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확인하는 또다른 방법
애초에 결혼반지나 웨딩드레스에는 기대도, 욕심도 없었다. 물론 결혼은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를 만나고 인생의 향방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중대한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 중대하다는 것이 꼭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고 줄곧 믿어 왔다. 결혼반지도 마찬가지.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게 나의 입장이었으며, 연이만 동의한다면 결혼반지를 맞추지 않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몇 백 들여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 두 개를 맞춰 봤자 내 성향상 손가락에 고이 끼고 다닐리는 만무했고, 반지는 화장대 구석 어딘가에 깊숙이 쳐 박혀 빛도 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없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반지에 큰돈을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돈도 아낄 겸 겸사겸사 결혼반지는 패스하기로 했다.
7년 연애하며 나도, 연이도 굳이 먼저 커플링을 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커플링을 하면 우리 사랑의 의미가 오히려 퇴색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서로의 네 번째 손가락에 고리를 끼워서 “우리 열렬히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유치하게 티 내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고 사랑을 주고 있었으니까.
20대 초반을 돌이켜 보면, 주변의 동갑내기 연인들은 저마다 각자의 폭풍 같은 사랑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랑하고 싶어 했다. 나와 연이도 그랬듯이, 그때는 남녀 두 사람의 자아가 완벽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치 회오리바람 같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하니까. 결혼 같은 현실적인 이슈가 걸려있지 않다 보니 사랑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것인가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순간순간 느껴지는 크고 작은 감정에 충실했던 것 같다. 갑자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막차를 타고서라도 보러 갔고, 싸우고 싶을 땐 활화산처럼 싸웠다. 또 얼마나 내 연애를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는지, 나는 연이랑 둘이 과하게 붙어서 찍은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종종 올리는 방법으로 내 연애를 티 내곤 했다. 웃긴 건, 자랑의 수단이 커플링은 아니었으면 했다. 한 번 부린 고집은 절대 꺾지 않는 골치 아픈 성격을 가진 나는 끝까지 ‘커플링 반대’ 노선을 고수했다. 고작 얇디얇은 손가락 장신구 두 개가 우리 사랑의 증표가 된다는 사실이 적잖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너네가 뭔데 감히. 우리의 크나큰 사랑을 그 원 안에 담는다고? 작은 반지 하나에 뭐 그렇게 쓸데없는 반항심을 가지느냐 할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나. 하라는 건 하기 싫고,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이상한 성미를 타고난 걸.
내 똥고집은 7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결혼반지 대신 타투를 했다. 각자의 손목 안쪽에 서로의 애칭을 작게 새겼는데, 너무 작아서 타투를 했다는 사실을 종종 깜박하고는 벌레인 줄 알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는 게 문제. 반지는 죽어도 하기 싫은데, 난생처음인 타투를 크게 하는 건 또 무서웠나 보다(나란 인간). 하지만 작으면 어떤가. 각자의 몸 어딘가에 서로의 이름을 작게 새겨둔 것만으로도 결혼을 기념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우리가 반지까지 하지 않는다니 적잖이 신경이 쓰이셨는지 자꾸 다이아몬드가 박힌 비싼 반지를 맞추라고 닦달을 하셨다. 헤헤 반지 필요 없어요 하며 몇 번은 어물쩍 넘어갔는데 또 한 번 반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엄한 척(?) 하시며 사뭇 진지하게 명령형의 어조로 말씀하시는 바람에 뭔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부모님들의 도움을 일체 받지 않고 결혼을 했는데, 우리 시아버지는 결혼 초기에 통화할 때마다 자꾸 나한테 ‘아빠가 아파트 하나라도 해 줘야 하는데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하시곤 했다. 나는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저희가 결혼하는데 왜 아버지가 아파트를 사 주셔요. 사도 저희가 사야지- 하고 넘어갔는데 그래도 결혼반지만은 해 주고 싶으셨던 거다. 소원이시라는데.. 계속 안 한다고 버틸 수도 없고. 결혼반지의 효용이 아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거라니 조금 웃겼지만 그래도 결국은 둘이서 결혼반지를 만들러 가기로 했다. 비싼 걸로 맞추라고 하시는 걸 겨우겨우 타협한 지점이었다. 그래서 서귀포 오하효로- 결혼하고 이틀 만에 서귀포로 내려오셨다는 귀여운 두 사장님과 착한 폴(푸들)이 있는 그곳에서 난생처음 반지를 만들었다. 오하효에서 만든 반지는 그렇게 우리의 첫 커플링이자 결혼반지가 되었다.
오하효의 원데이 클래스에서 반지를 만든 지 벌써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내 손가락에는 당연히! 반지가 끼워져 있을 리 없다. 화장대 위 주얼리 플레이트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반지의 행방을 파악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이다. 이럴까 봐 한사코 결혼반지를 거부했던 건데. 연이도 나와 비슷해지는지, 원래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반지 없이 잘만 다닌다. 서로 반지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히려 좋다. 손가락에 반지가 보이지 않을 때 왜 안 꼈냐고 추궁할 필요도 없고, 끼고 다니다 잃어버릴 일도 없으니 섭섭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뽀뽀를 좀 더 많이 하고, 좀 더 많이 포옹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걸로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사랑의 감정을 아무 계산 없이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상대가 나에게 주는 넘치는 사랑을 조금도 남김없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반지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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