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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렌 / 라우터브루넨

in Mürren / Lauterbrunnen

by 졸린거북

* Interlaken - Grindelwald

* 20150913


첫차를 타고 융프라우에 올라가야지 생각했지만 그건 내 마음이고 내 다리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피곤해서 8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이집은 샤워기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위에 딱 붙어서 가운데의 작은 폭포같은 구조다. 샤워야 어떻게 했지만 머리 감으려니 난감하다. 어떻게 감긴 감았다.


기차를 타니까 중국인들이 너무 많았다. 평소에 유레일로 타고다닐때는 중국인들 그리 못봤는데 밀린 사람들을 여기서 다 봤다. 구름이 꾸물꾸물 하더니 비가 내린다. 망했네. 하고 숙소를 찾아갔다. 유스호스텔 찾느라 조금 고생 해줬다.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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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던져두고 일단 나왔으나 비가 오니 뭘 보나 하다가 그럴땐 마을을 보자 싶어서 뮈렌을 가기로 했다. 차시간을 봤더니 편도 1시간에서 2시간. 여기는 산악기차들이라서 느리다. 여튼 꾸역꾸역 갔다.


DSC_1257.JPG 뮈렌은 꽤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서 경치가 꽤 좋다.


DSC_1265.JPG 뭔가 구리게 찍었지만 융프라우 마을들 중에서는 여기가 제일 이뻤다.


다른 동네들도 예뻤지만 여기는 유독 예뻤다. 할슈타트와 동급정도로 이쁜 곳이고 촉촉한 공기 탓인지 뭔진 몰라도 여긴 뭐든지 다 색채가 선명하다. 한시간이면 느긋하게 한바퀴 돌 수 있는 곳이다. 중간에 잠시 앉아서 뭔가 간식 업어온 것들을 집어먹곤 했다.


DSC_1271.JPG 오래전부터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라갔었나보다.


DSC_1272.JPG 구석구석에 있는 이런 이상한 소품들이 좋았다.


DSC_1274.JPG 이쪽이 아이겐인지 융프라우인지 모르겠다. 그냥 흔한 알프스의 고봉들.


그리고 아래로 내려와 라우터브루넨을 걸었다. 여긴 숙소있는 그린델발트만큼 큰 마을이다. 보니까 융프라우 아래의 베이스캠프 동네는 라우터/그린델이 먼저이고 그 아래 인터라켄이 또 있는거다. 그리고 본격 관광지라서 사방에 호텔들이 가득하다. 큰곳이든 작은곳이든 다 그렇다. 가격표는 뭐 안봐도 당연히 불편한 가격대이지만 숙박비는 세계 어디나 비싸고 여긴 좀 더 비싼 수준.


DSC_1284.JPG 뭔가 폭포


DSC_1286.JPG 폭포 안쪽에서 산을 보고 찍은 사진


걷다보니 가까운 곳에 폭포가 있었다. 여기 폭포는 폭포 뒤쪽으로 살짝 들어갈 수 있게 길이 나있어서 잠시 들어가보기도 했다. 버스타고 십분쯤 가면 이동네에서 가장큰 폭포가 있다는데 까먹고 들러보질 못했다. 여기서 3일을 보낼 생각이지만 마지막날엔 또 해있을때 몽트뢰로 이동해야 하니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못갔다. 폭포물소리가 귀 멍멍할 정도로 큰 곳이라는데... 언제 또 갈 일이 있겠지.


DSC_1293.JPG 라우터브루넬의 어딘가


DSC_1299.JPG 물이 석회질인지 회색이다.


여기저기 걸어다녔더니 피곤했다. 사실 어제 무박이틀을 보냈으니 잠이 부족했지. 졸다깨다를 반복하다가 중간에 좀 멍해져서 다시 걷기로 한다. 이미 비는 멎은지 오래다. 여기는 날씨 안좋을 때가 많다던데 내가 좋은 때에 온 것인지 비가 와도 조금 오다가 말고 그렇다. 아까 숙소 아줌마가 오늘 종일 비올거라던데 하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해가 더 반가웠다. 이 날씨면 내일 아침에 융프라우 오르는데는 문제 없겠다.


DSC_1308.JPG 활짝 개버렸다.


