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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Nov 01. 2015

잘츠부르크

in Salzburg

* 20150908

* Wien West - Salzburg Hbf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고 있다. 조금 늦게 움직여서 잘츠브루크행 고속철도 레일젯을 탔다. 뽀대다게 생겼다. 탔더니 1등석이 뽀대만큼 너무 좋은 것이다. 승무원이 먹을것도 주고 현재 위치로 화면으로 알려주고 난리다. 이야 좋구나 하면서 한참 가고 있었는데... 검표를 하더라고. 당당히 유레일을 내밀었더니 여긴 1등석 비즈니스라며 15유로를 더 내라고 한다. 내 패스도 1등석 되는거 아님묘 하고 얘기했더니 그건 비즈니스까지 포함되는건 아니니 저쪽으로 가랜다. 그래 너무 좋다 싶었어. 그냥 1등석도 충분히 쾌적했다. -_-


잘츠부르크에 오니 12시를 조금 넘겨서 당장 할슈타트로 이동한다거나 이런건 무리 같았다. 일단 가까운 호스텔부터 잡아놓고 잘츠 구경을 하기로 했다. 호스텔 가보니 한국인들이 우글우글. 한 처자의 말을 들으니 거의 한국용 호스텔이라고. 밖에 몇몇 나라의 국기가 걸려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태극기였다. 어쨌거나 꽤 쾌적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여행 내내 날 도와주던 날씨


잘츠부르크 구시가로 들어가는 길에서도 방향을 못잡는다. 어디 새로 가기만 하면 매번 헤매는듯. 청소부 아저씨에게 물어서 잘 들어갔다. 가는 길에 보인 상점가는 가게 하나하나가 참 이쁘장했다. 오밀조밀한 물건들 파는 곳들 뿐 아니라 유기농품 가게, 음반가게, 옷가게, 심지어 야채가게조차 이뻤다. 여긴 마늘조차 너무 곱게 생겨서 뱃속에서부터 부러움이 올라왔다.


가게들이 하나같이 우아해서 놀라웠다


좀 소심하긴 해도 열등감이 있는 편은 아닌데 유럽의 시골을 포함해 얘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진 거 같아 종종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이쁜 자연, 도시와 자연의 조화, 부대끼지 않는 삶, 이쁜 사람들, 강한 언어, 넓고 파란 하늘 등 좋은건 다 가진거 같다. 아직 안가본 곳들이 많지만 현재로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은 여기다. 공연이나 판질이야 뮌헨이나 빈에 가서 보면 되는 것이니까.


뭐 그건 그렇고 여기 판가게는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우아한 곳이었다. 공간 좀 넉넉하게 쓰고 인테리어를 나무로 갖춰놓으면 후지게 보일 수가 없다. 음반 구색이 좀 안좋았는데 팝록이야 그렇다쳐도 클래식도 구색이 나쁜건 좀 의외였다. 여긴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도시인데 이정도 구색으로 어찌 팬들에게 먹힐 수 있단 말인가.


분위기가 참 좋았던 음반점


윗층에는 이런 청음실을 떡하니 만들어두었다.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musikladen-salzburg.at/


구도심은 뭐 이쁜 중세도시. 어디에나 있는 돔, 어디에나 있는 광장등은 이제 다 물에 술탄 느낌이다. 아직 산악지대로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동네 베스트라면 사방에 펼쳐진 텔레토비 동산같은 녹지들이다. 서울에선 건물주가 갑인 것처럼 여기서는 농장주가 갑 아닐까 싶다.


구도심 뒤편에는 산자락이 있는데 산자락의 왼쪽에는 호엔잘츠부르크 요새가 있고 오른쪽에는 미술관이 있다. 구도심을 우르르 헤매는 중국인 관광객들보다는 산자락이 좋으니까 올라가봤다. 여기 길도 괜찮고 여기서 보이는 강과 구도심의 광경이 정말 좋다.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유럽의 이미지가 그대로 놓여있는 곳이 잘츠부르크인듯.


저 멀리 보이는게 호엔잘츠부르크 성. 음악회 보러왔다고 티켓 뵈주면 입장료가 무료.


접시를 던져 개에게 주워오게 만드는 여자와 공을 던지는 남자를 보았다. 개는 목표가 필요하다. 인간은 목표를 준다. 개는 그 시간동안 충실하게 자기 일을 해나간다. 무엇을 위해 충실한가를 개는 묻지 않는다. 개처럼 살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요새에서 하는 모차르트 공연은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서 잠시 내려와 앉아있었다. 한쪽에선 실로폰 연주자가 한쪽에선 디저리두 연주자가 배틀중이었다. 당연히 저음을 우렁차게 뿜는 디저리두쪽이 우세하지만 실로폰 연주자도 지지 않는다. 나는 사진찍는 중국인들을 보고있다. 이제 관광지에 일본어는 없어도 중국어는 있는 곳이 많아졌다. 쾰른의 빵집에서는 문밖에서 미친듯 웃고있는 중국인 가족을 보여 욕(?)하는 독일인들을 보았는데 워낙 중국인들이 좀 매너없었기때문에 독일인들에게 더 공감이 되었다. 


좌 디저리두를 부는 남자, 우 뭔가 그리는 혁필화가(?)


요새로 올라갔다. 요새 안에서 하는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라니 일단 모양만으로도 좋아서 무조건 신청. 올라가보니 요새 자체는 아주 훌륭한 것은 아니었지만 구시가 바로 뒤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잘츠부르크 입장에선 더없이 소중한 곳일 것이다. 여기는 성채 안에 호프집 식당까지 다 있다. 잘츠부르크에서 와이파이가 제일 시원하게 터진 곳도 여기다. -_-


요새에서 바라본 잘츠부르크 시내


공연은 그냥 안정감있는 연주에 안정감있는 레파토리. 모짜르트의 예스터데이같은 곡인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무시크...는 매일 연주하는거 같고 다른 곡들로는 하모베(고등학교때 외운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와 슈트라우스 정도를 돌려가며 연주하는듯 했다. 연주자들은 절대 드라마틱한 연주를 보여주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연주했다. 뭔가 이들에게선 예술가보단 생활인의 향기가 느껴졌는데 그건 며칠에 한번 같은 연주를 수년간 해야하는 그 반복의 누적때문이 아닐런지. 


운치는 있었지만 감동은 없었던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Qb_jQBgzU-I

다들 아실만한 이 곡이 매일 연주된다. 모차르트의 예스터데이.


내려오는 길은 다들 케이블카 타고 간건지 나 혼자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운치있고 좋았다. 여기가 빈이었으면 무서웠을거 같지만 잘츠부르크니까 불량배마저도 클래식을 들을거 같은 곳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딘가로 들어가 자고있다는 것은 무척 동물적이다. 나도 한마리 짐승이 되어 몸 뉘일 곳으로 돌아간다.


시리아 난민 문제는 여기서도 진행형이었다. 잘츠부르크는 독일과의 국경지대에 있다.


이 몸 뉘일 곳에 도착하니 세계 각국의 짐승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떠들고 술마시고 난리통이다. 여기가 프로 게스트하우스라는걸 잠시 잊었다. 아무래도 영어에 자신이 없다보니까, 그리고 이젠 더이상 유스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자리엔 끼지 않는다. 영어가 편한 젊은이라면 이런 자리를 훨씬 즐길 수 있을텐데 말이지. 침대에 누워서도 한동안 이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어야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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