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고부갈등 시리즈
오남매를 낳은 옥순의 신조는 하나였다.
'집안은 장남이 일으킨다'
그래서 영철은 장남이란 유일한 이유로 유일하게 대학에 갔다.
그것도 꽤 잘 갔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해 영어학원을 차렸고 저출생인 지금까지도 학원은 어찌어찌 잘 굴러가니,
옥순의 신조가 옳았다면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미숙은 옥순의 장남 사랑을 알고 결혼했다.
연애 때부터 입만 열면 '우리 아들'이었으니 눈치 못 채는 게 더욱 어려웠을 거다.
의외로 옥순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쉬웠다.
미숙이 영철의 아들만 낳아주면 됐다. 간단했다.
비록 영철이 둘 이상은 못 키운다고 못 박았지만 간단하리라 믿었다.
애석하게도
첫째는 딸이었다.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쯤으로 첫째는 넘어갔다.
그런데 둘째도 딸이라는 현실이 닥쳤다.
택시 안에서 듣는 라디오 썰도 아닌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도 아닌 미숙의 인생이 그러했다.
결국 둘째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옥순이 팔 걷고 나섰다.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음식, 약재, 미신
가리지 않고 미숙에게 건넸다.
미숙은 살신성인 옥순의 계획을 따랐다.
어느 날
옥순이 '금도끼를 품고 있으면 아들을 물어다 준다'는 이야기를 하며
직접 제작한 조그만 금도끼를 건넸을 때도
목걸이로 걸고 다닐지, 작은 주머니를 만들지, 브라 끈에 달고 다닐지
어떻게 하면 금도끼를 항상 품을 수 있을까
다른 생각은 않았다.
끝내 미숙이 아들을 임신했다.
'끝내'로 끝나도 괜찮은 이야기였으면 좋을 텐데
인생이었다.
목욕탕에서 금도끼를 잃어버린 날
미숙은 사라졌던 파도를 온몸으로 느꼈다.
불길한 울렁거림은 입덧처럼 사라지길 바랐으나
산통은 점점 심해졌다.
극에 닿은 고통이 멎고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나왔다.
끝내 아들을 낳았는데도 통증은 끊이질 않았다.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어딘가 계속 아팠다.
아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계속 아파했다.
병원에서 희귀병이란 선고를 듣고
미숙은 태어나 처음으로
'업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어봤다.
그렇게 미숙의 신조가 생기고 말았다.
전라도를 벗어나면 죽는 줄 알았던
옥순은 진짜 죽는다는 폐암 선고를 받고 서울로 이사했다.
영철과 미숙의 아랫집이었다.
옥순은 주치의에게 사골금지령을 받기 전까지 매일 사골을 우렸다.
손주 밥 먹으란 소리 한 번을 안 하고
오로지 삼시세끼 '우리 아들' 영철의 밥상만 챙겼다.
아들 밥 차려야 된다는 생각에
원래 살 날 보다 더 오래 견뎠다고 한다.
여자들은 확실하게 옳은 신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이미 미숙은 돌봐야 할 신조가 생겨서
옥순이 애지중지 지키던 신조까지 보살필 여력이 없게 된 것이다.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옴 붙으려 떠도는
옥순의 신조를 마주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