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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Nov 04. 2015

루체른

in Luzerne

어제밤부터 적자니 생각만해도 너무 길다. 어제밤이 금요일이란 것을 나는 또 외면했다. 3년전 일본 기차여행때도 금요일 밤에 방이 없어서 고생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 게다가 취리히 나름 수도인데 나는 너무 시골로 생각했나보다. 찍어놓은 게스트하우스 두개는 방이 없다.


버거킹에 일단 들어갔다. 여기는 2시반까지 한대. 양파링 6조각에 4.5 CHF, 6천원 돈이다. ㅋㅋ 스위스는 모두 이 시추에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그거라도 먹고 시간을 좀 뭉갰다. 그러다가 문닫을 시간이라고 해서 세시반에 루체른으로 이동하는 기차를 탔다. 그래 내 사치품은 유레일 뿐이지 하면서 눈을 붙였는데 차장이 들어와서 5 CHF를 내란다. 유레일도 야간에는 수수료가 붙는댄다. 그리고 아까 마음이 춥길래 온기라도 마셔야겠다 싶어 먹은 커피도 심야 할증 20%가 붙었다. 그리고 루체른에 가서 코인락커를 찾아 가방을 넣었더니 그것도 6. 이것이 스위스 물가다. 


해뜬다... -_-


좀 당황스러웠던건 취리히도 루체른도 역앞이 일단 상당히 지저분했고, 물론 프랑크푸르트의 오줌냄새만크은 아니지만, 청년들이 밤에 잠을 안자고 방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거킹도 맥도날드도 경비원이 하나씩 서서 애들에게 험한소리를 하고다녔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못보던 장면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여기에 총만 들면 필리핀 상황이라는데... 여튼 스위스 사람들 전체적으로 뻣뻣한 느낌이다. 독일보다 뻣뻣한듯. 오스트리아가 벌써 그리워진다. 


해떴다.


어쨌거나 취리히가 너무 쌀쌀맞아서 루체른으로 도망갔으나 그래봐야 해뜨기 전. 여전히 루체른도 쌀쌀맞다. 어디 문연곳도 없는데 두시간은 기다려야 해가 뜬다. 시간은 새벽 네시 반... 어쩔까 하다가 버스정류장의 전화박스를 찾았다. 여기 생각보다 아늑하고 무슨 철제 깡통같은거 위에 앉았는데 여기 뭔가 기계가 들어있는 건지 따듯했다... -_- 노숙처를 찾은거다. 음 이런 재능에 눈뜨면 안되는데... 하면서 팔짱끼고 90분 정도 잤다. 깨니까 여명이 밝아온다.


오리들도 잘 자고 있다 ㅠㅠ


전화박스를 발견하기 전에 방황하고 있는데 새벽부터 아저씨 아줌마들이 야채박스를 호숫가에다 세팅하고 있었다. 장터 서나 했는데 알고보니 장터겸 벼룩시장이 있느 날이었다. 그 꼭두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국민소득 5만불의 그림자가 조금은 느껴졌...긴 개뿔 노력도 했지만 워낙에 가진게 많은 나라이기도 하니까 열등감을 가지진 말기로 하자...고 생각하는 것 부터가 열등감이 있는거겠지.


시장통이 섰다.


해가 떴길래 여기 한바퀴를 돌았다. 사자보고 성벽보고 다리 두번 건너는 것이 정석이랜다. 그걸 다 했다. 죽어가는 사자조각은 아무것도 아닌데 중국 관광객들은 뭐라도 되는양 한참 보면서 떠들고 있었다. 아우 도망가야지. 성벽으로 도망갔는데 이건 괜찮았다. 유물인 성벽이 도시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고 성벽을 걷고 망루에 올라가볼 수 있어서 나름 재미가 있었다. 너무 방치된 면이 있긴 하다. 보니까 청년들이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방화도 하고 그랬나 보다. 그래봐야 안에 있는 나무만 바꾸면 되니까 괜찮은건지 은은하게 방치되어있다. 성벽은 민가와 이어지기도 하고 거리와 거리를 구분해주기도 한다. 그와중에 성벽 바로 뒤에는 소와 닭을 키운다. -_- 도심에서 고작 10분 떨어진 곳, 사실상 도심이라고 해도 되는 곳인데.


소키운다. 도심 한복판인데.


그렇게 한바퀴 다 돌았는데 9시도 안되었다 ㅋㅋ 성벽에서 내려오다 보니까 사람들이 버글버글 모여있어서 뭔가 하고 가봤더니 벼룩시장이 섰다. 여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오만 고물이란 고물은 다 나와있었고 야채는 싱싱했으며 꽃은 화사했다. 물론 스위스답게 싸진 않았지만 그래도 CD를 한두장 샀다. 뭔가 더 사고싶은 고물들이 많았으나 집을 꾸밀줄 모르는 나같은 인간은 사면 안된다. 그정도는 이제 안다. 뭔가 백과사전도 하나 나와있었는데 그놈이 왠지 짠했다. 


벼룩시장이 역시 제일 재미있다


역시 별걸 다 파는...



아이들이 팔면 사주고 싶어진다.


무화과는 보이는대로 사먹곤 했다.



