준도 중요했겠다 싶다. 게다가 왕자는 우월한 외모와 지적인 매력으로 바라만 봐도 세상 다 가진 듯했을지도 몰라. 기사는 남자다운 박력에 근육질이라 말을 태워주면 설레고 듬직했을 거야. 그런데 상인은 배는 좀 나왔어도 여러 나라를 다녀 4개 국어를 하는 매너남 이야기꾼이라 자꾸 웃게 한다면? 그녀의 결정장애가 공감되기 시작한다.


결국 소녀는 3가지를 모두 소유했다. 꽃의 여신 플로라에게 자신을 꽃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으로. 인간으로서는 다 가질 수 없었기에 택한 승화일까 회피일까. 누구나 차라리 꽃이고 싶은 때가 있기에 나무랄 수는 없겠다. 창의적이고 관대한 여신님은 왕관 모양의 꽃잎, 칼 모양의 잎, 금화 모양의 구근을 조합해서 튤립을 창조해냈다. 꽃의 여신도 편한 직업은 아니구나 싶다.


나의 신부님도 소녀만큼의 고민으로 그 남자를 만나고 무려(!) 결혼을 결심하지 않았을까. 준비과정 중에 최소 100여 가지를 기어이 결정해 낸 후 튤립도 선택했겠지. SNS에서 신부님의 결혼준비 리스트 수십 가지를 보면 부케는 비워져 있을 때가 많다. 예식장, 드레스, 메이크업, 스튜디오처럼 빠르게 선점해야 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잘 모르겠거나 다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렇게 결정에 지친 신부님을 떠올리다 보면 더욱, 튤립이 후회 없는 결단이 되도록 해드리고 싶어진다.


퍼펙트한 튤립부케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꽃잎이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튤립은 곧 에버랜드다. 꽃잎 하나하나 싱그럽고 꼿꼿하게 왕관처럼 모아져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조금만 따뜻하면 훅 벌어져 아네모네나 양귀비처럼 보인다. SNS에 이런 질문이 올라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확 벌어져 거의 늘어진 튤립 사진과 함께, "튤립인 줄 알고 샀는데 이거 무슨 꽃이죠?"라고 묻는 글이었다. 시든 게 아니다. 따뜻하거나 햇빛을 쪼였을 뿐이다.

신부님 역시 동그란 모습을 기대한다. 청순하면서도 왕관 같은 꽃은 튤립뿐이라 선택했으니까. 이랬다 저랬다 했을 소녀의 마음처럼, 튤립은 온도에 가장 민감한 꽃 중 하나다. 조금만 따뜻하거나 햇살을 받으면 3분 안에 완전히 다른 꽃이 된다. 꽃잎을 직각을 넘어 아래쪽까지 향해버린다. 겨울 예식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히터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일단 예식장은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1번, 투명한 고무줄로 튤립을 한 송이 한송이 고정하기. 공주님을 낳아 두세 돌 되었을 때, 얼마

몇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행여 빠질까 아플까 조심스레 묶어주는 바로 그 고무줄이다. 아가만큼 연약한 튤립 꽃잎이라, 혹여나 튤립이 찢어질까 눌릴까 손이 떨린다. 투명이라 눈에 잘 안 띄니 그대로 예식에 쓰기도 하고 예식 직전 고무줄을 제거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쓰지 않는 방법이다. 아무리 남의 눈에 안 보여도 내 눈에 예쁘지 않고, 고무줄 풀다가 꽃잎이 찢어지는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다. 혹시 튤립부케를 주문한다면, 고무줄을 두는 곳은 되도록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2번, 리플렉싱 해서 쓰기이다. 리플렉싱이란 꽃잎을 뒤집어서 꽃을 크게 만드는 기법으로, 튤립과 장미에 많이 쓴다. 뒤집어질까 봐 걱정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꽃잎을 뒤집어서 쓰는 거다. 꽃잎이 찢어지지 않게 뒤집는 노하우가 손에 익었어도 늘 숨을 참게 되는 작업이다.


커진 튤립은 확실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부케 역시 주문은 꾸준하지만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다. 행사, 프로포즈에서는 리플렉싱 효과를 톡톡히 보고 즐겨 쓰지만, 부케만은 꽃마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하나가 확 튀기보다 조화를 이루게 하고 싶다. 리플렉싱 한 꽃잎이 행여 온도와 부딪힘으로 오므라들거나 찢어지는 리스크가 반갑지 않기도 하다.


3번, 튤립 얼굴끼리 오밀조밀 붙여놓기다. 서로서로가 맞닿아 꽃잎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가장자리는 튤립 잎으로 방어한다. 기사의 방패처럼.

툭 잡은 듯하면서도 그저 쉬운 부케는 아니다. 혼자 삐죽 튀어나와 있는 튤립은 없으면서도 한송이 한송이가 다른 높낮이로 내추럴하게 맞닿도록 만들어야 한다. 튤립 상태가 좋기만 해서도 부족하다. 찢어지지 않은 그린잎 개수가 확보되어야 하고, 너무 크거나 작거나 억세지 않으면서도 튼튼해야 예쁘다.


이 은근히 쉽지 않은 기준이 바로 두 번째 그린잎에 적용된다. 남들 눈에 다 같은 튤립이라도, 부케 전문 플로리스트는 이렇게 완벽한 튤립을 만나면 감사가 절로 나온다.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모른다.


세 번째 줄기. 아직 소녀였던 튤립이라서 그런지, 키가 자꾸 큰다. 하룻밤 새에 줄기가 길어져있다. 그 성장을 감안해서 만들어야 한다. 심약한 배경을 가져서일까, 튼튼해 보이는데 공갈빵처럼 툭툭 부러지는 줄기를 만날 때도 있다. 다 만들었는데 목이 뎅강 날아갈 때의 심장떨림이란. 다 싫어 모드인 줄기도 있다. 살 때부터 휘어있어서 그 상태로는 쓸 수 없는데 물올림해도 일직선이 되지 않는 경우다.


완벽한 튤립만큼이나, 후회없는 결정도 드물다. 네델란드나 대한민국이나, 배우자나 저녁메뉴나. 결혼 준비가 어려운 것도 엄마라는 역할이 피곤한 이유도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그러니 소녀에게 한마디 건네본다. 결혼 이후에도 선택은 매일 있다고. 다 갖춘 튤립이 아니어도 예쁜 부케를 만들 수 있듯, 아쉬움과 행복은 반비례가 아니라고. 그래도 어렵다면 내 결정을 칭찬 잘해주는 배우자는 어떨까?그리고 그런 배우자가 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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