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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Nov 01. 2015

할슈타트

in Haalstatt

* 20150909

* Salzburg Hbf - Haalstatt


나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움직였다. 할슈타트가 은근히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못내렸다. 그리고 다음 기차는 한시간 뒤에 온다. 왜 이런 안해도 지장없는 실수를 계속 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이 뵈클라브룩이라는 동네는 무척 작은 곳 같다. 일단 역 생긴게 간이역보다 조금 크고 티켓부스가 곧 매점이다. 그래도 나가서 한바퀴 돌아보니 깨알같이 작은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유럽인들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뭔가 수단 관련 행사를 한다. -_-


다시 잘 갈아타서 할슈타트에 갔다. 결국 늦게 일어난 꼴이다. 여기는 내리자마자 일단 배를 타야 한다. 여기는 간이역보다도 더 작은 역이고 터미널이라는 개념이 없다. 호숫가에 그냥 잠시 섰다가 간다. 왜 여기에 굳이 역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뽀대는 난다. 여튼 배를 타면 일단 이 호수의 경관에 압도가 되고 배가 다가갈수록 다가오는 꼬꼬마 집들의 이쁜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알고보니 이게 가장 멋진 광경이었지만 어쨌거나 우리의 태극 낭자들은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다. 


오면서도 내 옆자리에 한국 여자들이 앉아있었는데 여기는 유독 한국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배에 탄 사람 절반이 한국인이었다. 남녀도 있었지만 여자들끼리 온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말 큰 돌돌이 여행가방에 사진찍을때 V자를 하면서 찍었기 때문에 구분이 쉬웠다. 여기서 확실히 배웠다. 할슈타트에 들어가보니까 중국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만큼은 한국인도 눈에 띄게 많았다. 나는 괜히 뻘쭘해져서 사진도 좀 덜찍고 그랬다.


한국인들에게 유독 인기라는 할슈타트


할슈타트는 손바닥만한데 참 이쁘고 오밀조밀하게 잘 가꿔놓았다. 내가 가본 동네중에서는 동경 주변의 닛코와 느낌이 비슷했다. 거기도 동네가 단아하고 큰 호수가 있거든. 다들 뭘 먹고사나 싶었다, 여튼 조금 돌다보니 바로 옆이 오베르트라운이고 여기에는 케이블카가 있으며 산 정상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할슈타트는 사람이 미어터지니까 가깝고 분위기는 비슷할 할슈타트에 가서 점심을 먹고 산에 다녀온 뒤 얼른 바트 이슐에 들렀다가 잘츠로 가자 하고 플랜을 세웠다. 하루 보내기엔 딱이었던 좋은 계획이었으나 여기에서 사단이 났다.


할슈타트도 너무 쪼그매서 딱히 할일은 별로 없긴 했다


배타고 오베르로 갔다. 이 구간은 조금 길어서 배타는 기분이 더 난다. 그래서 뙇 내렸는데... 아무것도 없고 분위기가 구리다. 아니 할슈타트에서 직선거리 3km도 안되는 곳인데 여긴 왜 안이뻐! 좀 당혹스러웠다. 행인도 없고 가게도 없고 인포도 없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까 뭔가 있었지만 어쨌든 여기엔 없다.


오테르트라운. 안이쁘니 여기 가시려는 분들은 주의하셔라.


여행다니면서 요새 드는 의문은 왜 양차대전 이전에 만들어진건 다 좋은거 같은데 요즘 우리는 후진것 밖에 못만드는가라는 의문이다. 프랑크프루트도 그랬고 대도시는 어디나 똑같이 구리다. 유럽의 시골도 어디는 이쁘고 어디는 구린데 이쁜 곳들은 어김없이 19세기 이전의 경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구닥다리 페티쉬를 가지고 있는건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나만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거 같다. 


예전에는 역량이 없어서든 자연과 함께사는 것이 당연해서든 뭔가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동시에 기술이 고도로 좋아지면서 우리는 효율을 극한으로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싸고 추한 매체를 이용해 고도로 집적된 것을 만들고 그 결과로 한국의 아파트 같은 것이 나온다. 쎄멘으로 발라버리는데 무슨 이쁜 것이 나오겠는가. 이미 소재부터 썩었다.


