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ng out of the closet(벽장에서 나온다)’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커밍아웃은 ‘자신의 정체성을 억압하지 않고 바깥으로 드러낸다’ ‘자신을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로, 주로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낼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차별 부락 출신인지, 재일한국인(자이니치) 출신인지 등으로 자신의 출신을 고백하는 것도 커밍아웃이라고 표현합니다.
얼마 전 유학할 때 만난 선배가 자신의 지도교수 이야기를 하며 “성격이 보통 괴팍한 게 아니었어. 근데 그게 출신 때문이라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출신? 무슨 출신?”. “그 선생 ‘에따’ 출신이거든”. “아 그래? 그런 걸 사람들이 이야기 해?”“그럼 학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입학할 때는 몰랐는데 들어가서 사람들이 수군대서 알았어. 근데 지금도 그 교수출신문제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여전히 출신 성분을 따지는 일본에는 ‘에타(穢多)’ 혹은 ’부라쿠(部落)‘라고 불리는 마이너리티가 존재합니다. ‘에타‘는 주로 도살업, 장례업, 가죽산업 등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하는 사람(穢れが多い仕事)‘,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더러움이 많은 사람(罪人)이 행하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인 ‘히닌(非人)’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은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에도시대에 이들은 ‘히닌 신분(非人身分)’이라는 하나의 신분으로 굳어집니다. 사민평등을 내건 명치유신 이후 1871년 천민 해방령(賎民解放令)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었지만, 사회적 차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재일동포와 달리 종교, 인종, 문화 등이 전혀 다르지 않음에도 차별을 당해 흔히 이와래나키 차별(いわれなき差別·근거 없는 차별)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에타’를 이종(異種)적 존재로 인식했는데 바로 피가 더럽다는 겁니다. 아주 오래전에 ‘다리가 없는 강(橋のない川)’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 속 배경은 1908년으로 러일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세이타로(誠太郎)와 코우지(孝二) 형제는 차별부락민에 대한 차별 속에서 자랍니다. 형은 오사카로 돈 벌러 떠나고, 동생 코우지는 같은 반 마치에를 좋아하는데, 어느 날 마치에가 코우지의 손을 잡으며 “네 피가 차지 않구나. 손이 따뜻하네”라고 놀랍니다. 차별부락민을 얼마나 다르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신분 차별 철폐에도 쉽사리 차별이 사라지지 않은 건 여전히 호적(戸籍)에 이들의 신분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 최초의 호적은 신분제를 폐지한 다음 해인 1872년에 만들어졌는데(임신호적:壬申戸籍), 에타, 혹은 히닌의 신분이 철폐되었음에도 이들은 평민으로 편입되지 못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호적에 신평민(新平民), 원에타(元穢多), 원히닌(元非人) 등으로 기재했습니다. 이 기록이 그대로 호적에 남으면서 신분제 폐지의 의미는 사라지게 됩니다. 1886년 새로운 호적이 만들어졌지만, 옛날 호적을 열람할 수 있어 에타 신분은 사라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특종민(特種民), 특종부락민(特種部落民) 등으로 불린 차별부락민은 1922년 수평사(水平社)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차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일종의 커밍아웃 운동을 전개합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차별의 바람은 거셌고 일본 주류사회로 편입할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부락민 차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부락민들이 거주하는 대규모의 공동주택을 제공합니다. 이곳은 일반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동화(同和)지역으로 불렸는데, 이곳에 입주하려면 스스로가 차별부락민이라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 부락민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값싸게 주거공간은 확보했지만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 이곳에 산다는 것은 스스로 차별부락임을 밝히는 커밍아웃이 되고 이 지역을 사람이 꺼리면서 개발, 혹은 발전에 밀려버립니다. 구별을 통한 차별이 시작된 겁니다.
동화지역에 산다는 건 스스로 차별부락민임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에 이곳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전에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나갑니다. 이들은 가능하면 자격증을 얻는 의사, 교사, 변호사, 간호사 등이 되고자 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그런 자격을 얻어도 자신의 소속 집단에서 받아야 하는 차별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중산층들은 중매든 연애든 암암리에 신분조사(身元調査)를 하는데, 2014년 조사에 따르면 결혼 상대가 차별부락민 출신이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약 30% 이상이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일본의 신분제도는 일본의 왕실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 국민들이 일본의 왕실을 대하는 태도는 왕실이 있는 다른 나라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혈통, 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번 ‘마코 공주’ 결혼에 대한 비상식적인 국민적 분노에서 드러나듯이 왕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라고, 그 기대에 벗어나면 집단적 비난을 서슴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의 일부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일본 공주 헤어스타일로 알려진 ‘히메컷트(姫カット)’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르고 앞머리로 연결되는 옆머리를 턱의 길이까지 자른 일본 공주 인형의 헤어스타일입니다.
일본의 대다수의 국민은 '역시 뭔가 아우라가 있어'라는 시선으로 일본의 왕족을 바라봅니다. 특히 젊고 예쁜 일본의 공주는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라 복장, 그외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됩니다.어릴 적부터 예쁜 얼굴로 인기가 있는 가코공주는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부락민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공주를 동경하는 일본인의 이중적 시선이 가끔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