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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Oct 18. 2015

데빈 성

in Bratislava

* 20150907

* Wien Hbf - Bratislava


기차표 시간 맞춘다고 허겁지겁 왔는데 다른 역이다. 여기서 출발하는 것은 80분 뒤에 있다. 아싸...-_- 그래도 깨알같이 일기쓸 시간이 생기는건 황당하다. 이 일기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생기고야 마는 짜투리 시간과 기차 내의 이동시간에 써둔 것들이다.


여튼 아침에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차를 탔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지만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다. 빈에서 한시간 거리. 내려보니 뭔가 동구의 냄새가 난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흔적이 남은건가...하면서 버스타러 갔다. 구시가까지는 어찌어찌 잘 들어갔는데 가보니 뭐 할게 없다. 정말 구시가의 크기는 한줌정도 되는거 같다. 우리 슬로바키아 인민들은 독립국가로 살아본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리 볼만한 것을 많이 만들지 못한것 같다. 모르긴 헤도 좋은건 프라하에 다 가져다 뒀는지도 모르겠다. 오며가며 뭔가 라이브 클럽도 보이고 했지만 오늘은 월요일... 뭔가 가장 아무일도 없을것만 같은 날 아니겠는가.


브라티슬라바 역인데 상봉터미널보다도 작다. 우리로 치면 서울역인건데!


길거리 커피파는 아저씨에게서 커피를 한잔 샀다. 가격대비 양이 참 푸짐해서 좋았다. 뭐라도 점심을 먹어야했고 현지 음식 좀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브린조베 할루스키라는 것을 먹었다. 이 브조라는 놈은 고구마 수제비를 스파게티 크림같은거에 버무린뒤 짭쪼름하게 구운 햄을 올린거다. 


성의가 없다 일단. -_-


음식이 이따위니까 유럽 전역의 요식업을 아시아계와 케밥집이 점령한거다. 도대체 케밥집은 우리로 치면 중국집보다 더한게 정말 없는 곳이 없고 눈만 돌리면 있다. 그리고 다른 엉뚱한 것 먹다보면 아 그냥 케밥먹을걸 할 정도로 경쟁력도 있다. 그 외에는 태국 일식 벳남 음식들을 좀 팔고 있다. 저 브조는 내가 여행와서 남긴 첫번째 식사가 되었다.


데빈 성. 별로 먼 곳이 아니다.


그래서 구시가를 좀 돌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데빈성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별로 멀지 않은 곳이다. 가보니 폐사지 느낌이다. 성의 형태가 원래도 그리 뽀대나진 않았을거 같지만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뭔가 더 운치있는 곳이 되었다. 여기를 천천히 돌았다. 도나우강도 제일 잘 보였고 사진찍기도 좋았다. 


폐허와 도나우강.


아시아인 가족이 사진 찍어달래서 찍어줬다.

: 아들 : 오하요오...

:: 나 : 아니 난 한국인이야. 안녕하세요~

: 아들 : 곤니치와....

: 엄마 : 아니래잖아 이놈아. 우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왔어요.

: 나 : 아 친구가 일하고 있어서 언젠가 자카르타에 놀러가고 싶네요.

: 엄마 : 대도시는 다 똑같구요, 그 주변 다른 곳들에 더 갈곳이 많아요. 발리도 좋구요.

: 나 : 알겠습니다. 꼭 놀러가볼게요~


성 안에서 양과 염소를 키운다.


데빈성은 국가적 상징중 하나인데도 돈이 떨어져서 보수공사에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후원금을 받고있었다. 그리고 성 안에 양과 염소를 키우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설마 이걸로 자금 만드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거나 산보하기에 더없이 좋은, 비가 올것처럼 흐린 날이었다. 


도나우 강


도나우 강을 보니 마스터 키튼이 생각난다. 그는 도나우강 어딘가에 고대유적이 있을거라 믿으며 그날을 위해 돈을 모으는 남자다. 보니까 돈 많이 모아야 할 것 같아서 사설 탐정 노릇으로는 힘들어보인다.


