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굳는 땅, 시련 뒤 단단해지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인생에서 기존의 삶이 크게 달라지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그것은 거대한 운의 흐름에 따라 인지하지도 못한 틈에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도 하고, 때론 스스로 필요를 느껴 과감한 의지로 추진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사람의 인생은 특정한 시점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도, 완전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꺾이게 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엔 그만큼 인생을 변화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작가'로 데뷔하게 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꾸던 일이 본격적인 직업이 되면서부터 나의 삶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 변화가 반드시 삶에 긍정적인 영향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작가 일을 해오며 기쁘고 좋았던 경험보단 좌절하고 힘들었던 경험이 더 많았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스무 살 초반에 공모전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며 잠시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는가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후로는 웹소설 작가로서 원하는 만큼의 빛을 보지는 못했다. 주관적인 불만족이 아니라 실제로 론칭한 작품 성적에 기반해 내린 냉철한 자기 객관화이다.
나는 그때 내가 실패한 작가라고 생각했다. 사실 첫 작품만에 대박은커녕 중박을 터트리는 작가도 흔하지 않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작가는 100명 중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극 소수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나는 낙천적이게도 그땐 그것이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희망차게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런 나의 기대를 비웃듯 완전히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렇게 대찬 실패를 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이 내 기대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한 세계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딱 초짜 작가의 실력만큼 받아 든 아쉬운 성적표라는 걸 머리론 인정했으면서도, 당시에 나는 작가로서 나의 초라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고작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그토록 이를 악물고 노력한 건가. 살면서 가장 노력한 일에 왜 결과가 이것밖엔 따라주지 않을까. 내가 과연 작가로서 평생 먹고 살 재능이 있기는 한 건가. 공모전에 당선된 건 그냥 운이었을 뿐이고, 어쩌면 나는 작가가 아니라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운명인 건 아닌가.
쓰잘데 없는 자기 비하와 의심을 날마다 곱씹어가며, 이미 밑바닥까지 소진된 낮은 자존감을 잔인하게도 나 스스로 갉아먹었다. 급기야 일뿐만이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욕 자체를 잃게 되었다. 최선을 다한 일에 받아 든 결과가 견딜 수 없이 초라했기에, 어떤 일이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다 부질없고 회의적인 일처럼 느껴졌었다.
분명 그때는 그랬었다. 이대로 영원히 현실이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다는 비이성적인 사고에 사로잡힐 만큼,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흔들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꿋꿋이 버텨왔고 여전히 작가의 인생을 살고 있는 지금.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의 일들을 괴로움과 아픔의 감정으로 회상하지 않는다. 물론 당시엔 삶의 밑바닥을 쳤다고 느낄 만큼 힘든 경험이었지만, 어릴 적 피가 나고 까진 상처에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새살이 돋고 아픈 기억도 함께 옅어졌듯이.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날 무너트린 아픔이 현재의 나를 그때처럼 아프게 만들지는 못한다.
과거 실패의 경험은 나를 좌절케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때의 경험 덕분에 비로소 성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나만의 방식으로 불안해하지 않고 써 내려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비록 웹소설 작가로서 바라던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에 조금 아쉬움이 남긴 하나 괜찮다. 이제는 그 길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오히려 지금은 에세이 작가로서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게 된 것이 내게 더 행복하고 맞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혹, 당장 눈앞의 실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지금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역경과 고난은, 훗날 당신을 더 성숙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신이 준비한 삶의 필연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그러니 훗날 실패한 결과가 아닌, 성공을 이루는 과정의 일부로 기억될 사건들에 일일이 무너지고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영영 지속될 것처럼 어둡던 삶의 암흑기를 지나, 마침내 에세이 작가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 나의 이야기처럼. 신이 계획한 시련을 다 버텨내고 나면 당신의 삶도 곧, 삶의 결정적인 변곡점을 넘어 빛나게 되리란 것을 틀림없이 믿으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