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청각 촉각 편
빨강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가장 차이나는 색이라고 한다. 8년 전 카메라를 살 때, 캐논이 빨강을 가장 잘 담는다는 얘기에 다른 비교는 할 것도 없이 결정했다. 꽃을 시작하며 딥한 레드에 흠뻑 빠져들던 시기였다.
하늘 아래 같은 립스틱 색깔도 같은 빨간 장미도 없듯, 같은 단풍이 든 나무도 없다. 화담숲은 이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수백 번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대다수의 단풍명소들은 비슷한 컬러인 큰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봐야 웅장하다. 우람하지 않아서, 모든 나무가 달라서 아름다운 곳은 드물다.
화담숲은 크지 않아도 풍성한 나무가 많다. 눈높이에 레드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회갈색, 적갈색, 벽돌색처럼 빈티지한 색부터 크림슨, 버건디, 와인처럼 딥한 색은 기꺼이 배경이 되고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우체통색, 파프리카색, 딸기색처럼 눈에 확 띄는 빨간색과 이런 깊은 색 사이를 소방차색, 산타옷색, 석류색이 연결한다. 그 위에 강렬한 다홍색, 그리고 불타는 빨강까지. 이 모든 빛깔이 햇볕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라져서 또 보아도 새롭다. 가을을 제일 애정하는 플로리스트는 그래서 올가을 화담숲에 두 번 갔다.
단풍잎은 셀로판지처럼 얇다. 햇빛을 투과시킨다. 같은 단풍잎도 명도와 채도가 높을수록 루비처럼 반짝거린다. 다홍과 빨강의 중간인 단풍나무가 산 위에서 다른 나무에 가려지지 않아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 다들 화재현장을 목격한 듯 발걸음을 멈추어선다.
"웬일이니!"
"불났네 불났어!!"
단풍놀이인지 불구경인지 모를 이 소란스러움도 즐겁다. 어느 명품브랜드 보석팝업전시회에 가면 잘생기고 키 큰 연예인 모델 지망생들이 안내해준다고 한다. 여자라면 반드시 가보라던데, 그래도 나는 아직(?) 잘 생긴 단풍나무가 더 좋다. 이름 모를 아담한 등산복 아줌마들의 호들갑과 하이톤 감탄도.
화담숲은 시간별로 입장을 제한하고 모든 곳이 포토존이니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좀 많다 싶으면 잠시 서있으면 된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지나가면 금방 한적해진다. 눈만큼 귀를 열면 앞뒤 사람들 이야기에 웃으며 걷을 수 있다.
"엄마 사진은 그렇게 찍는 게 아니라니까~" 답답해하는 딸, "거기 예쁘다. 그래 그렇게." 아내 사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는 중년아저씨, 오리 머리핀을 앙증맞게 꽂은 단체여행객까지.
조용해지면 더욱 귀를 기울인다. 나뭇잎이 촤르르 부딪히며 부대끼며 서로 응원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더 빛나며 버티다가 미련 없이 떠나자며. 잎 떨어질라 사이사이를 조심스레 스르르 지나가는 다정한 가을바람 소리도.
다른 곳에서 듣기 어려운 가장 설레는 소리는 시냇물 소리다. 주차장에서 정문으로 오는 길, 사람들이 많이 택하는 시멘트 길 바로 위에 산길이 있다. 졸졸졸 하고 귀엽게 흐른다. 어릴 적 실로폰 같은 맑은 소리. 화담숲 안에서는 이렇게 작은 물길은 없어서 들을 수 없다. 조금 더 아름다운 불편함을 잠시 택한 호강 치고 횡재에 가깝다. 빨강머리 앤이 집 근처에 시냇물이 있기를 그토록 바랬을 만하다.
