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차를 사게 되어 슬프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내가 누구인지 가장 잘 아는 댄더

by 한꽃차이

이틀 후면 새 차를 데리러 간다. 좋아할 만한 일이지만 좋지만은 않다. 정든 우리 차를 폐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5년. 반려견 한 마리를 키우다가 떠나보낼 만한 세월이다. 강아지에게 지어줄 만한 댄더라는 이름을 아이들이 지어준 우리 차는 반려차였다. 장거리를 출발할 때면 "댄더야 잘 부탁해." , 다녀오면 "댄더야 수고했어."라고 이름을 부르는 고마운 존재.


그렇다고 우리 가족이 차를 애지중지한 건 아니었다. 세차도 어쩌다 한 번씩 했고 차 관리도 꼼꼼히 하지 못했다. 몇 년 전부터는 차를 바꾸고 싶어졌다. 고장이 자주 났고 수리비도 경차 한 대 값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오래된 차이다 보니 핸들에 열선이 없어서 겨울이면 손을 호호 불면서 운전을 했다. 하필 보조석 안쪽 핸들이 벗겨져서 찐득해졌다. 지인을 태울 때면 뭔가 묻은 게 아니라 차가 오래되었다는 설명을 하며 미안해해야 했다. 이런 건 안전상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버틸만했다. 정확히는 버텨야 했다. 통장 잔고와 대출을 생각하면 말이다.


문제는 안전이었다. 댄더는 작년부터 여러 번 멈췄다. 소명을 다할 때가 되어간다는 듯이. 십여 년 함께 산 반려견이 자주 입원을 하게 되듯이. 본의 아니게 나는 민폐를 끼치며 꼼짝 않는 댄더 뒤에 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하곤 했다. 상도터널 한 차선을 차지하고서 한참을 견인차를 기다리기도 했고, 입주민 출입구를 막고 "죄송해요! 저 입주민 맞는데 차가 고장 났어요. 정문으로 가주세요."라고 하기도 했다. 주차장에서 시동이 안 걸릴 때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 마음이 덜 불편했다.


감사하게도 고속도로 한복판이라든지 차가 쌩쌩 달리는 시간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 차가 서지는 않았다. 꽃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못 가게 되면 정말 난감했을 테고 아이들을 태우고 가고 있다면 더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늘 급하게 어딜 가야 하지는 않고 혼자 타고 가고 있을 때 고장이 났다. 웬만한 일에는 그다지 요동하지 않는 성격상 "괜찮아. 위험하거나 아주 곤란한 상황은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상황을 처리하곤 했다.

그런 나이지만 몇 주 전, '엔진의 온도가 높습니다. 바로 정차하십시오.'라는 경고가 뜨자 차에 불이 나서 생을 마감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좌회전을 기다리는 1차선이라 시동을 잠시 끌 수는 있어도 계속 세워둘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뜨거운 열 때문에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엔진이 아닌 내 마음속 불평불만이.


사실 그날, 꽃시장에 가면서 나는 계속 구시렁거렸다. 차 안은 마음을 말로 가감 없이 꺼내기에 딱 좋은 장소니까. 그러면서도 이 상황과 내 마음을 해결해 주시길 (간절하지는 않게?!) 기도했다. 마음에 먹구름이 찌뿌둥하게 낄 때 크리스천이 양심상 하는 그런 기도, 혹시 아실지. 내 성의 없는 무조건반사 같은 기도는 그렇게 당일에 강력한(!) 응답을 받았다.


그날뿐이었을까. 댄더는 알고 있다. 나의 수많은 원망, 미움, 짜증을. 그 빠져들어가는 늪에서 모든 게 싫을 때 내가 억지로 틀어놓고 따라 부르는, 동아줄 같은 찬양 리스트를. 의외로 단순해서 그런 루틴으로 딱 그날 하루만큼만 나를 건져 올릴 힘을 얻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하는 나라는 사람을, 댄더도 좋아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결혼 전 10시 통금일 때는 집 앞에 주차하고 9시 57분까지 버티다 들어가곤 했다. 결혼 후에도 집보다는 차가 아무 혼잣말이나 하고 오래 통화하기에 편안했다. 장거리운전할 때 내가 전화를 걸어 한시간 통화하는 지인들의 리스트도 댄더는 안다. 어떤 이야기를 토로하고 어떤 근심을 듣고 어설프게 위로하는지 다 들었다. 가끔 '블랙박스를 남이 볼 일이 있으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면서 정리되지 않는 응어리들, 걱정들을 차 속에서 풀어내고 해결할 때가 많았다. 댄더는 운송수단이라기보다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육아의 가장 힘들었던 부분인 '아이들의 토하는 체질'도 댄더가 가장 잘 안다. 겪어보지 않은 부모는 절대 알 수 없는 토의 지난하고 무구한 역사. 소화기가 약한 아이들은 장거리를 가거나 차가 막히면 어김없이 차 안에서 토하곤 했다. 지금도 차 안에는 탄탄한 비닐이 늘 구비되어 있다. 남편은 가방에 항상 휴대용이 아닌 온전한 물티슈 한 통과 비닐백을 꼭 갖고 다닌다. "속 안 좋으면 미리 말해" 역시 우리 부부가 차만 타면 하는 말이다. 남자아이들이 뒷좌석에서 얼마나 다투는지도 댄더가 다 보았다.


남 보기에는 우아한 나의 꽃일이 얼마나 중노동인지도 내 파트너 댄더가 제일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 어쩌면 댄더도 어디다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늘 어마어마한 부피와 무게의 짐을 트렁크가 꽉 차는 건 물론이고 백미러로 뒤가 안 보일만큼 싣는다. 댄더는 크지 않은 세단인데 30명 꽃수업 재료가 어떻게 다 들어가는지 신기하다. 다 빼면 아무리 봐도 차량 부피보다 더 많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이 꽃시장이고 100km 거리도 종종 수업하러 가는 운행기록도 남아있겠지. 입김이 하얗게 나올 만큼 추워도 꽃 신선도 떨어질까봐 히터 안 켜고 오돌돌 떨며 운전하는 겨울에, 기침을 하면서도 에어컨을 빵빵히 켜고 무거운 물통을 갖고 다니며 꽃을 잠시라도 꽂아두고 운전하는 여름에 - 댄더는 나를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싶었을까.


나라는 사람의 내밀한 사생활을 다큐로 찍는다면 차 속의 내 모습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을 때 어떤 사람인지 물을 만한 무생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마 휴대폰이지 않을까? 그 무생물이 나에게는 차이다. 댄더에게 나에 대해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네 덕분에, 무생물에게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졌다. 그런 너를 보낼 생각에 이 겨울, 나는 실내에서도 괜히 코끝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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