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로 '시발'을 말한 날

나는 욕을 언제부터 배워서 쓰기 시작했을까?

by Hanna


엄마는 내 질문에 유치원 다녀온 어느 날 갑자기 다섯 살 많은 오빠한테 욕을 쏟아부었다고는 하는데 이건 내가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이번 글의 소재가 되진 못했다.


정확하게 '아, 내가 방금 비속어를 썼구나!' 인지했던 순간은 초등학교 저학년쯤 아빠랑 전화하다가 "개똥 같은 소리~" 라는 리액션을 한 적이 있다. 본투비 경상도 남자이지만 나랑 전화할 땐 항상 딸바보 자아로 갈아 끼웠던 아빠가 순식간에 목소리를 깔고 그런 말은 누구한테 배웠냐며 추궁했다. 나는 곧장 꼬리를 내리고 "오빠"라고 범인을 지목했고 이어서 "이게 욕이냐"며 순진한 척 되물었다. 영악하게도 적절한 타이밍에 오빠 탓과 순진한 척 되묻는 권법은 그때부터 체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신기한 지점은 분명 아빠가 그런 말은 나쁜 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자꾸만 나도 모르게 친구들과 있을 땐 "개똥 같은 소리"를 말할 타이밍을 계산하곤 했다.


비속어가 주는 말맛과 시원한 쾌감을 어렴풋이 맛본 순간이지 않을까.


그러나 머지않아 비속어를 맛보기 수준이 아니라 폭격기 수준으로 쏟아낸 경험을 했다. 대충 10살 여름이었나. 항상 하교를 같이했던 두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중에 한 친구는 중학생 또래의 언니가 있어 언니한테 배운 욕을 우리에게 자주 알려줬다. 공교롭게도 이 친구의 이름은 우리 오빠 이름과 같은 <수민>이었다. 수민이가 알려주는 욕을 나와 다른 친구는 우등생 마냥 듣고 따라 하고 상황을 가정해 활용해 보고 복습도 했다.


새끼 앞에 붙는 수많은 응용 단어와 짜증 날 때 극대화 하기 위해 붙일 수 있는 다양한 어미, 그리고 '시발'의 강세 등... 된소리를 발음하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일 축하해" 라는 편지 문구에도 스티커 붙이듯 다양한 비속어를 붙였다.

이런 행동이 잘못됐다는 건 나름 인지하고 있었는지 셋이 학교에서 함부로 욕설을 뱉은 적은 없었다. 철저히 셋의 하굣길 그리고 편지에만 욕설이 난무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우리 셋의 이중생활은 주기적으로 내 방을 청소하는 엄마에 의해 발각됐다. 거실에서 태평하게 너구리의 대출금이나 갚던 내게 엄마는 밀대를 들고 달려와 "이거 뭐냐", "니가 쓴 거 맞냐" 면서 찢어지는 목소리를 냈다. 당황한 나는 왜 남의 편지를 열어보냐 (이 부분은 엄마가 잘못하긴 했다. 엄마는 종종 내 편지나 일기를 훔쳐봤으니깐) 되려 역정을 내고 수민이 언니가 쓴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했다.

그 뒤로 욕설이 가득한 편지를 쓰는 이상행동은 자연스레 종료됐다. 아빠가 "개똥 같은 소리" 쓰지 말랬지만 계속 썼던 것처럼 욕설 편지도 계속 쓸 수는 있었겠지만 어쩐지 한번 들키고 났더니 더 이상 이전처럼 짜릿하진 않았다.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했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혹은 '몰래' 한 일들이라 재밌었던 건진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뒤로 나는 평생 비속어를 쓰지 않는 사람... 이 되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여전히 나는 비속어가 주는 말맛을 즐긴다. 된소리는 된소리대로, 원래는 된소리의 발음은 나지막이 정직하게 해보는 것도, 서술어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형용(비속)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직은 즐겁다. 작가라면 바른말, 고운말을 써야 하지 않냐는 질타도 있겠지만 공식 선상에서는 철저하게 바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오프 더 레코드에서만 쓰는 짜릿한 맛이 더 좋으니깐.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나 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욕을 배웠고 쓰기 시작했을까? 여러분이 비속어를 쓰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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