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이 집 진짜 우리랑 잘 어울린다!

by 덱시





우리가 살게 될 집은 오래된 집이었으면 했다. 할머니 집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나무 문틀, 오래되고 촌스러운 타일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방배치나 구조 같은 것들이 좋았다. 오래된 집이니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칠 수 있는 여지도 많을 것 같았다. 수납공간이 넉넉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깔끔하게 마감된 신축 아파트나 빌라도 탐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2019년 봄이 오던 무렵 연이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닐 때에는 내 손으로 직접 집을 고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낡디 낡은 집에만 눈길이 갔다. 직O같은 어플이나 제주시 오일장 신문을 손에 쥐고 낡아 보이는 집만 찾았다. 그러다가 창문틀과 문이 나무로 되어 있는 것 같으면 홀린 듯 들어가 확인한 후 직접 보러 가는 수순이 이어졌다. 그러길 몇 차례. 지금은 우리집이 된 이 집을 발견했을 때 연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집 진짜 우리랑 잘 어울린다!”






우리집 B동 302호






20년 가까이 된 기름 보일러의 전원을 누르면 마치 꽹과리를 치는 것 같은 날카로운 쇳소리로 귀가 아프고, 바람이라도 많이 부는 날이면 온 집안이 창문 덜컹거리는 소리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냥.. 머스터드 색 외관의 건물을 보는 순간부터 우리가 이 집에 반할 것이라는 사실은 정해져 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를 닮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데 그 정도 불편함 쯤이야.


31년 된 15평 빌라는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는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약간 노오란 톤이 섞인 나무 창문틀과 오래된 문들은 내 눈에 그야말로 완벽해 보였다. 연한 연어색의 화장실 바닥 타일은 또 어떻고. 바닥의 장판은 큼지막한 무광 화이트 타일로 바꾸고, 겹겹이 쌓여있는 벽지는 떼어버린 후 페인트칠을 하고, 오래된 부엌에는 나무로 된 선반을 길게 달아야지. 이곳저곳 살펴보는 와중에 꿈속에서만 그리던 인테리어가 마음속에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미닫이문 손잡이와 연어색 화장실 타일







우리집은 나와 연이가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로만 가득 찬 공간이었으면 했다. 비단 집에 들어찰 물건들뿐만 아니라, 싱크대의 컬러와 손잡이, 조명의 밝기, 욕실 선반의 재질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말이다. 인테리어 업체에 집 전체 인테리어를 맡긴다면 철거, 목공, 타일, 전기, 수도 등 각 공정별로 일정 조율 및 기술자 섭외까지 모두 책임져 주기 때문에 일은 훨씬 간단해질 테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욕심인지 용기인지 모를 무모함 덕분에 우리는 함께 셀프 인테리어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했다.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책임져 보기로 한 것이다. (이 결정은 불과 인테리어의 첫 단계인 벽지 떼기에서부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하하...)


2019년 2월 말 혼인신고 - 3월 집구하기 - 4월 집고치기 - 5월 집고치기 - 6월 집고치기 및 입주. 2019년 상반기, 그러니까 우리의 신혼생활 극초기는 그야말로 ‘집고치기’로 점철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달한 제주의 신혼생활을 만끽해야 할 시기에 우리는 한 손에는 사포, 한 손에는 대형 물뿌리개를 들고 온몸에 석고 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서로를 보며 킥킥대고 있었다. 주말에는 항상 벽지를 떼거나, 페인트칠 전 단계인 퍼티 작업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거나, 벽에 구멍을 뚫고 있었으며, 퇴근 후 저녁 시간이나 공휴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집을 고치던 기간 동안 가장 많이 간 곳은 철물점, 가장 많이 입은 옷은 나의 회색 작업용 오버롤. 오버롤을 입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는데, 실제로 해 보고 얻은 것은 군데군데 묻은 하얀 페인트 자국과 오버롤이 작업하는데 최고로 실용적이고 편한 옷이라는 깨달음뿐이다. 오버롤을 입고 페인트칠하는 여성들을 보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그들도 진짜 그저 편해서 입고 있던 것뿐이었다.





뜯어도 뜯어도 계속 나오던 벽지(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결정한 걸 사실 이때 좀 후회했다)






당시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가 풀타임으로 시간을 내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리모델링은 반셀프 인테리어로 진행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우리도 해 볼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은 최대한 커버하고, 기술자 없이 힘든 공정은 적당한 기술자를 섭외하기로 한 것이다. 오래된 집을 고칠 때 부엌, 욕실 리모델링과 함께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부분은 사실 샤시 교체인데, 샤시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무 샤시는 우리가 이 집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비용까지 줄일 수 있으니 우리에게는 여러 모로 잘된 일이었다.




업체에 맡기기로 한 부분* 타일 작업, 목공, 욕실 수도 공사 및 위생도기 설치, 싱크대 상하부장 모양 잡기

직접 해 보기로 결정한 부분* 벽지 떼기, 퍼티 작업, 페인트칠(벽, 현관문, 욕실문, 보일러실문, 싱크대 상하부장, 천장 몰딩, 가벽 등), 전기 공사




인테리어는- 말 그대로 끊임없는 결정의 향연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방향을 제시해 줄 컨설턴트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작게는 페인트 컬러나 타일 모양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부엌 싱크대의 디자인, 욕실에 들어갈 세면대와 변기의 종류까지. 살면서 그토록 많은 선택을 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오로지 우리의 취향과 생각만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 그렇게 머리 아프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인 줄 몰랐다. 서른이 다 되어서 싱크대 상하부장을 무슨 색 페인트로 칠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자니, 지금껏 살면서 너무 쉬운 선택만 골라서 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머리 아프게 고민하느니, 차라리 세상이 정해주는 대로 따라가면 편했으니까. 집을 고치는 일은 확실히 집을 고치는 일 그 이상이었다. 나는 내 인생이 어디로 튈지조차 모르는 애였지만 적어도 우리집 거실 조명이 어떤 모양이었으면 좋겠다 정도는 아는 애가 되었다.



싱크대 상판을 원목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원목 상판 제작을 문의하러 들렀던 목공방 사장님까지도 우리를 극구 말렸으니 말 다했다. 우리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인테리어 초짜였고, 전문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말린 것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해 봐야 했다. 습기 때문에 상판이 썩어서 후회하는 한이 있어도, 해보지 않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목 상판을 1년 넘게 사용한 지금은? 우려와는 다르게 우리집 싱크대 상판은 아주 멀쩡하며, 관리를 잘해주어 그런지 1년 사용한 상판 치고 때깔도 좋다.





그토록 원하던 원목 상판과 바닐라빛 상하부장(완성 직후)







집을 직접 고치기로 한 결정은 지금껏 남이 바라는 대로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반성이자,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반드시 정해진 대로 가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시간. 연이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고생스럽고 즐거웠던 2019년의 집고치기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오늘의집 온라인 집들이 화려한 결혼식 대신 소박한 집을 직접 고쳐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인테리어 계정 @dexy.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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