그나마 여기서 시간을 보내니 겨우 11시. 호수는 멀미나게 봤기때문에 루체른의 호수는 스킵할 것이었으므로 인터라켄으로 이동. 벼룩시장때문에 마음이 좀 풀어졌다. 아까 전화박스도 고마웠어. -_- 그리고 올해 첫 무화과를 여기서 사먹었다. 맛있어 ㅠㅠ



인터라켄으로 이동중 무슨 관광열차가 있다는데 정보를 영 못찾겠길래 그냥 일반열차 타고 왔다 일반열차도 충분히 좋은 풍경을 잔뜩 보여주었다. 열자가 왜 그렇게 연결되어있고 마을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는 지형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기차길이 난 곳 아니면 사람 살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기차는 인간 삶의 순환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따라 농산물따라 기차도 간다. 소와 집이 녹지 위에 뿌려진 장면들을 보면서 꼬박꼬박 졸았다.


날 좋다.


호수도 이쁘고.


졸다가 브리엔츠에서 허겁지겁 내렸다. 여기서는 배타고 가는게 더 좋으니까. 이쁜 장면이 계속 펼쳐졌고 나는 먹다가 보다가 졸다가 하면서 인터라켄까지 갔다. 호수가에는 마을이 있다는 당연한 것을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여러번 봤다. 스칸디나비아에도 알고보면 스톡홀름 헬싱키 리가 탈린 코펜하겐 등 모든 수도들은 당연하다는 듯 항구도시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이번엔 유레일을 기반으로 철길따라 여행을 했지만 다음에는 강이나 호수 주변을 다니는 물따라 여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 더 한가해 보인다.


이쁘지만 불친절하다는 유스호스텔


인터라켄은 독립적인 곳이라기 보단 융프라우요흐의 베이스캠프에 가까운 도시다. 여긴 별게 없고 다들 여기서 쉬고 먹을거 사고 레포츠도 하다가 날잡아서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것이다. 뭔가 행사가 있었는지 청년들이 동네 행진을 하며 북치고 박치고 하고 있다. 그 행사에 짝퉁 아바가 초대되었다고 하니 곧 그걸 볼 예정이다. 어찌어찌 음악은 계속 꾸역꾸역 듣고 있다. 융프라우 숙소도 예약했고 2박3일 기차표도 끊었다. 급한대로 각종 과자와 음료수, 견과류, 육포등을 사두었지만, 내일 아침에 비상식량이나 좀 더 사가야겠다. 올라가면 다 팔긴 팔거다. 그래도 여기 물가를 생각해보건데 그 위의 물가는 상상 초월하지 않을까 싶다. 컵라면 하나가 만원이다. 역시 뭐라도 더 사가긴 사가야 한다. ㅋㅋ


해가 졌다. 내일은 저기 간다.


짝퉁 아바 공연은 매년 하는 융프라우 마라톤의 마지막 행사로 잡혀있는 것이었다. 보니까 이 마라톤 나름 인기있는 행사다.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한 4000명 정도가 완주한다고 한다. 인터라켄 최대급 행사인듯 싶다. 아바 공연 전에 한참 시상식하며 떠들고 있었고 나중에 아바 공연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모여서 TV에 나오는 마라토너들의 장면을 한참 보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아 저기서 죽을뻔했는데, 쟤 나랑 같이 뛰던 애 아냐?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는듯 했다. 풀코스인지 하프인지는 확인 못했지만 다들 꽤나 고생했겠다 싶다. 최근 수년간 우승자중에 스위스 사람은 없다.


안에서 아바가 공연을 하든말든 마라톤 중계를 복습하던 사람들.


드디어 짝퉁 아바가 나왔는데 음 원래 아바라는 밴드 자체가 남자는 작곡 및 부스터고 여자들이 보컬 하모니로 압도하는 스타일인데 이분들은 작곡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좀 악세사리 역할. 여가수 둘이 꽤 노래도 비슷하게 하고 댄스도 나름 한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니까 이동네 사람들인 모양인데 나이가 있는데도 용케 귀여운척 하면서 분위기를 돋군다. 워낙에 히트곡이 많으니까 분위기는 계속 7080 나이트가 되어가는데 내 애청곡들인 Vous-lez Vous와 Lay all your love on me가 나오니 진짜 아바 공연에 와있는듯 기분이 참 좋았다.


짝퉁 아바의 공연


원래 아바는 안좋아했었는데 언젠가 이레이저 Erasure라는 밴드가 아바곡만 네곡을 커버해서 ep로 낸 적이 있다. 그 ep를 듣고 아바를 완전히 다시 듣게 되어서 그 이후 아바의 팬이 되었다. Abba-esque라는 이 ep는 한번쯤 들어보시라. 여성 코러스 부분을 남자가 하는데 아주 맛깔난다. 이 남자는 이레이저의 리더이자 초기 디페쉬 모드의 리더인 빈스 클락. 아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재능만은 타고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WblFcLctZQE

좀 느끼하지만 한곡 감상해보자. 부레부~


아까 오는길에 헹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을 보니 꽤 부러웠다. 원래 이런거 별로 안즐기고 겁도 많은 편이지만 행글라이딩만큼은 부러웠다. 보다보니 저 사람들 조정 잘 못해서 민가 지붕에라도 떨어지면 그것도 문제아닌가 싶었지만 보니까 한명이 아니라 2인 1조로 타는거라고 한다. 그러면 뒤에 선수가 있으니까 엉뚱한 곳에 내릴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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