이 극한의 효율추구 문제에서 문제의 핵심은 인구밀도다. 네덜란드 인구밀도가 높다하지만 여기는 분산이 잘 되어 있어서 서울에 댈바가 아니다. 심지어 이 나라는 골고루 농사를 잘 지어서 농작물 수출국이다. 유럽 어디를 가도 대도시만 아니면 공간 낭비의 미학이 느껴진다. 공간을 펑펑 쓰고 추한 미감만 없다면 이쁜걸 만들 수 밖에 없는거다. 어제 본 잘츠부르크의 판가게가 그랬다. 그 공간이 아름다운건 낭비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낭비하지 않으면 우아함을 만들어내긴 힘들다. 동경의 오밀조밀한 가게들 가보면 이쁘지만 우아하지 못한데 그건 낭비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천장을 높게 쓰는 공간들 가보면 공간이 주는 장엄미가 느껴진다. 성당 가봐라.


그러니까 우리는 점차 19세기 사람들에 비해서 썩은 미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그들이 남겨놓은 것을 보고 우와 이쁘다 하면서 사진만 찍고있는 것이다. 당시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나갔다면 지금 우리는 더욱 자연친화적인 도시공학에 집중해서 도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제발 어느 도시던지 우리만의 훈데르트바서 같은 사람을 하나 잘 발굴해서 그에게 한두블럭 정도 통채로 디자인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바르셀로나 이미지를 만든건 절반이 가우디다. 


아니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구엘이겠지. 레오폴트 미술관에서도 느낀거지만 재력과 미감을 가진 사람은 예술가보다도 훨씬 귀한 존재다. 구엘이 가우디에게 계속 프로젝트를 던졌기 때문에 가우디가 있었음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우리의 수집가도 기억난다. 전형필과 한창기. 



바르셀로나에 깔린 가우디. 

여기서 업어온 사진 : http://prettynim.com/1285


전형필은 그래도 막대한 재력을 잘 살려서 간송미술관으로 남겼지만 간송미술관의 보존상태는 솔직히 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체계적인 자본이 좀 더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한창기는 그의 유지를 받아낼만한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남아나질 못했다. 순천의 한창기 박물관 가보면 나름 공공의 돈이 들어간 곳임에도 불구하고 썩은 감각으로 정말 구린 공간과 전시상태를 자랑한다. 가서 눈으로 보고 정말 충격받았다. 한창기가 봤다면 말 그대로 격노했을 상태다. 한창기가 어떤 남자였는지 알고싶다면 

* 지식채널e 별종잡지 : http://ebs.daum.net/knowledge/episode/7657

* 십년 전에 세상 떠난 한창기 스타일이 뜬다. http://menshealth.designhouse.co.kr/in_magazine/sub.html?at=view&info_id=43592&c_id=00010005


다시 오베르로 돌아가서 할슈타트와 오베르의 차이는 정말 컸다. 할슈타트같은 곳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일거다. 사실 오베르쪽이 지금은 기차도 바로 들어오고 더 좋은 입지일 수도 있겠으나 예전에는 뭔가 할슈타트 쪽이 살기좋은 곳이었는지 작은 성당도 있고 광장도 있고 그렇다. 할슈타트는 바로 절벽쪽에 붙어있어서 사실 마을이 형성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오베르에 아무것도 없다 했지만 송어 구워주던 레스토랑 아줌마의 말에 의하면 케이블카는 15분에 한대씩 잘 다닌다고. 그래서 그놈을 타러 갔다. 가이드북에도 레스토랑 아줌마도 멀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이 식당은 왜 뒤에 볼링장이 붙어있는가.


표지판을 보면 30분, 10분 남았다고 계속 개구라를 치는데 가도가도 보이질 않는다. 거의 한시간을 걸어간 것 같다. 여긴 차없이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인데 그런 정보는 전혀 없었다. 이미 케이블카 승차장까지 간 시점에서 넉아웃 직전이었다. 가는동안 오베르는 다 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동네다. 구멍가게도 하나 없다. 아니 있는데 문 닫았었지. -_- 


뭔가 먼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중간 경치가 좋긴 했지만...


가는 길에 분명 한국여인으로 추정되는 자가 돌돌이를 끌고 내려오길래 케이블카를 물어봤다. 답이 오기를 그녀도 오베르에 와서 멘붕중인 상태. 도착하니 아무것도 없고, 할슈타트에 호텔이 없어서 오베르에 잡았는데 호텔은 3시까지 문이 잠겨있어서 시간보내는 중이라고. 체크인하고 얼른 할슈타트로 가서 영혼을 정화했길 바란다. 당연히 그녀에게 케이블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금방 갈 것 같은데요 정도의 희망을 남기며 호텔로 갔다.

