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추운 겨울도 봄처럼 견디게 하는 힘

생존형 작가로 살아가는 나날들

by 현이소

때로는 후회하기도 했다. 오로지 가슴이 뛰는 일이란 감성적 사실에만 이끌려 작가가 된 것을.


가끔씩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리 없는 가정으로 상상해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지금쯤 덜 힘들었을까. 그랬다면 작가가 된 이후 시행착오처럼 겪어야만 했던 시련들을 전부 겪지 않았을 테고, 그래서 어쩌면 지금보다는 덜 수심 깊은 얼굴이었을까.


현실도피적인 상상은 발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현실이 힘에 부칠 때면 그런 생각을 막연히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에서 보니 참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가보지 못한 길엔 늘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따르는 법이거늘.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엔 지금의 보잘것없는 내 현실과는 백팔십도 다른, 무언가 대단히 빛나고 윤택한 가능성의 미래가 있을 거라고 맹목적으로 믿은 꼴이었으니까.


이런 식의 사고는 위험하다. 당장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의 가치도 깎아내리는 건 물론, 그 대신 손에 쥐지 못한 존재의 가치를 무작정 높다고 믿게 만들어 객관적인 현실 분별력을 흩트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여러 일들이 마가 끼었나 싶을 정도로 안 풀리고, 현저히 적고 불안정한 수입 내역을 보며 원하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게 다 터무니없는 환상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안타깝지만 난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을 금수저가 아니었기에, 수입도 적고 미래까지 불투명한 직업을 언제까지고 붙들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당장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집착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꿈을 꾸면서도 마음은 늘 한 치 앞도 모르는 불안에 시달렸다. 이렇게 대책 없이 꿈만 좇다가 결국 실패해서 내 앞가림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이대로 살다가 또래보다 도태되는 것을 넘어, 드넓은 우주 속 하찮은 먼지가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리는 건 아닌가. 그런 끔찍한 상상을 습관처럼 되새김하며 자주 잠을 설치곤 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생각 틈에서도 매번 나의 마음속 결론은 이상하리만치 하나로만 기울었다. 너무 지쳐서 당장은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와도 결국, 나는 내가 다시 글을 쓰며 살아가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다. 뭐라고 딱 떨어지게 설명할 순 없지만 당시엔 그냥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위태롭던 날 견디게 한 건, 그 근거 없는 한 줌 희망의 공이 컸다. 아무리 혹한의 겨울이라도 곧 봄이 오는 것을 안다면 그 추운 나날을 묵묵히 다 버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까. 나는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나의 인생도 날 둘러싼 사계절의 순환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희망을 품고서 겨울을 견디자,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추위도 차츰 적응이 되어갔다. 나무가 밑동이 꽁꽁 얼어붙는 한파의 동절기를 지나야 비로소 나이테 하나를 더 두르는 것처럼. 미숙하던 나의 삶도 겨울이란 성장기를 지나야 만 한 단계 더 성숙해진다는 걸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그때처럼 내게 닥친 겨울이 춥지는 않다. 또한 알고 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따스한 봄이 나에게 도착할 것임을. 그리고 우리의 긴 인생에서 봄처럼 따스한 시간은 야속하게도 금방 흘러버리고, 언제고 다시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엄습할지도 모른다는 냉정한 진실을.


하지만 정말 괜찮다. 꺼져가는 불씨 하나로도 얼마든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으니까. 그 어떤 고통의 바람이 내게 불어올지라도. 나의 마음 한구석 깃든 작은 희망의 불씨 한 점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올라, 아무리 추운 겨울이 와도 언제까지고 나에게 은은한 온기를 전해줄 테니까. 막막하도록 춥던 겨울을 지나, 마침내 언 몸을 녹일 봄이 나에게 무사기 도착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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