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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l 14. 2020

아, 결혼식 안 하길 잘했다

담백한 결혼에 대한 예찬




  가끔 친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결혼식장을 찾는다. 어두컴컴한 하객석에 앉아 하얀 생화와 불 켜진 캔들로 장식된 화려한 버진로드를 바라보고 있자면, 우리가 결혼식을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그리게 된다.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로 화사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 신부대기실에 긴장 반 설렘 반인 모습으로 앉아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는 마음 한 구석이 살짝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해보지 못한 경험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박탈감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러나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친구를 격하게 축하해 준 후, 사진 촬영이니 식사니 모든 절차를 마치고서 식장을 나올 때 결국 드는 단 한 가지 생각은,


   ‘아, 결혼식 안 하길 잘했다.’



이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절대 가지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식장으로 들어갈 때는 질투 플러스 우울감까지 느껴지기도 하는데, 연이랑 손 잡고 문을 나설 때는 딴판이 된다. 고작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는 일종의 망연함이 몰려와서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한 우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 우린 정말 잘한 것 같아, 그렇지? - 응, 진짜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군가가 볼 때는 가지지 못한 자의 서글픈 자위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짜.로 결혼식을 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결혼식은 없을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지금까지 받아본 청첩장 중 가장 인상 깊고 와 닿는 청첩장이라며 축하해 준 사람. 용기 있고 멋지다며 응원해 준 사람. 대부분 우리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 (아니꼽게 바라보며) 그래도 결혼식은 해야지.
 - 하하 그렇게 됐어요 하하하... (속마음: 왜죠? 꼭 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요?)

-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셔?
- 네, 저희 의견 존중해 주셨어요~ (속마음: 우리 결혼식이니 할지 안 할지는 우리가 결정해요.)








  최근에는 결혼식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결혼 당사자들보다 부모님들의 행사로 여겨지는 건 분명하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존재는 당연히 소중하므로 그분들의 의견도 물론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체는 반드시 나와 연이 두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은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시기도 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결국 우리의 의견을 존중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결혼식을 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데 있어, 부모님의 의견이 고려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축의금일 것이다. 그동안 뿌린 것을 거둘 기회. 축의금을 주고받는 문화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문화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와 주는 경우보다는 나중에 내가 받을 것을 기대하며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러다 보니 내가 준 금액보다 적은 금액을 축의금으로 돌려받게 되면 괜스레 빈정 상하고 서운해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연이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축의금을 준다.) 한없이 이어지는 축의금의 악순환을 끊고 싶었다. 우리의 고집 때문에 부모님들께서 축의금을 받으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 죄송스러워, 마지막 효도라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결혼식을 해 버릴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첫 번째 이유.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일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아서


 내가 참석했던 일반적인 결혼식들은 길어 봤자 세 시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작 몇 시간에 몇 천만 원을 쏟아붓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에 한 번뿐인 이벤트라는 이유로 양가 부모님들께서 지원해 주신 돈, 은행에서 빌린 돈을 앞날이 없는 것처럼 펑펑 소비하는 내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 당사자들이 충분히 그만한 능력이 된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모아둔 돈도 충분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돈을 빌려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굳이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와 연이도 한때 스몰웨딩을 고려했었다. 단, 스몰웨딩이 일반 결혼식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였다. 하지만 말이 스몰웨딩이지 욕심을 채우다 보면 일반적인 결혼식과 다름없거나 더 큰 비용이 들 것 같았고, 그렇다면 굳이 스몰웨딩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펑하고 사라질, 세 시간짜리 행사에 우리가 피 같이 모은 돈을 들이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우리 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고, 함께 모아두었던 돈은 우리가 살 30년 된 집을 직접 고치는 데 썼다.







 번째 이유. 결혼식에서 파생되는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아서


  양가 부모님들 사이에 예물 예단 등의 명목으로 여러 가지 물질적인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었다. 몇 백만 원짜리 반지를 예단으로 받았다느니, 몇 백만 원짜리 시계를 예물로 줬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듣기도 하는데, 솔직히 말해 관심도 가지 않을뿐더러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울 뿐이었다. 심지어 결혼을 준비하며 예물 예단 문제로 부모님과 의견 차이가 생겨 다투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자식들은 원하지 않고, 부모님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거기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부모님과의 갈등은 결국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의 갈등으로도 이어지기 마련이다. 영양가 없이 소모적이기만 하고, 생각만 해도 피로해진다.


  요즘은 다행히도 결혼식은 올리더라도 예물 예단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신랑 측에서 신부 측 집으로 보내는 예물. 신부 측에서 신랑 측 집으로 보내는 예단. 둘 다 우리나라의 전통 혼인문화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이제는 슬슬 사라져도 될 전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전통을 지키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때로는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부모님의 입장에서 보면 예물 예단은 단순히 금가락지 또는 이불 한 채라기보다 딸 아들을 시집 장가보내는 애틋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음은 마음으로만 받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혼은 엄연히 말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니까, 온전히 우리 둘이서 모든 걸 책임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식은 양가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식사 한 끼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따뜻하면서도 즐거웠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꿈 하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소박하고 담백하고 실용적인가. 결혼반지도 그닥, 웨딩드레스도 그닥, 결혼식까지 하지 않았다니- 이쯤 되면 내가 낭만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한데, 사실 꽤나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눈물도 많고, 별것 아닌 것에 감동하고, 이성보다 감정이 저만큼 앞서는데, 속 빈 겉치레는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종종 들려왔던 부정적인 말들은 정말 그때뿐이었다. 당시에는 내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남일에 저렇게 참견을 할까 싶고 기분이 팍 상하는 순간이 많았다. 마치 우리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뱉는 무책임한 말들. 그런 생각 없는 말들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주변 시선은 잠깐 제쳐 두면 그 후는 더 행복하니까. 부모님들께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않아 떳떳하기 때문에 그들의 크고 작은 간섭을 줄일 수 있고, 빚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부담이 덜하다. 이 정도면 결혼도 꽤 괜찮은 선택지 아닌가. 쓸데없는 것들은 모두 덜어낸 담백한 결혼식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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