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시작이 남긴 것들
무엇을 상상했든, 내겐 그 이상으로 충격과 무력감을 안겨다 준 피드백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글이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분명히 안다. 다만, 그 당시 촌철살인의 평가에 내성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그 아픈 평가가 차후 작품 피드백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을 만큼 손 떨리는 기억으로 남았다.
'내 글이 이렇게 구리다고?'
눈을 씻고 읽어 봐도 지적뿐인 피드백은 이제 막 작가가 되어 부푼 첫발을 내디딘 나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밟아 뭉갰다. 에이포 한 장 분량을 꽉 채워 적힌 평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에 대한 비평뿐이었다. 긍정적인 평가는 놀랍게도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요약해서 말해보자면 도입부의 전개는 흡입력이 없어 별로고, 인물의 설정은 작품을 이끌어가기엔 빈약하며, 전반적으로 문체가 유치해서 좀 더 고급스럽게 바꾸면 좋겠다는, 다소 주관적인 평가도 포함돼 있었다.
그날 선 문장들은 아직 피드백에 대한 내성이라곤 없던 나의 유약한 가슴을 무자비하게도 후벼 팠다. 어느 정도였냐면, 나는 출판사가 보내준 피드백을 읽고 나서 한동안 수치감이란 어두운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작품을 다시 수정하면서도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로서는 인생 최대로 책임감을 갖고 노력해서 썼던 글이라 더욱 그 충격이 컸었다. 그러니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의심 없이 최선을 다한 노력의 대가가 이렇게 안 좋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건 아무리 첫 작품이었다지만, 나는 엄연히 출판사가 내건 기준을 통과해 공모전에 입상하고 상금까지 받은 뒤 계약을 체결한 작가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신인 작가가 그토록 뚫기 어렵다는 첫 투고에 떨어져 반려당한 작품으로 피드백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 나는 전달받은 피드백의 내용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한 뒤, 또 2주의 시간을 걸쳐 대대적인 수정 작업에 돌입해 원고를 손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멘털은 그쯤부터 나간 상태였지만, 이미 상금도 받고 계약도 체결한 뒤였기에 출판사의 요구에 맞춰 집필을 계속 이어가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이번엔 통과하겠지. 얼마나 열심히 고쳤는데.'
연달아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작가로서 모든 자존감이 박살 날 것을 직감한 나는 다시 고배를 마시지 않겠단 의지를 다지며 이번에는 점검 차 가까운 지인에게 미리 고친 원고를 보여주었다.
다행히 기존 원고보다 더 재밌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지인은 아무리 자신과 친한 사이라도 마음에 없는 소리는 결코 뱉지 않는 냉철한 성격이었기에, 나는 그의 피드백을 더욱 신뢰하기도 했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원고를 송부한 뒤 다음 피드백이 돌아올 때까지 약 일주일 간의 짧지만 금 같은 휴식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게, 작품을 론칭하기 전까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하게 쉴 수 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필사의 노력을 쏟아부은 두 번째 수정의 결과는 어찌 됐을까.
결론적으로, 고친 원고 또한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엔 글로 된 피드백이 아니라 무려 통화로 피드백을 전달받았다. 아무래도 서면으로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얘기라는 것이 이유였다. 통화에서 담당자는 내게 도입부 장면을 아예 이런 식으로 고쳐달라는 직접적인 제안을 했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점차 뒤죽박죽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수정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내 글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도입부를 바꾸면 뒷얘기를 바꾸는 것도 필수적이 된다. 밤잠 줄여가며 공들여 써놓은 십만 자를 고스란히 날리게 된 현실 앞에서 나는 여태 무슨 헛수고를 그토록 아등바등한 건가 싶어 심한 탈진감이 밀려왔었다.
무엇보다 전달받은 피드백의 내용이 잘 와닿지도 않았다. 아무리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도, 내 머릿속에서 떠올린 장면이 아니라 그런지 정확히 어떻게 써달라는 것인지 알아듣기 다소 모호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출판사의 수정 요구를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받아들인 나는 그때부터 무려 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무한 수정의 굴레에 갇히는 아찔한 결말을 맞이했다.
웹소설 작가들 식의 표현으로 한 번 갇히면 출판사의 오케이가 떨어질 때까지 무한정으로 원고를 수정하게 된다고 하여 이른바 '수정궁에 갇혔다'라고 표현하는, 바로 그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