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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Oct 16. 2015

그린칭

in Wien

* 20150905

* Köln Hbf - Wien Westbahnhof


한참 디비자고나니 밖이 시끄럽다. 벌써 뭔가 아침빵을 나눠주나보다. 비행기는 아니어도 야간열차라고 나름 조식이 있다. 빵이랑 커피를 주길래 씹어먹었다. 어제 내 아래층에서 자고있던 뚱보 아저씨는 맹인이었다. 그래도 야간열차 잘 타셨고 영어도 독어도 잘 하신다.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 여자들 이쁘다고. 그런데 언제 버전인지는 모르겠다. 시력을 잃기 전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마음이 이쁘다는 건가... 빈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나와있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처음이고 한국에서는 비슷한 경우를 본적이 없다. 이 밖에도 목발을 짚거나 의족을 단 사람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이후 꽤 많이 보았다. 그들은 현지인이기도 했고 여행자이기도 했는데 누구도 한국의 장애인들처럼 뭔가 위축된 느낌이 없다. 2002년 여행때도 유럽이나 일본에서 장애인들을 어떻게 사회가 받아들이는가를 보면서, 국민소득은 따라가도 국민의식은 따라가기 어렵구나 싶었는데 이 느낌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같다. 돈을 아무리 벌면 뭐하나. 사람답게 살줄 모르면 말짱 헛거지. 


부다페스트 난민 상황으로 인해 열차 직행이 끊겼다. 덕분에 오늘밤에 보기로 했던 코라이 외룀 어쿠스틱 라이브를 못보게 되어 속이 쓰리다. 내가 언제 또 헝가리에 올지 모르고 그때까지 코라이가 활동을 계속 할 것인지도 의문이 있다. 인연이 여기까지인 것이리라. 오늘 빈에서 뭘 해야 하나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재즈클럽이 오래된게 하나 있다하여 거길 가기로 했다. 나머지는 알게 뭐냐.


https://www.youtube.com/watch?v=rgBY-eFBG3o&feature=youtu.be

이런 음악을 하는 분들이시다. 프로그레시브 싸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사하는데 내공이 정말 빵빵한 밴드.


숙소를 하나 정해놓구 나갔는데 최고로 헤맸다. 말도 안되는 곳에서 씐나게 헤매고 있다가 경찰 덕에 올바른 코스로 이동했다. 가니까 방이 없다하여 다른 호스텔로 이동. 거긴 방이 있어서 3박을 결제했다. 짧게 적었지만 영화 한편 볼 시간만큼 헤맸다. 이렇게 대차게 헤맨 도시는 없었는데... 


중간에 마트에서 뭔가 한참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뭔가 설마 난민들은 아닐텐데 하며 물어보니 난민들을 돕기위한 사람들이었다. 오스트리아가 열차를 차단해서 사람들이 부다페스트에 억류된 것이라 들었는데 그건 국가 입장이고 또 젊은이들은 달랐던 것이다. 트램 정류장에 난민들 환영한다는 스티커가 벌써 붙어있었다. 유럽도 미국 못지 않게 인종의 용광로다.


난민 맞을 준비중.

 https://twitter.com/pinkcrimson/status/640107318504505344


빈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시티센터가 은근히 넓고 볼것들이 좀 퍼져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걸어서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고 나는 일찌감치 72시간 빈 카드를 샀다. 그런데 트램 노선도가 레어템. 라인은 복잡한데 노선도도 없고 두번쯤 잘못탄 것 같다. 트램보다는 라인이 좀 쉬운 지하철 위주로 이용했다. 여기 지하철은 승강장에서 에스컬레이터 타면 지상이고 막 그렇다. 티켓 체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깨알같이 표 다 찍어가면서 다니던 암스테르담과는 전혀 다르다. 여기는 내가 가본 다른 도시중에 비교하자면 헬싱키 스타일. 즉 완전 방치 대중교통이다. 난 이런 것이 좋다. 일일이 체크하는 귀찮음보다 그냥 믿고 방치하는 소박함에는 여유가 담겨있다. 그리고 표 일일이 확인하는 인건비를 생각하면 그리 큰 이득도 아닐 것이다.


