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극장가에선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등을 선보인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개봉 7일 만에 누적 관객 수 300만을 돌파하여 연일 화제입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이었던 ‘서울의 봄’보다 3일이나 빠른 속도라고 합니다. 특히 이 영화 주인공을 맡은 김고은 씨의 신들린 연기가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장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 ‘파묘’는 일본 장례법, 한국 장례법, 무덤문화, 무속 등에 관한 많은 고증이 필요했기에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파묘’는 어느 부호로부터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그린 한국형 오컬트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영화의 전후를 갈라놓는 상징적 대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여우는 일본 주술사인 음양사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넷플렉스에서 볼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음양사(陰陽師)’로도 친숙한 음양사는 상생과 상극을 나타내는 음양오행에 근거한 음양도(陰陽道)를 익힌 이들로 이들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2세기 말)부터 천문, 점술, 역(曆) 등을 맡아 보던 음양료(陰陽寮) 기관에 속한 관료입니다. 제천의식, 제의는 물론 국가의 미래를 예언하고 요괴퇴치, 주술 등을 행하는 음양사는 1870년 명치 정부가 음양료를 폐지할 때까지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 꽤 높은 신분을 유지하였습니다.
그 중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가 가장 유명한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부를 가져다주는 식신(食神)을 부리고 미래를 예견하고 막강한 주술을 사용한다고 전해지는 세이메이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의 어머니가 여우라는 설입니다. 어느 날 음양사였던 세이메이의 아버지가 상처 입은 하얀 여우를 구해 주었는데 후에 아버지는 그 여우와 결혼하여 세이메이를 낳았다는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우=음양사의 도식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범(호랑이)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을 의미하니 일본이 조선의 ‘민족적 정기를 끊었다’, ‘반토막 내었다’는 의미를 말하려는 거죠. 이걸 두고 반일정서 조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흥행세를 두고 보수언론과 보수 기독교의 지지를 받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진실의 영화에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사악한 악령들이 출몰하는 영화에 올인하도록 이끄는 자들은 누구냐”며 “항일독립, 또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좌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에 분풀이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반일주의가 좌파, 빨갱이면 보수는 친일주의인 걸까요?
이승만은 국외에서 이름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반일이데올로기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습니다. 임기 내내 강한 반일의식을 표출한 그의 대일인식은 민족주의에 근거한 감정적 적대감이 아닌 실용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을 반대하고 친일부역자들을 등용하는 등의 행보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되고 있습니다. 반일은 그만큼 국민에게 약발이 먹힌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몇 년 과연 ‘NO JAPAN’을 통해 우리는 뭘 얻는 걸까요? 과거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나 해결책의 제시보다는 그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혐오스런 말들로 분열과 혐오만 조정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과거사 청산은 긍정적 관계회복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지 서로에 대해 적대감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인문학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 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 일본의 근대문학과 근대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과 미술에 끼친 일본의 영향’을 통해 ‘왜색’의 실체가 궁금했고, 우리가 ‘왜색적’이라는 것이 뭘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걸 알아야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의미로 저에게 일본은 극복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제가 살았던 1980년대 중후반에 식민지사관 극복이 가장 큰 화두였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과연 뭘 왜색, 왜색풍이라고 하는 걸까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22년 동안이나 왜색이라는 서슬에 묶여 있어야 했는데, 일본 엔카 리듬이 문제라면 <황성옛터>도, <눈물 젖은 두만강>도 당연히 금지되어야 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애국자의 대우를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사·작곡한 일본 창가풍의 <새마을 노래>도 일본의 전통가요 미야코부시(요나누키음계, ヨナ抜き音階)풍의 노래고, <나의 조국>도 엔카풍의 군가로 금지되었어야 마땅합니다.
저에게, 아니 많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양면적 감정에 갖게 하는 나라일 겁니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우리 문화에 깊이 파고든 일본의 식문화, 음악, 문학, 패션 등은 우리에게 약간 이국적인 향기를 주면서도 친근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른 어떤 나라 것들보다 선호도가 높다는 의미일 겁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본 문학과 미술공부가 아니었지만, 점차 가장 즐겨 읽는 소설은 일본소설이고 일본미술을 정말 좋아하는 저는 일본 음식을 매우 즐겨 먹습니다. 이는 감수성이 예민하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나의 청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임에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냐는 물음에는 TV에 나와 “K-POP, 한국 음식이 너무 좋아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외국인처럼 대답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일본 정부의 정치적 행보에 문제의식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지배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원인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반일, 반공, 친일, 토착왜구, 보수, 좌파 등의 프레임이 잘 먹힌다고 서로에게 프레임을 씌워 해묵은 감정을 건드리며 서로를 찌르는 행위는 멈춰야 합니다. 한국인 중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이 발전했다고 떠벌이는 자들이 있어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고 그럴거면 일본으로 귀화하라는 말까지 나오게 하는 자들이 이땅에 살고 있는 것처럼, 뭐 70년전의 일을 기억나지도 않는다며 독도도 자기 영토도 강제징용도 없었다는 망언을 서슴치않는 일부 일본의 보수우익 정치인들로 인해 일본은 한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총리급 이상의 공식 사과는 수십차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된 아키히토 일왕 또한 전 김대중 대통령에게 식민지 지배로 고통을 안겨 준 것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한다며 21세기 파트너십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영화로 음악은 그저 음악으로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치에 반일 프레임이 먹히는 것처럼 영화도 반일이 충분히 오락적 요소로 작용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룩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발전을 위해 우리가 버리고 온 전통, 우리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영화를 통해 느끼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또한 영화의 긍정적 파급 효과 중 하나일 테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는 영화 한 편 어떠실까요? 한국 영화가 위기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