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휩쓴 자리에도 반드시 새싹은 피어나니

비 온 뒤 굳는 땅, 시련 뒤 단단해지는 마음

by 현이소

도대체 나의 삶은 왜 이 모양일까.


꼭 나만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버겁다고 느껴왔다. 개인적인 삶이건, 일적인 삶이건, 어느 순간에나 대체로 비슷하게 느껴온 감정이었다. 유독 남들에 비해 나의 삶은 더 안 풀리는 것 같고, 나는 왜 나로 태어나 고작 꿈 하나조차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나.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긴커녕 어쩌면 남보다 더 냉정하게 비하하고 다그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예전보다 그 정도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완벽히 자랑스럽게 여기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의 자학적인 버릇을 다 고치지는 못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모르기에 함부로 단정 지었음을 이제는 알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나에게는 나의 삶이 가장 벅차고 풀기 어려운 숙제와도 같게 느껴진다. 아마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한다. 나는 이것이 이기적이기보단 누구나 할 수 있는 마땅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넓고 복잡한 세상의 중심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선 내가 모든 것의 중심이고 주인공이 된다.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하나의 형태로서 존재할 테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주체인 내가 사라진다면 세상의 어떤 존재도 의미를 가진 채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존재를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인 내가 사라져 버렸으니,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그만큼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인 '나'의 시선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는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밝은 시야로 세상을 보려고 애쓴다면 그만큼 좋은 기회가 눈에 잘 띌 테지만, 반대라면 좋은 기회가 와도 알아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흘려보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건 당연한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 틈 속 어딘가에 숨겨진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밑바탕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오랜 속담 중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알고 있듯 삶은 우리에게 마냥 친절하고 녹록한 모습으로 다가와주진 않는다. 때로는 눈물을 쏙 뺄 만큼 견디기 힘든 시련을 주기도 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을 땐 오히려 깜짝 선물을 주기도 하는 것이 바로 예측불가한 삶의 특성이다.


나는 그간 작가로서 다양한 시련을 겪으면서 이 같은 깨달음을 몸소 체득하게 되었다. 누구도 방황하는 나에게 직접 알려주거나 깨달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찾아온 시련을 오직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아파본 끝에 얻어낸 깊은 성찰이었을 뿐이다.


나는 지금껏 작가로서 꿈을 포기하고 싶게 만든 실패와 좌절을 여러 번 겪었다. 비유하자면 그 경험들은 한때 불안정한 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희망 한 점 찾을 수 없는 폐허로 만든 야속한 폭풍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거센 폭풍을 직통으로 맞은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남아 여전히 잘만 숨 쉬고 있다. 또한 지금은 비록 소설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에세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글로 담아 써 내려가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나를 덮친 폭풍에 굴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여전히 내가 원하던 작가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믿길 바란다. 끝날 때까진 아직 어떤 것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님을. 오히려 과거의 뼈아픈 경험이 현재의 나를 한층 더 높은 레벨의 나로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희망을. 시간이 흘러 마침내 내가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여 믿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매일 꿈을 놓지 않고 분투하는 당신에게도 머지않아 반드시 그런 깨달음의 날이 찾아오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한때는 나도 믿지 않았다. 시련은 그냥 날 힘들게 하는 시련일 뿐이고, 겪어봤자 나만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듯이, 그런 경험이 훗날 나에게 값진 통찰과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를 안겨다 줄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안다. 아무리 거친 폭풍이 휩쓴 자리에도 새싹은 몇 번이고 다시 질기게 움터 자라나기 마련이란 것을. 어쩌면 이전보다 더 알차고 커다란 열매를 맺을 나무로 자라날지도 모를 미지의 가능성을 품은 새싹이. 언제 이 자리에 폭풍이 지났었냐는 듯, 과거보다 더욱 푸릇푸릇하고 생명력 넘치는 자태를 뽐내며 늠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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