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비 시간

어떻게든 즐거운 하루

by 김떠기

몇 년 전에 어떤 웹진에 인턴 생활을 만화로 그려 투고한 적이 있다. 직장 생활과 관련된 웹진이었고, 그 안에 나를 비롯해서 회사 생활과 관련된 글이나 그림을 연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말에 송년회를 한다고 우리를 초대하였고, 우리는 일한 지 몇 개월 동안, 상대방의 글과 그림만 보다가 처음으로 얼굴울 보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끝난 후 관계자가 우리를 불러 사진을 한 장 찍어서 웹진에 올리고 싶다고 하였고, 우리는 모두 얼굴울 필사적으로 가리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쳤다.

"회사에서 제가 이런 일 하는 거 알게 되면 어떡해요."

담당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다들 그런 말씀 하시는데, 괜찮아요. 저희 웹진은 그렇게 유명한 곳이 아니어서."

라고 대답했다.


그때 재밌었던 게 뭐냐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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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동시에 나 자신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겪은 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알아차린다면, 그림 그리는 데에 제약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그림 계정을 공개했지만, 어쩔 때는 그마저도 후회했다.

사람들이 내 그림에 내 실명을 언급하며 댓글을 달면, 그 댓글을 삭제하기 바빴다.


이 그림일기를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등에 연재를 하다 보니 계속 팔로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잘 그리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어도, 어떻게 하면 빨리 더 많이 그릴까!라는 고민은 엄청 했다.

그러다 보니까 많이 포스팅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고, 자연스럽게 퀄리티가 떨어졌고, 그런 그림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2020년 12월 어느 날 나는 재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다.

베트남에 온 지 처음으로! 약 2주일 넘는 기간 동안 그림을 포스팅하지 않고 글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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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베트남 생활을 청산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일단 마지막이니까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회사 느낌이 나는 색과 베트남 느낌이 나는 색을 무작위로 뽑다 보니 서로 조화롭지 않은 색을 사용하는 것 같아 보기가 싫었는데, 먼저 비슷한 채도로 색을 다시 정리했다.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생각하여 굵기를 키웠고,

배경에 글씨가 묻혀서 안보이지 않도록, 배경 그림에는 테두리를 없애고, 글씨 쓰기 전에도 검은색으로 바닥을 깔아줬다.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서, 재정비 기간에는 그냥 마구잡이로 글만 썼다.

어쩔 때는 쓴 글을 조금 다듬어서 또 쓰고, 어제 썼던 글에 대해 추가하고 싶은 내용을 또 글로 쓰고, 조금 생각이 바뀐 것 같으면 바뀐 대로 또 글로 정리했다.

그러다 보니까 내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내 그림일기에는 '지민 씨'라는 등장인물이 하나 있는데, 나와 업무 스타일이 맞지 않아 참 힘들었던 사람이다. 같이 일할 때는 그런 게 하나도 안 보이고 오로지 나만 맞다는 생각이 들어

'얘는 왜 이렇게 생각을 할까? 정답은 저건데' 이렇게 생각을 자주 했는데,

글로 정리를 하다 보니까, 우리는 그냥 서로 달랐을 뿐이고,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해 가면서 일을 하는 내가 못마땅했겠구나 싶었다.


어제는 이렇게 글을 썼어도, 오늘은 저렇게 글을 쓰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평소에 일기를 쓰기는 쓰지만, 재정비 기간에는 있었던 일을 쓰기 보다도, 평소에 쓰고 싶었던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더 잘 정리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글을 더 자주 써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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