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의 온도

by 방랑티객

불안할수록 자꾸 더 많은 걸 하려 했다. 실천하지 않을 계획들을 쏟아내고, 의욕은 없는 채 커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억지로 깨우며 하루를 버텼다. 충만한 순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은연중에 세상의 틀 안에 나를 가두곤 했다. 결국엔, 무엇을 하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질문 하나에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찻잔 하나를 지푸라기라도 되듯 간절히 쥐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 고요한 온기에 마음이 붙들렸다. 이유 없는 불안에 움츠러든 내 몸은, 작고 따뜻한 찻잔에 기대어 있었다. 그 따스한 고요함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만하자. 그만 불안해하자.'


불교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한다고 한다. 누구도 내게 의무를 지운 건 아니지만, 항상 가장 무거운 짐은 나 자신이다.


나는 종종, 차 우린 물 위에 동동 떠있는 나를 상상한다. 얼굴만 겨우 수면 위로 내밀고, 간신히 숨을 내쉬지만 편안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게 몸을 띄우는 일조차 결국은 내려놓음의 기술이다.


문득, 막 다섯 살이 된 조카에게 수영을 가르쳐 줄 때가 떠올랐다. 발이 닿는 얕은 물인데도 무섭다고 몸에 힘을 잔뜩 주면, 오히려 몸이 움츠러들며 곧장 가라앉아버리곤 했다. 그 모습이 어쩌면, 삼십 년 넘게 인생을 살아온 내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차를 따라 흘러가 보기로 한다. 차를 마시며, 가벼워지는 연습을 해보자고. 평소 수분 섭취가 부족해 PT 선생님께 혼쭐이 났던 걸 떠올리니, 차를 가까이하면 정신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든다. 한편으론, 그냥 물을 마시라는 PT 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차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잠들지 않는 불안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둥글게 다듬고, 나만의 리듬을 찾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차는 나를 느긋하고, 유연하게 만든다. 이것이 차가 내게 주는 힘이고, 방랑티객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물 흐르듯 살라'는 말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흐름을 살아내지 못했던 나. 그래서 이번엔, 차를 따라 흘러가보기로 한다. 여행도 그렇고—따라가는 건 꽤 자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