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중입니다

서툼과 흐름 사이 그 어딘가

by 방랑티객

Credit: Photo by 五玄土 ORIENTO, Unsplash


‘아, 신발 놓고 왔다.’

10분 후.

‘어, 버정(버스 정류장) 지나쳤다.’

1시간 후.

‘아, 우산 놓고 왔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이런 건 여전한데, 벌써 서른 중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시차적응이 덜 돼서 그런 거라고, 오늘따라 날씨가 흐리고 저기압이라서 그렇다고. 친구들은 내 탓하지 않도록 대신 변명거리를 만들어준다. 나 보다 내 마음을 더 살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득 고맙다.


버스 창밖으론 바삐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참 일에 치여 살 땐, 정신이 바짝 들어서였는지 뭔가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반면, 특별히 바쁠 일 없이 방랑하듯 지내는 요즘 같은 시기엔 기분도 집중력도 어딘가 붕 떠 있다. 퇴사 후 몇 개월은 이 부유감을 잘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그게 여유지”라며, 언제든 다시 바빠질 테니 지금을 즐기라고들 했다.

(물론, 나는 잘 즐기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심지어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 틈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조차 막막했다. 온갖 생각들이 사방에서 밀려든 거센 물살처럼 버거웠는데, 이제는 버티기 보단 그냥 물살에 몸을 맡겨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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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전에 가벼운 러닝을 마치고, 친구를 기다리며 압구정에 있는 ‘아도 계영배점’으로 향했다. 이름이 궁금해 찾아보니 계영배(戒盈杯)는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라고. 잔을 가득 채우면 도리어 비워지는 그 특성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상징한다. 마치 포춘쿠키 속에서 튀어나온 문장처럼, 어쩜 내게 딱 필요한 말이다.


빌딩 꼭대기 층에 자리한 티룸. 그 아래층엔 수공예 샵, 도자기 공방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재밌게도 각 층 모두 비슷한 결의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의도한 건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영배점이라는 이름답게 티룸의 고즈넉한 기운이 아래로 스며든 듯한 느낌이다. 이 공간은 마치, 맑고 투명한 백차를 닮았다. 예전에 찾았던 문래점보다도 오히려, 더 본점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달까.


아도 티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茶)방전’은 손님의 현재 상태를 적어내면 그에 어울리는 차를 추천해주는 독특한 주문 방식을 제안한다. 아도의 대표 메뉴인 ‘7가지 감정차’는 각 감정(기쁨,화,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심)에 어울리는 원재료를 블렌딩해 만든 차라고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차 리스트가 있고, 매장에는 메뉴에 다 담지 못한 100여 종이 넘는 차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조금 게으름을 부려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안내자의 큐레이션에 기대보기로 했다.


사실 입문자에겐 메뉴만으로 차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차 이름도 낯설고, 친절하게 적힌 설명조차도 어딘가 난해하다. 마치 와인 리스트를 처음 마주할 때처럼, 머릿속은 하얘지고 메뉴판만 애타게 들여다보게 된다. 어차피 기분에 따라 마시는 거라면, 지금 내 상태에 어울리는 차를 제안받는 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곁들여지는 설명을 듣고, 질문을 던지며 안내자(또는 팽주)와 차우를 맺는 경험도 티룸을 방문하며 마주할 수 있는 유쾌한 요소 중 하나였다. (아, 이곳에서는 차를 내어주고 환대하는 사람을 ‘안내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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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돈내茶 | 무이암차 대홍포


한 모금 머금으면, 돌의 기운을 품은 듯한 깊고 그윽한 맛이 입 안 가득 번진다. 무이암차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무이산에서 자란다. 이 바위산은 다양한 야생차의 고향으로, 바위와 물, 시간의 축적이 찻잎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특유의 중후한 암운(岩韻)과 더불어, 묵직한 단맛과 입 안을 맑게 정리해주는 시원한 기운이 인상적이다.


'대홍포(大紅袍)'라는 이름에 얽힌 설화가 재밌다. 무이산을 지나던 한 중국 문인이 갑작스런 복통으로 쓰러졌을 때, 한 스님이 이를 발견하고 바위 틈에서 자란 찻잎으로 달여 준 차를 마시고 회복했다. 이후 그 문인은 장원급제하여, 훗날 황후가 비슷한 병에 걸리자 그 찻잎으로 낫게 하자 황제가 그 차나무에 붉은 비단 옷, 즉 홍포를 하사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차나무를 ‘대홍포 (큰 붉은 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