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경 Aug 24. 2022

진격의 거인의 악은 누구인가

우리는 선과 악 그 어디쯤에 있는가

이제 9월 가을의 시작입니다. 한낮에는 여전히 볕이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가을바람이 불어 그 길고 무더웠던 여름도 끝이 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독서하기에도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저는 2021년, 시작부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키메츠노야이바(鬼滅の刃, きめつのやいば):귀멸의 칼날〉에 이어 또다른 일본애니메이션, 〈신게키노쿄진(進撃の巨人,しんげきのきょじん):진격의 거인〉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만화의 원작은 2009년으로 무려 11년간이나 지속돼왔던 연재가 139개의 에피소드로 종결되었습니다.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いさやま はじめ)에 의한 다크 판타지 만화,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しんげきのきょじん)」이 시즌 3에 이어 시즌 4를 한국의 종편에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이 만화는 초대형 거인들이 인간이 사는 성으로 넘어와 인간을 산 채로 잔혹하게 씹어먹는(人間を食らう)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배설기관을 지니지 못해 배가 불룩 뛰어나온 나체의 거인들은 순박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우걱우걱 씹어 삼킵니다. 우리가 빵을 먹듯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먹어치우는 모습은 자못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들 초대형 거인(超大型巨人)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높이 50m 삼중의 방호벽을 뚫고 들어와 평화로운 사람들의 삶은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며 식인 거인의 공포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인류는 생각이 났다. 그놈들에게 지배당했던 공포를(その日人類は思い出した.やつらに支配されていた恐怖を)”이라는 절망적인 나레이션이 흐릅니다. 


 15살의 주인공 에렌(エレン)은 건물 잔해에 깔린 어머니(母親)를 구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거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죠. 이날 에렌과 그의 친구들은 왜 자신들의 부모가 혹은 친구가 이처럼 잔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당연하게 내일을 꿈꾸며 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이 비참한 살상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소년 소녀들은 거대 식인 거인의 존재를 알고 싶어서, 혹은 부모의 복수를 위해 기꺼이 식인 거인을 죽이는 조사병(調査兵団)이 되고자 합니다.  거인을 향한 복수를 위해 훈련병(訓練兵)이 된 에렌은 거인을 죽이는 전투기술을 익히고 거인들과의 전투를 벌입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 거인(巨人)과 이들과 맞서 싸우는 소년 영웅. 흔히 일본애니에서 흔히 보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가 다른 만화와 다른 것은 선과 악, 친구와 적이 불분명하고, 그 경계가 매우 애매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죽여야만 내가 사는 악이 바로 인간 스스로의 몸에게 생겨난 분신이라는 설정은 이 만화를 어렵게 느껴지게 합니다.


 이 만화의 등장인물이나 설정에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謎,なぞ)와 미스테리한 점이 많아 결국 다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간력하게 스토리를 정리하면 아주 오래전‘에르디아’의 초대왕은 거인을 만들어 전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적대국, 마레(マーレ)국에서 거인이 될 수 있는 전통이 있는 부족의 범죄자들을 진화시켜 전투용 거인들을 만들고 이 거인들을 이용하여 마침내 에르디아를 붕괴시킵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에르디아인들은 자신들의 거인들을 시켜 마레국의 전투거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50m 두께의 삼중 성을 건축합니다. 그런데 그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에르디아인들은 마레인들에게 억업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주인공, 에렌의 부모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인에게 위협을 받은 인간은 성안에 갇혀 살아가야만 하고 그마저도 거인에게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자 에렌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레가 보유한 거인화의 능력을 갖게 하는 약을 투약하고 아들, 에런은 그 능력을 거인을 죽이는 일에 사용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만든 거인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거인이 되어 거인과 전투를 벌이는데,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상대방이 악인지, 선인지, 내 편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거인을 제거해야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진 인류들은 저마다 다른 말을 쏟아내며 전혀 말이 통하지 않고 동료를 죽이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만화에서 사용되는 조사병(調査兵団)은 성벽도시밖으로 원정나가서 바깥세상을 조사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가상의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단원이 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한 훈련을 마치고 조사병이 된 소년 소녀들은 성 밖으로 나가 거인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지만 그 끝은 있기나 한 건지 도대체 저 거인들은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동료들을 잃어야 했던 소년 소녀의 가슴에는 거인들에 대한 분노와 자책감, 자괴감으로 가득합니다. 살육은 너를 죽이는 행위이지만 나를 죽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요. 


 만화에서는 거대한 권력을 지닌 세력, 혹은 거인을 보며 무력해지는 인간군상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끊없이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고 사회에서 고립되고 배제된 사람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인류애, 민족애, 공동체 등을 주장하는 폐쇄적인 인종주의자들이 만들어내는 왜곡되고 불온한 민족주의가 내안에 거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드리워봅니다. 



만화는 묻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살육인지를.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삶은 과연 온당한 것인지를. 그리고 조사병들은 자신들이 죽이는 거인들은 과연 악이었을까. 왜 거인들은 왜 성안의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 것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유감이라고 하지 말고 사과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