레오폴트 미술관에 갔다왔지만 공연까지 시간이 남아서 그린칭이라는 와인셀러 스트릿에 가보기로 했다. 가보니 별건 없고 와인파는 집들이 있는데 와인 저장소로 쓰던 곳에서 장사를 하는건가 가게들 생긴게 운치가 있었다. 내가 들어갔던 가게는 이미 예약이 꽉찬 상태였는데 보니까 할부지 할머니들이 모여서 노가리 모임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뽐나는 곳에서 노인정 잡담을 하다니 다들 팔자가 좋다. 레드와인 한잔 하니 알딸딸하다. 먹다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는 왜 여기에 ㅋㅋ


와인가게의 지하 좌석. 여길 다 채울수나 있나 모르겠다.


어딜가나 영감님들 뿐이다. 젊은이들은 돈버느라고 놀 시간이 없나보다.


이런 가게들 수십개가 모여있는 곳이 그린칭이다.


돌다오는 트램을 탔다. 그 와중에 개독청년이 트램에서 말을 건다. 왜 개독청년인지 알았느냐면 내 건너편 청년에게 계속 말걸고 있었는데 지저스니 바이블이니 하는 단어들이 들렸기 때문이다. 종종 쎄이탄(Satan ㅋㅋ)도 들렸다. 어쨌거나 내 차례가 왔다.


: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세요.

:: 거럼요 언제나 저와함께 있어요.

: 그런데 세상에 악마가 너무 많이 있네요. 성경에 길이 있어요 그분을 따라야 하죠.

:: 그분은 나의 목자시니 당연하죠!

: 어디서 왔나요? 아 서울이면 반년전에 가봤어요. 서울은 악마로 가득해요. 모두 스마트폰만 보고 로봇같아요.

:: 서울엔 거대한 교회가 한가득인데요.

: 교회를 부숴야해요. 예수님은 그런 교회에 거하시지 않아요.

:: 그렇지요. 내 마음속에 거하시니까요. 트램 안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만 얘기합시다. 지저쓰 러브즈 유!


나를 응시하던 개독청년. 저 친구 전도하다가 실패하고 곧 나에게 왔다.


그렇게 끊었는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권하는 것에 비해서는 꽤 멀쩡한 얘기를 했다. 서울의 교회는 죄 부숴야한다는 이 청년의 의견엔 그저 닥치고 아멘!뿐이다. 공항철도 타고 들어오는 길에서 이미 사탄의 기운에 마음이 힘들었다는데 이놈아 그 사이엔 교회도 없구만 뭘 보고 사탄을 느낀거냐 너야말로 사탄마귀가 눈에 낀 거 아니냐...라는 말은 너무 복잡해서 하지 못했다. 외국어의 장점은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정말 용건만 간단히 전하게 된다는 점이다. 아니 용건만 전해도 다행이지. 요전에 프랑크푸르트에서도 개독을 보았는데 어쩌면 사탄보단 개독이 어디에나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혹도 괜찮지 않아? 유혹에도 넘어가고 지저쓰도 가끔 찾고 그러면 안돼?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비도 오고 몸도 힘든데 그만하기로 했다. 


오늘의 공연장 입구.

그래서 이러구러 재즈카페. 70년대부터 운영해온 유서깊은 곳이라 한다. 들어왔더니 벽돌로 된 지붕이 나를 반긴다. 일단 장소부터가 먹고 들어가는 곳이다. 15유로. 오늘 하는 밴드는 잘해야 한다. 코라이 외룀을 못본 내 마음을 달래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게가 너무 좁아서 내 바로 앞에도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초상권 미안. -_-


공연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좀 짧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동네 밴드치고는 나름 수준있는 연주를 들려주었고 보컬 아줌마도 꽤나 힘이 있었다. 그보다도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다. 장소가 좁아서 내 코앞에 두 팀이 앉았는데 모두 자기들끼리 잡담을 열심히 했다. 그들의 잡담이 들리진 않았지만 표정이나 억양이 재미있었다. 라이브 클럽들의 주요 수요자들이 6-70년대생 이후로 끊기고 있는 것이 여기서도 느껴지고 있다. 80년대생 이후로는 뭔가 다른 곳에 가나보다.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_cXf88zwc

공연은 대략 이랬다. Susan Rigvava-Dumas


백밴드 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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