이 남자. 만화 주인공이지만 이 남자처럼 될 수 있다면 되고싶다. 당신도 읽어보면 나처럼 느낄지 모른다.


도나우 강변에서 보트를 타려는 중년 쌍쌍 4인조가 있었다. 날이 꽤나 추운데 뒤집어지면 어쩌려고 오늘같은날 배를 띄우나 모르겠지만 여튼 배를 물에 띄우는 것까지 봤다. 나는 "후레이~"하고 손을 막 흔들어줬다. 노인 부부는 자전거타고 가다가 역시 나와 함께 배 띄우는 것을 보았다. 그 연세에 도나우강변을 자건거로 달린다...라니 부러운 삶이다. 

보트 젓는 두 커플.


다시 브라티슬라바로 왔는데 역시 할게 없다. 가이드북에 적힌 레스토랑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는데 그 바로 옆에 판가게가 있다. 아아 판과의 인연은 끝이 없어라...했지만 주인장이 잠시 자리를 비워서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진있는 메뉴 없냐고 했더니 없대. 그래서 대충 가성비 좋아보이는 것을 주문했는데... 아뿔싸 그게 아까 점심에 먹은 브조였다... ㅠㅠ 아까는 사진보고 골랐기 때문에 이름을 몰랐고 이번에는 재료만 봤지 이름을 안봤다. 음식 접시를 보는순간 웃음밖에 안나왔다. 이놈은 내가 남긴 두번째 식사가 되었다.


슬픈 브린조베 할류스키... 개스키...ㅠㅠ


그와중에 무지개도 보시고...


슬픈마음을 부여잡고 판가게로 왔는데 여긴 쪼그만 것에 비해 나름 구색을 갖췄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 했더니 자기는 이베이에서 한국인에게 턴테이블을 산 적이 있댄다. pioneer사의 maclaren이라는데 이름을 정확하게 들은건지 모르겠다. 지금도 잘 쓰고 있는 아주 상태좋은 물건이라고 한다. 착해보여서 물어봤다. 니네 음악중에서 좋은거 뭐 있니 하고. 그랬더니 신나서 판꺼내주고 틀어주고 설명하고 가사 번역까지 해준다. 내가 만나길 바랬던 동네 판가게는 이런 곳이다. 작지만 소중한 곳. 그리고 자국 음반을 가지고 있는 곳. http://www.vinyloveplatne.sk/ 


착한 남자였다. 슬로바키아 음악을 찾는다면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그의 추천은 장르를 넘나들었다. 포크 로큰롤 하드록 프로그... 심지어는 슬로베니아 트립합까지 나왔다. 그 트립합 음반은 꽤 좋았고 주인장은 250장 한정반이라며 주석을 단다. 그래서 여기선 두장을 샀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음식과 음반을 산다. 가끔 브조같은 똥을 만나기도 하지만 이번에 구한 음반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는 명함을 끼워주며 한국까지 판 보내주는거 아무 문제없다고 영업까지 마쳤다. 오래 살아남기를.


당신도 들어볼 수 있다. 이 음반이다. https://soundcloud.com/fatkitmusic/sets/87-bears-ep


슬로바키아 음반들


무턱대고 사올 순 없어서 두고왔다. 눈에 밟힌다.


기차시간에 여유가 없어서 허겁지겁 나와서 대충 버스를 집어탔다. 방향 맞는 버스를 일단 타고 적당히 내려서 걸어가는 무리수까지 둬서 기차시간 십분전에 도착했는데... 다른 역이네? 여기서 출발하는 것은 한시간도 더 남았다. 그래서 이런 장문의 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다...음. 정말 많이 헤매며 다닌다. 일기 타이핑 시간도 자꾸 생긴다.


여행의 33.3%가 지나갔다.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LP는 3분동안 100회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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