케이블카 돈을 내는데 28유로...여보세요. 잠시만요. 참고로 내가 에코앤더버니멘의 공연을 30유로 내고 봤다. 그런데 딸랑 이 케이블카에 그돈을 내라고... 하지만 이미 한시간 걸어온게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냈다. 위에는 뭐라도 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는데 너무 짧다. 아니 이게 뭐야 했는데 사람들이 가는 곳을 보니 다음 케이블카가 있다. 또 올라가니 이번에는 경치가 좀 좋다. 두번째 정류장에서 다들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올라가면 이런 경치가 나온다. 한방에 눈만 없는 겨울 민둥산이 등장.


여기는 다흐슈타인이라는 산으로 뭔가 세계자연유산이라는데 가보니까 지형이 아주 삭막한게 무슨 화성착륙 이런거 찍으면 좋을만한 곳이다. 일단 고도 2000미터가 넘는 산이라고 꽤 춥다. 삭막한 지형 외엔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나름 산정상이 있다고 하니 가보기로 했다. 편도 30분이라고 써있지만 이제 믿지 않는다. 한시간 정도 걸리겠거니 하고 열심히 갔다. 가서 보니 웬 철제 상어가 있다. 이건 뭔가... 아헿헿한 상황이었지만 동행한 노부부가 사진을 찍어주셨다. 노인들도 오시는데 좀 춥다고 내가 안올수는 없는 곳이기도 했다. 여튼 어제의 그 개처럼 뭔가 이유없는 목표 달성을 한 나는 성실하게 돌아왔다. 오면서 킹 크림슨의 Talking Drum을 들었다. 심장이 뛰게 도와주는 곡이다. http://www.dachstein-salzkammergut.com/


여기 케이블카는 역이 4개 있고 레인은 3개가 있다. 즉 왕복 6번을 탈 수 있는 형태. 그걸 한번 다 돌고 왔다. 세번째 케이블카는 나 혼자 탔는데 도착해서 나만 있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한국 특산품인 야호를 세번쯤 해주고 내려왔다. 


이런 뜬금없는 상어 조형물이 있다. 입속에 있는 자가 me


내려오다보니 또 한시간 걸어서 기차역까지 가는게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차 있는 사람들 한 팀에 낑겨보기로 했다.


: 오베르까지만 태워줄래?

:: 그래~ 어디서 왔어?

: 서울


갑자기 이 커플이 이구동성으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친다. 알고보니 서울에서 4년간 영어강사로 일했던 영국인들이며 이 둘은 서울에서 만나 사귀는 사이라고 한다. 남자보다는 여자쪽이 더 한국어를 기억하고 있다.


: 내 이름은 Zara(?)에요. 한국에서 turtle teacher라고 학생들이 불러줬어요.

: 김밥천국, 훼이보릿 레스토랑... 두유 노우 유가네?(닭갈비 체인)


너무나 구체적인 지명에 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반가워서 한국어 영어 섞어가면서 얘기했다. 홍대 산다니까 자기도 집이 합정 근처였다고. 뭔가 서울을 그리워하길래, 솔직히 나는 서울이 좀 재미없다, 어떤 지점이 그리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봤더니 역시 답은 음식이다.


: 쌍문동에서 영어 가르쳤어요. 도봉산 좋아해요. 막걸리 파전...

: 나는 석계역 (남자)

: 순두부 만들고 싶지만 못하겠어요.


도봉산에서 바로 막걸리 파전을 말하는 이 커플이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 이들은 맥주 한잔 하자며 나를 할슈타트로 데려갔다. 차시간을 알아보니 막차시간에 간신히 대었다. 이들이 태워주지 않았으면 막차를 놓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튼 맥주마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나는 그들에게 이메일을 적어주었다. 서울에서든 런던에서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다.



막차탔으니 당연히 바트 이슐은 들러보지 못했다. 나중을 위해 아껴두도록 하자. 이렇게 또 오늘의 작은 모험이 지나갔다. 할슈타트 가기 전까지 나는 오베르가 있는지도 몰랐고 케이블카는 전혀 몰랐으며 자라 커플은 더더욱 몰랐지. 어제 걸었던 잘츠부르크의 언덕은 약과였고 오늘 정말 추운 산에 올라가서 진짜 산행을 한시간 이상 할것도 몰랐다. 심지어는 엉뚱한 역에 내려서 헤맸던 것. 이런 작은 모험들이 여행의 묘미 아닌가 싶다. 큰 문제 없이 흥미진진하게 한바퀴 돌고 집에 왔으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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