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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an 03. 2024

일본은 크리스마스에 안 놀아도 천황 생일엔 논다

그리스도(chris)와 예배(massa)가 더해져 만들어진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축하하며 드리는 예배’라는 의미로 종교색이 매우 짙은 행사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 국가가 아닌 많은 나라가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축제로 즐기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많지만 기독교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도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1945년 10월에 공휴일로 제정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미 군정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일본에서도 엄청나게 큰 축제로 비록 캐럴은 잘 들리지 않지만 12월 24일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 케이크가 가득하고 거리에는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도 좀 그렇지만 종교 행사라기보다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는 날로 인식되는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 근거로,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제20조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석가탄신일도 놀지 않습니다. 그런데 패전 전에 12월 25일이 공휴일이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여서가 아니라 다이쇼 천황이 공교롭게도 12월 25일에 사망해 공휴일로 지정된 겁니다. 패전 후에는 GHQ(연합국 최고사령부)에 의해 천황의 신격화가 금지되어 공휴일에서 해제되었지만 말이죠.



그럼 일본에서 천황의 신격화는 사라진 걸까요? 명치 신정부는 일본의 국교를 신도(神道)로 선포하고 국민을 신민으로 규정했었습니다. 신도는 도(道)로 종교가 아니라고 하지만 종교입니다. 경전도 절대자도 구원도 없지만, 현세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많은 신을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전 전까지 일본은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하고 선대 천황을 신으로 받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점령군으로 일본에 들어온 GHQ는 천황에 대한 일본인의 충성심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천황을 신성시하는 모든 의식을 폐지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16개 공휴일(国民の祝日)은 설날, 성인의 날(1월 두 번째 월요일·成人の日), 춘분의 날(春分の日), 어린이날(5월 5일·こどもの日), 헌법 기념일(5월 3일·憲法記念日), 추분의 날(秋分の日)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천황 생일이나 천황과 관련된 날입니다.




우선 건국 기념일(2월 11일·建国記念の日)은 일본 최초의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한 날입니다. 그리고 현재 천황의 생일(2월 23일·天皇誕生日), 그리고 쇼와천황의 생일(4월 29일·昭和の日)이 휴일입니다. 지금은 ‘쇼와의 날’로 불리는 쇼와천황의 날은 패전 전에는 천장절(天長節·텐쵸세츠)로 엄청나게 큰 행사로 치러졌었습니다. 쇼와천황이 죽은 후에는 자연에 감사하는 미도리의 날(みどりの日)로 명칭을 변경하고 날짜도 5월 2일로 변경했지만, 지금은 쇼와의 날(4월 29일)과 미도리의 날(5월 2일) 모두 공휴일입니다.



바다의 날(7월 세 번째 월요일·海の日)은 1876년 명치 천황이 동북지방 순행을 끝내고 요코하마에 도착한 날에서 유래합니다. 1948년에 제정된 문화의 날(11월 3일·文化の日)은 1947년까지는 명치절(明治節), 즉 명치 천황의 생일이었습니다. 근로감사의 날(11월 23일·勤労感謝の日)도 노동절이 아닙니다. 11월 23일은 천황이 햇곡식을 신에게 바치고 제단에 바친 음식을 먹는 궁중 제사 이나메사이(新嘗祭)를 행하는 날인데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거지요. 12월 23일은 지금 상황으로 물러난 이키히토(明仁) 천황의 생일로 2018년까지는 공휴일이었지만, 상황으로 물러난 201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헌법 20조를 근거로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신일을 휴일로 정하지 않으면서 신도제의 천황 생일 등과 관련한 날을 공휴일로 정한 건 정말 눈 가리고 아옹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국민들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건 이들이 정말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서의 의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겁니다.

최소한 올해가 가기 전에 7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다시는 일본이 전범국이 되는 것을 일본 국민의 손으로 막을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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