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시작이 남긴 것들
이제 와서 회고해 보면 그 시기는 나에겐 언제 끝에 다다를지도 모르고, 무작정 숨이 차게 달려 나가야만 하는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았다.
더 이상 달릴 힘이 없는데도 억지로 뛰어야만 한시 빨리 벗어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달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집필'이라는 고통 속에서 꺼내줄 수 없는 고독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외롭고 험난하던 과정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성장시킨 밑거름이 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모전 당선이라는 큰 기회를 운 좋게 스무 살 초반에 만나 눈물 나게 뼈 아픈 피드백도 받아보고, 하나의 작품을 수십 번씩 갈아엎는 대대적인 수정의 고난까지 거치며 마침내 내가 깨달은 점은 이렇다.
아무리 잘하고 싶은 마음을 앞세워 각고의 노력을 트럭째로 쏟아붓는다 한들, 결국 모든 처음은 더없이 서툴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
사실, 이건 웹소설 작가만이 아니라 어느 직업군에서나 비슷하게 통용되는 진리 같은 사실이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처음은 필연적으로 서툴기 마련인 거니까.
아무런 경험도, 깨달음도 없는 상태의 미숙한 마음으로 덤벼들었기에 서툰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고, 누구든 처음 들어간 직장에서 맡은 일을 멋지게 해내고 싶은 기대와 정반대로 처참히 깨지고 무너지는 경험부터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다시 말하지만 그 모든 일의 원인은 결코, 내가 남들보다 특출 나게 못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단지, 처음이라서. 그래서 모른 채로 부딪히려다 실수하고, 애꿎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어둠의 굴레로 어쩌다 잠시 빠져들었을 뿐인 것이다.
사실은 그게 당연한 건데. 어릴 적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탈 때 반드시 넘어지게 되었듯이.
그냥 아이에서 어른으로 몸만 자랐을 뿐인 내가 처음으로 작가가 되어 서툰 실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균형을 잡는 법을 미처 익히지 못해 넘어졌을 뿐인 건데.
특히나 나의 경우는 웹소설에 대한 열망만 컸었지, 정작 웹소설을 재밌게 집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전형적으로 의욕만 앞서고, 그걸 뒷받침할 능력은 따라주지 않았던 비운의 케이스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찾아온 기회를 얼떨결에 붙잡긴 했지만 그 운을 유지할 능력을 미리부터 준비해놓지 않으면 과거의 나 같은 참사가 나기 쉽다.
나는 돈을 주고도 못 살 이 값진 깨달음을 남들보다 빨리 인생 초년에 알아차렸으니, 그것만으로도 죽을 만큼 힘들었던 첫 계약작 집필이 내겐 더없이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첫 작가 데뷔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할 만큼 험난하고 고된 여정이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고민할 것도 없이 확고한 '노'다.
한 번의 경험으로도 깨달음은 충분히 얻었고, 뒤에서도 다룰 이야기이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내 몸과 정신이 그리 건강하진 못했던 터라 굳이 돌아가는 결정을 해서 그 힘든 시간들을 또다시 반복하며 버텨낼 자신이 없다.
다만, 기억은 지나고 나면 미화되는 것이라 지금의 내가 그때를 무작정 힘든 시절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고됐지만 나름 의미 있던 시간이라고 기억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지 않나 싶다.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암흑기였던 그 시절. 안 그래도 고달픈 인생, 너처럼 대책도 없이 무작정 도전하고 실패해서 굳이 아픈 경험을 해야만 하는 거냐고 의아한 얼굴로 묻던 한 친구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대책도 없이 도전하고 실패해서 내가 겪은 아픈 경험이 지금 내가 다시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그러니 살면서 우리가 예기치 않게 겪게 되는 모든 사건과 경험은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버릴 것이 없지 않으냐고.
기쁘든, 슬프든, 아프든, 절망적이든. 결국 내가 지나온 모든 크고 작은 삶의 치열한 순간들이 현재의 나를 증명하고, 추후 이렇게 다른 형태의 글로 쓰여 또다시 나와 다른 누군가들을 성장시키는 값진 밑거름이 되지 않았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