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년 3개월 전에 남편이 생겼다. 아니, 7년 동안 줄곧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남편으로 타이틀만 바뀌었다고 하는 게 더 맞으려나. 결혼식 같은 건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고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모든 사람이 나만 쳐다보는 가운데 버진로드를 걸어 내려가기에는, 내가 주목받는 걸 그다지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누가 나에게 ‘결혼을 했다’라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지, 좀 멋쩍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아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오랫동안 사귀어 온 죽이 아주 잘 맞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랑 어느 순간부터 같이 살게 된 기분이다. 그래도 혼인신고는 했으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편의상 서로를 아내와 남편이라 칭하긴 한다. 그마저도 어색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편하긴 하지만.
웃기게도 우리는 7년이라는 시간을 만나 오면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심지어 장난으로도) 한 적이 없다. 연애 초반, 하루키의 표현을 빌려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한 사랑’을 할 때에도 숱한 연인들이 속삭이는 것처럼 ‘결혼하고 싶다’는 둥,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는 몇을 낳자’는 둥 지켜 지지도 않을 빈말 같은 건 둘 다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내 경우에는 자라 오며 지켜본 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아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고 20대 초반에 만난 서로를 가벼운 연애 상대 정도로만 여긴 것도 아니었으며,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꽤나 멋지고 특별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결혼은 뭐 할 때 돼서 하고 싶으면 하겠지, 아님 말고. 둘 다 줄곧 이런 생각이었고, 그래서 우리에게 ‘결혼’이란 단어는 암묵적 금기어였다. 결국 그 둘은 제주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말이다. ‘결혼을 했다’라는 심플명백한 법적 관계로 우리의 사이를 정의하기보다는 ‘함께 산다’라는 말을 쓰고 싶다. ‘함께 산다’라는 말은 ‘결혼을 했다’라는 말보다 일단 더 즐겁다.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갑갑함도 없고, 시댁, 시부모님, 명절 등등 골치 아픈 문제들의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으니까. 비겁할 수도 있는데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여러 부담감과 의무를 감당해 낼 만한 용기가 아직 나에게는 없다. 그에 비해 ‘함께 산다’라는 말에는 ‘결혼’보다 둘만의 관계에 무게를 실은 느낌이 있기 때문에 버틸 만하다.
#이기적인 결혼에 대한 변
이 글을 읽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분들은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저희의 결혼식은 없을 거라는 사실을요.
어떤 이에게는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일일 수도,
또 어떤 이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저 우리 둘만이 주인공이 되는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소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그런 결혼 말이에요.
이 친구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도 같답니다.
상연이와, 그리고 건녕이와 함께라면
혼자일 때보다 오히려 더,
‘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강요하는 이 세상을요.
윤상연답게, 고건녕답게 -
하지만 또, 상대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예뻐하며
줄곧 함께 해 온 7년의 시간, 그 후를 이어나가 보려 합니다.
제주에서 봄을 기다리며,
상연&건녕
우리가 직접 디자인한 청첩장에는 결혼식 장소, 시간, 약도 같은 것들 대신에 둘이서 한참을 고심해서 쓴 편지와 셀프로 촬영한 결혼사진을 넣었다. 나와 연이가 마침내 결혼을 빙자하여 함께 살기로 한 이유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도,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도,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서도 아니다. 그저 더 이상 떨어져 있기 싫어서였다.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7년을 만나는 동안 반절 정도는 장거리 연애를 했다. 내가 공무원 수험생이던 시절이 그랬고, 각자 서울과 세종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때가 그랬다. 떨어져 있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헤어지기에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 같은 곳에서 직장을 다니며 함께 사는 것. 그리고 그곳은 어쩌다 보니 제주가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남편이 생겼다. 남편이자, 함께 사는 사람이자, 내 영혼의 친구. 함께 만든 저녁을 식탁 위에 차리고 마주 앉아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 다음엔 저렇게 해보자 얘기하며 밥을 먹다 보면 하루의 우울함이 사라지고, 하루에 세 번쯤 그를 안으면 여전히 나는 녹아내린다. 온갖 일로 마음이 요동치다가도 가만히 서서 서로의 몸에 팔을 두르고 아무 말 없이 안고 있으면 온 우주에 우리 둘밖에 없는 것처럼 고요해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 가슴으로 조용히 전달되는 그의 평온한 심장박동은 세상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만든다.
남편이 있는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다. 감히 예상해 보건대, 이 아이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에 결혼은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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