빨강머리 앤이 얼굴을 기대기 좋아했던 자작나무도 화담숲에 가득하다. 보통 나무껍질은 까끌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만져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자작나무껍질, 특히 관리 잘 된 화담숲 자작나무 껍질은 보드랍다. 한번 손으로 쓰다듬어보면 처음이 낯설지 빠져든다. 앤처럼 볼로도 감촉을 기억하고 싶어질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나무의 꽃과 잎만 보지만, 수피(나무껍질)를 알게 되면 그 나무는 관상용 생물이 아닌 벗이 된다. 같은 껍질을 가진 나무는 없다. 색과 감촉, 모양이 다 다르다. 사계절 푸른 나무가 아니면 나무는 수피만으로 한 해의 1/3 가까이를 버틴다. 그때도 수피의 색과 감촉, 모양을 보고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에게 나무도 특별한 애정을 주니까. 앞모습을 마주쳐야 아는 사이가 아니라, 헤어스타일이 바뀌어도 뒷모습만 보아도 아는 친구랄까.
함께 갔던 언니는 내 인생의 봄여름가을을 함께 한 사이다. 걱정 없이 봄꽃과 단풍을 보러 다녔던 스무 살을 추억하며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곤 한다. 꽃 꽤나 피어 사람들이 나와볼까 하기 전에 꽃놀이를, 아직 좀 덥다 싶을 때 가을소풍을 가야 한다며 뿌듯하게 웃는다. 우리에겐 어느 종목이 부동산이 곧 오른다더라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봄과 가을 오감호강 투자를 남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한다.
치열했던 여름동안 선택하지 못했던 선택들이 아쉬울 때도 얼마나 매일이 쉽지 않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버텨온 것만으로 서로를 대견해한다. 말랑하다 못해 물렁하던 우리가 따가운 햇빛에 익고 뒹굴어 생채기는 났지만 훨씬 단단해졌다며 감사를 나눈다. 남들이 모르는 수피까지 구석구석 그냥 덮인 부분이 없음을 안다. 나 왜 이것밖에 안될까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사계절을 아름답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 나무처럼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나 나무처럼 살아왔네 그거면 됐네 하게 된다.
나무의 사계절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이것이 나무와 친구가 되는 2번째 방법이다. 봄에 화담숲에서 만났던 나무를 가을에 보면 더 친밀감이 든다. 가을에는 이런 모습이구나. 꽃이 없어도 예뻐. 네 수피는 밀크티 같은 회갈빛이구나. 줄기가 가늘고 곧구나.
늦가을, 소개팅으로 만난 남편은 자작나무 같은 하얀 니트를 입고 있었다. 고향이 같았다. 고향에 다녀온다길래 돈은 안 들지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했다. 올가을은 낙엽을 못 주웠다고. 고향의 낙엽이 갖고 싶다고. 생전 처음, 그것도 단 한번 만난 여자를 위해 낙엽을 주워봤을 이 남자. 떨어진 동전을 줍는 것보다 어색했을 게다. 친구들이 도대체 뭐 하냐고 구박했을 만하다.
아이 낳고 바쁘게 살던 어느 가을, 남편이 물었다.
"이제 낙엽 안 주워?"
사계절 푸른 나무 같은, 낭만은 약에 쓸래도 없다고 내가 놀리던 남자의 질문이 내 낭만을 길어 올렸다. 그렇지, 낙엽을 주워야지. 그 해 좋아한 책에 끼워놓아야지. 그래야 가을이지.
그래서 올해도 낙엽을 줍는다. 어느 낙엽이 가장 얇은지, 보드라운지, 빨리 건조해지니 단풍놀이 끝자락에 주워야 하는지 안다. 알아가면 그 나무와 내밀한 사이가 된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비밀들을 발굴하고 누리러 지구에 오지 않았을까.
"너랑 다니면 숲해설가랑 다니는 것 같아.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신비로워." 언니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주길. 말은 별로 없지만 나무에게까지 귀를 기울이느라 글은 끝없는 플로리스트는 낙엽이 더 떨어지기 전에 2편을 써 내려가고 싶다. 스포 하자면 '후각, 안목, 의미'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