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에도 블로그에도 쓸 수 없는 마음은 돌고 돌아 브런치에 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서너달 뒤,
아빠 쪽 가족들과 함께 예정대로 가족 모임을 갔다.
위로 형이 셋,
아래로 여동생 하나 있던 아빠는 제일 사랑하던 형을 떠나보냈음에도 식구가 많았다.
그다지 할일이 없던 우리 가족은 일찍 모였다.
정말 인생에서 잡은 숙소 중에 가장 큰 집이었다.
방이 4개, 화장실이 3개, 거실 하나, 연회장 급 식사 자리 두어 곳
자식들끼리 회비를 모아 1년에 한 번 모이는 자리인 만큼
좋은 곳으로 잡았는데 역시 후회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우리끼리 열심히 집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살폈다.
아빠는 혼자 방 쓴다며 작은 비서룸에 자리를 잡았고,
오빠는 소파에서 자도 된다며 딱히 방도 잡지 않았다.
나는 어느 방에 내 짐을 둬야 할까 한참을 서성였다.
엄마가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제일 크고 전망이 좋은 안방을 골랐을 거다.
"딸~ 우리 이 방 쓰자~ 원래 이런 건 선착순이야~"
온 집안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뱉고
제일 좋은 자리를 고를 줄 아는 안목과 당당함으로 날 안내했겠지.
그러나 나는 어떤 방도 고를 수가 없었다.
제일 큰 방은 큰엄마 큰아빠를 드려야겠지
현관 옆 방은 고모와 고모부가 쓰시겠지
나머지 방 두개는 이번에 곧 결혼할 사촌언니&오빠 부부가 하나씩 써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내 짐은 갈 곳 없이 거실 한 구석에 놓여졌다.
순식간에 기분이 우울해졌다.
5장 받은 무료 온천 입장권을 내가 쓸 수 있을까 싶었고
나는 짝 없이 누구랑 자나 싶었고
엄마가 없는 기분은 정말 사소한 곳에서 사소한 틈을 비집고 느껴지는구나 깨달았던 첫 순간이다.
그렇게 우울한 기분을 감추고
다음날 다같이 짧은 관광을 하고 헤어지기로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가족 셋만 경치 좋은 카페에 모였다.
사람이 꽉 찬 카페였지만 운 좋게 전망 좋은 자리를 잡고도 드는 아빠의 첫 마디는
"네 엄마가 좋아했겠다" 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셋은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의 모든 가족 여행이 기존과는 다를 거란 확신, 그리고 불안.
그러나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니 체념.
결국에는 우리 셋 뿐이라는 의지까지.
짧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우리 집만 빼고
모두 완전한 가족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