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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un 22. 2022

갸루피스(ギャルピース)와 고갸루

갸루 그녀들만의 세상

얼마 전 코로나 19로 만나지 못했던 제자들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헤어지면서 기념사진을 찍자는 말에 본능적으로 V자 포즈를 하고 말았는데, “요즘 인싸는 ‘갸루피스(ギャルピース)’ 포즈로 사진 찍고 SNS에 공유하는 것이 유행이에요”라고 하더라고요. “에? ‘갸루피스’?. 쿨피스도 아니고 그게 뭔데”라는 나의 반응에 아직도 그것도 모르냐며 손바닥(手のひら)을 앞으로 길게 뻗고 브이를 뒤집은 특유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해 보이더라고요.


“근데 그게 무슨 의미인데?”라고 묻자 “그냥 hip 하잖아요”라는 대답에 약간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늘 어떤 행동, 포즈에는 당연히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래. 의미 없어도 hip 하면 되지 뭐’라고 되뇌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갸루피스(ギャルピース)’는 영어 걸(Girl, ギャル)의 일본식 발음 ‘갸루’와 브이 사인을 뜻하는 ‘피스(peace, ピース)’의 합성어로 어느 한국 걸그룹의 일본인 멤버가 이 포즈로 ‘셀카’를 찍어 올리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거랍니다. 이후 다른 아이돌이 '갸루피스' 포즈를 따라 하면서 젊은 층들 사이에 그야말로 hip 한 포즈로 유행하게 되었다는군요.


‘갸루피스(ギャルピース)’는 1990년대 일본의 〈갸루분카(ギャル文化)〉에서 탄생한 겁니다. 모든 것이 호황이었던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진 1990년대. 도쿄 시부야(渋谷)와 하라주쿠(原宿)에는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파격적인 패션을 한 어린 여고생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거리를 활보하곤 했습니다. 당시의 인기가수,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 あむろ・なみえ) 패션을 따라 해 아무라(アムラー:아무+er)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 많았지요.


그런데 여기에 굽 높은 부츠에 원색 패션, 짧은 스커트, 시커멓게(黒い) 칠한 얼굴(顔)에 펄(パール)이 들어간 화려한 색조 화장을 한, 걸이라고 하기에는 좀 어려 고갸루(コギャル)라고 불린 여고생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 차림을 한 소녀들을 간구로 걸(ガングロギャル)이라고 했는데 그녀들은 고가의 옷과 화장품이 아닌 화려한 저가의 옷과 화장품을 애용하면서도 가방은 루이뷔통(ルイ‽ヴィトン)을 들었습니다. 그녀들의 소비패턴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철저하게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갸루(ギャル)’가 되기 위해 서라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라도 돈을 모아 원하는 옷과 가방을 샀습니다.


‘갸루’가 출현하기 이전의 일본의 젊은이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희소성을 즐겼습니다. 한정판 LP, 피겨 등을 모으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놀이를 즐기는 오타쿠문화(オタク文化)에서 이제 1990년대 ‘갸루’는 거리에서 모두와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시부야는 특히 이들에게는 성지였는데, 자신들과 비슷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에게 가볍게 다가가 말을 걸고 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다움, 와타시라시사(私らしさ)’를 추구하지만 자신 속으로 숨지 않고 거리에서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했던 ‘갸루’들의 행동은 이전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였고, 기성세대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습니다.


매스컴은 ‘젊을 때밖에 할 수 없는(若いときにしかできない)’, ‘지금이 즐거우면 그걸로 좋다(いまが楽しければそれでいい)’라는 가치관을 따르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녀들이 추구하는 ‘지금을 산다(今を生きる).’라는 사고방식은 일본경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어른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을까요?


거칠지만 ‘나다움’을 숨기지 않고 거리로 나와서 친구(仲間, 友達)들을 만나 자신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려 거리로 나와 자신을 드러낸 것이 ‘갸루문화’였는지 모릅니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브이가 위를 향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래를 행한 브이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고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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