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마음

인스타에도 블로그에도 쓸 수 없는 마음은 돌고 돌아 브런치에 온다

by Hanna

계획대로 엄마가 죽었다.


<이방인>의 첫 구절 비스무리 한 게 내 이야기라서 그렇게 카뮈에게 마음이 쓰였던 것일까. 1인실만 자리가 났다. 하루 15만원. 간병인은 알아서 고용해야 했다. 이미 동네 요양병원에서 중국인 간병인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엄마는 간병인이란 존재 자체에 치를 떨었다. 결국 아빠는 퇴사했다. 하루 15만원이 일주일이면 105만원, 혹시 입원이 2주가 되면 어쩌지? 한달이 넘어가면 어쩌지? 걱정했다. 애석하게도. 호스피스 병동이면서 감히.


엄마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마치 내 걱정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끝까지. 엄마는 으레 고민의 늪에 빠지는 나를 비웃곤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별도 가소롭께 끝난듯 했다.


일주일간 병실에도 사흘간 장례식장에도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예상 못한 사람들의 방문에 큰 위로 - 여기서 말하는 위로란 직접 장을 치러본 사람으로서 정의해보자면 금세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과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내뱉음으로써 실제로 괜찮은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기분이다 - 를 얻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 장례의 가장 큰 장점은 쉴 틈이 없다는 것. 수많은 결정 단계, 예배 절차, 조문 예절, 화장터 예약, 수목장 선택 등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먼저 치러본 스물 일곱살로서 이렇게 세속적인 행사는 처음이었기에 슬픔보다 낯선 감각이 더 컸다.


그래서 그런가? 8월 한달 내내 장례식 치르는 꿈만 꿨다. 꿈속에서 하염 없이 울다가 깼다. 일어나면 실제로 운 것처럼 머리가 울리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았다. 장례식에서는 정말 현실처럼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어색한 사촌들이 나왔다. 영정사진 속 활짝 웃는 엄마의 모습이 2~3년도 된 모습이라 꿈에서는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웃을 때 특히 나는 엄마의 습관을 많이 닮았는데, 꿈에서라도 3D 영화 보듯 볼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그린데이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썼던 이 노래도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고 이미 생각했다. 그렇게 8월이 지나고 9월이 되었다. 고작 세 문단즈음 쓰는 데에도 눈물이 비죽비죽 난다.


표류하는 생각을 모두 활자로 적고도 울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올까 궁금해서 브런치에 왔다. 그동안 오랜만에 만난 친구 모임에서 엄마 근황을 이야기 하기가 참 어려웠다. 물론 새로 친해진 사람들에게도 엄마 이야기를 선뜻 하지 못했다. 즐거워 보이는 분위기를 내가 무겁게 만드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어렵게 무거운 마음을 꺼내놔도 돌아오는 반응에 내가 위로받을 거란 기대도 들지 않았다. 어두운 분위기를 또 다시 내가 풀어야만 풀리는 숙제 같은 이야기라서 정작 엄마와의 끝이 다가오면 올수록 엄마 이야기를 피했다. 인스타도 블로그도 즐거워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결국 나는 브런치에 왔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다시 풀고자 하는 의무감 없이 마음을 써내린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엄마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기 시작하던 순간, 가까운 가족에게도 아픈 걸 숨기는 모습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엄마 마음을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한심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던 날들이 잔향처럼 남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9월 26일. 역시 아직은 아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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