중간에 융프라우 관련 책자를 받아서 보니 이 동네도 구역을 나누어 이해하면 좀 편했다. 이동수단은 철도(+케이블카), 버스, 도보. 보니까 버스는 융프라우 빼고는 어지간한 곳으로 다 보내주는거 같긴 하다. 그리고 케이블카가 유독 많은데 그건 겨울에 이놈들이 죄다 스키장 리프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기차로 갈 수 있는 곳들 위주로 적으면... 높이는 내 맘대로 층을 붙여보았다.

1 그린델발트 - 피르스트 : 피르스트까지 가면 바흐알프제 호수까지 볼 수 있다. (1층)

2 쉬니게 플라터 - 빌더스 빌 : 전망이 그리 좋댄다. (2층)

3 라우터브루넨 - 뮈렌 : 여기가 가장 높은 마을이고 더 위의 산인 쉴터호른으로 이어지는 케이블카가 있다. (2~3층)

4 클라이네 샤이덱 - 융프라우 : 여기가 끝판왕 (4층) 융프라우 말고 뮈렌에서 쉴트 호른으로 가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쉴트 호른이 더 좋을것 같기도 한게, 융프라우는 기차타고 터널로 올라가니까 경치는 아쉽다. 쉴트 호른은 다단계 케이블카인듯. 대신 추가금액이... ㅋㅋ

5 인터라켄 - 하더 쿨름 : 안가도 되지만 인터라켄과 주변 호수가 다 잘보이는 곳이라고. (2층)


그리고 외국인들은 꽤 다양한 곳에서 자는거 같은데 의외로 벵겐이나 뮈렌까지 올라가서 자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 보통은 그린델에서 많이 자고 라우터에서 자는 사람들도 많은듯.


DSC_1314.JPG 자연스러운 길을 걷는게 제일 기분좋다.


저정도 코스면 2박 3일에 다 소화 가능하다. 여기서 레포츠만 안하면. 레포츠에 큰 관심은 없으니까 나는 다 소화하고 갈듯. 가장 즐거운건 역시 이렇게 혼자서 나와 딱 어울리는 장소를 발견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런게 세렌디피티겠지. 이번 여행은 도통 준비를 안하고 움직인 탓에 세렌디피티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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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아무도 안내리는 작은 정거장에서 내렸다. 근처에 집도 소도 없고 차도와 트래킹하는 길 표지판 정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어딘가 애매한 둘레길에 잠시 멈춘거. 역시 아무도 없는 곳을 걷는게 기분이 좋다. 여기 등산열차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뭘 타도 시끄럽다. 여기서 1~2시간 걸으면 숙소가 있는 그린델발트가 나온다.


DSC_1325.JPG 저 집의 테이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일기 썼다. 숨겨둔 글이라도 하나 나올것 같았던 기분.


걷다가 아무도 없길래 음악을 튼다. 바로크풍의 포크싱어 재키 레벤. 내 첫번째 배낭여행인 2002년에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베토벤의 피아노 콘체르토. 음악이 바뀌니 다른 분위기가 된 것 같다. 혼자 내려오다가 아무도 안다니는 길에 빈 테이블이 있길래 거기 앉아서 빵도 먹고 음악도 듣고 일기도 쓰는 참이다. 내가 인기 작가라면 이런 곳에 와서 글을 쓰는 호사를 누릴수도 있을텐데 그냥 일기쓰기 좋아하는 여행자일 뿐이네. 애석하게도 내 일은 사람들과 둘러앉아서 얘기를 많이 해야하는 일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한번쯤은 직업으로 가져보고 싶다. 여기서 혼자 앉아 한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해가 넘어가지 않는다. 이러다가 갑자기 넘어갈지도 모르겠으나 해넘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내려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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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1339.JPG 해 넘어갈 때의 하늘이 역시 최고로 이쁘지.


DSC_1336.JPG 산악 철길.


아까 사진을 찍다가 내가 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연도 좋지만 자연에 길이 나있는 것을 좋아한다. 물길, 골목길, 기차길 다 좋다. 길이 왜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이유가 많더라. 길은 목표를 제시한다. 따라오라는 메시지. 길은 휘기도 곧기도 한데 그 선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안심이 된다. 누가 나보다 먼저 걸었고 심지어 내놓기 까지 한 것이 길이니까. 길의 아름다움은 꽤나 여성적이다.


DSC_1341.JPG 얼추 다 내려왔다.


DSC_1349.JPG 해 다 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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