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고부갈등 시리즈
7살이었나? 자아가 생겼을 무렵부터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전기 사업을 하셨는데
70년대에 아파트 살았던 것 보면 꽤 잘 살긴 했나 보다.
자식들 집 하나씩 해주고 노후는 알아서 건물 하나씩 정리하면서 보내셨다.
남편 집안도 어느 정도 돈이 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시어머니가 돈이 많았다.
시어머니는 그 옛날에 99칸집 며느리로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신혼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러니까 남편이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거다.
그렇게 시어머니의 시댁은
며느리가 너무 불쌍하고 그래도 아들을 하나 낳았으니
가족처럼 데리고 살았다고 한다.
모든 재산 역시 며느리에게 돌아갔다.
결혼 전 남편에게 시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남편 없이 외로우셨을테니 잘 모셔야겠다 다짐했다.
결혼하고 보니
우리 남편은 부인이 둘이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어서 그런지
하나뿐인 아들을 꼭 남편처럼 키웠더라.
고기는 반드시 언덕 세탁소 옆 정육점에서 사야 하며
과일은 시장 두 번째 골목에 있는 가게 것을 사다 먹이란다.
그런 거 사실 그냥 예예하고 토 달지 않는 성격이라
(오히려 누가 정해주면 편하지 뭐) 참을 만 했다.
머지 않아 분가해서 이제 싫은 소리 안 듣겠다 싶었지.
그런데 아주 시시콜콜 우리집을 드나들더라.
집에 와서는 시어머니가 남편 옷을 못 다리게 했다.
남편 옷을 다려 입히란 게 아니라
못 다리게 했다. 왜?
자기가 다려야 한단다.
쌍둥이 임신하고 남편이랑 쉬고 있는 방에
귀 대고 엿듣고 있던 시어머니도 발견했을 땐
아주 호러가 따로 없었다.
그러다 가끔 지아들한테 사랑받고 사는 게 얄미웠는지
별 것도 아닌 걸로 트집 잡아 실내화로 때릴 때도 있었다.
남편 없어 외로운 여자는 맞지만
아주 미친 여편네였지.
남편은 엄마가 80세 넘어서도 청바지 입고
보험 일을 하며 쌍둥이 육아비로 월에 250만원씩 보태주면서도
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니
나도 나가서 그렇게 돈 벌길 바라더라.
보고 자란 게 그뿐이라
그뿐인 걸 보고 자랐어도 생각 수준이 그 모양이라.
그러다 김치공장 사업 하던 걸 말아 먹고
연대 보증은 전부 내 이름으로 서놔서
친정도 같이 말아 먹고
하는 말이 며느리가 가난해야 생활력이 좋다더라.
물론
나는 일주일에 이틀 이불가게 알바 가는 것도 죽을 만큼 싫다.
고작 3시간 일하다가 오는 건데도
일하는 게 너무 싫다.
쌍둥이 딸도 똑같이 컸다.
나이 서른이 돼서도 분가도 못하고 변변찮은 직업도 없다.
이십대 초반에 관공서 사무보조 알바 할 때
그만두고 싶다면 당장 그만두라해서 그런가.
취직을 안 한다.
곱게 자라긴 했지.
그런데 과연 시엄마는 가난한 며느리를 들였으면 달랐을까?
세상에 이런 시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며느리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