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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Aug 24. 2022

유감이라고 하지 말고 사과하세요

마코토니 이칸데아루(誠に遺憾である)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특히,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만이 아니라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 사건 관계자, 그 일과 관련있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기자회견장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의 ‘이칸니오모우(遺憾に思う,いかんにおもう)’, 혹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의미로 ‘이칸노이오시메수(遺憾の意を示す,いかんのいをしめす)’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명인사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은 “좀 유감스럽네요” 혹은 “유감이 없이 실력을 발휘해” 등 마음에 응어리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하죠. 유감이란 말은 중국이나 한국 고전에는 거의 나오자 않는 단어로  『일본국어사전』에 의하면 ‘유감(遺憾)’이 일본문헌에 처음 나온 것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라고 합니다. 당시에도 ‘안타깝다’, ‘마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마음이 좋지 못하다’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일본의 정치인들이 정치적 관용어, 외교적 수사로 사용하면서 대중적인 정치용어로 자리잡았고 그 말이 그대로 한국에 유입되어 사용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유감(遺憾,いかん)’이라는 말에 사과(謝罪,しゃざい)의 의미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겁니다. 태평양전쟁으로 자국민은 물론 근린 국가들의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쇼와천황(昭和天皇)은 1945년 9월27일, 맥아더장군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으로 막대한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하여 “내가 가장 유감스러워 하는 점(自分の最も遺憾とするところ)”이라고 대답합니다. 글쎄 유감으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전쟁 총책임자의 입에서 ‘유감’이 아닌 ‘사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 6월, 자민당 현역 국회의원이 뇌물수수로 체포됩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아베에게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고 묻자, 아베 역시, 법무장장으로 임명한 저로서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大変遺憾であります)”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유감에 사죄의 의미가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유감(遺憾)’은 「남기다, 잃다」라는 의미의 유(遺), 「섭섭하다, 원망하다」라는 의미의 감(憾)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남긴다는 거겠죠.‘유감’의 우리말의 사전적 정의도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 뭔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유명인사들은 자신, 혹은 측근이 저지른 잘못에 ‘유감(遺憾)’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흐리고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제3자라는 인상을 주면서 본질을 흐리는 거죠. 이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우기는 일본에 대해 한국정부는 늘 ‘유감’을 표하고, 한국정부의 태도에 일본정부도 똑같이 늘 ‘유감스럽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 안타깝네요”라고 말은 하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도 없는 애매한 말인 거죠. 

 


 사과할 때는 사과를 해야 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요? ‘유감’이라는 모호하고 오몀된 말로 본질을 흐려서는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겁니다. 격해진 선거전으로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아무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그저 유감스럽다고만 합니다. 그런 정치인들만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유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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