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 '국보'가 엄청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6월에 공개된 직후부터 이야기 전개, 영상미, 거기에 두 주인공인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유세이의 연기력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례적인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화는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소설 '국보(国宝)'를 원작으로 했다.
조직폭력배의 집안에 태어난 키쿠오는 15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천애 고아가 돼버린다. 그런데 그의 예술적 재능을 간파한 가부키의 당주가 그를 자기 집으로 들여 아들 슌스케와 형제처럼 키운다. 본의 아니게 가부키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키쿠오는 어느 날 당주의 아들이며 그의 친구, 반지로가 사고로 입원해 그를 대신해 무대로 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주어진 배경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빛을 발하는 예술 세계에 사는 젊은 두 배우의 내적 갈등을 예술적으로 잘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24일 기준 흥행 수입이 110억 엔을 넘어 현재 일본 역대 흥행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실사영화로서 100억 엔을 넘는 건 '춤추는 수사선' 이후 22년 만으로 영화 '국보'가 공개됐을 무렵 많은 업계 관계자는 30억 엔 가면 대히트라고 말했다. 7월에 50억 엔을 돌파했을 때에도 극장판 '귀멸의 칼날'이 공개되면 상영관 수가 줄어들어 거기까지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국보'는 그러한 세평과 비관적인 예상을 모두 뒤집고 공개, 73일 만에 흥행 수입 105억 엔을 돌파하더니 110억 엔까지 간 것이다. '국보'의 기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상영 중이니 일본의 흥행기록을 깰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에는 여러 면에서 전례를 깨는 공식을 사용해 일본 사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우선 이 영화가 '춤추는 수사선'처럼 오락영화가 아니라는 거다. 가부키를 소재로 한 일종에 예술영화에 가깝다. 그런데 어떻게 '국보'는 예술적으로 완성도를 높이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는 건 일본 영화의 '상식'을 뒤엎는 제작비다. 일본의 실사영화의 제작비는 일반적으로 3억∼4억 엔이며, 대작이라도 10억 엔을 넘는 경우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의 실사영화는 히트해도 30억 엔 정도의 흥행 수입밖에 나오지 않아 광고비 등을 제외하면 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국보'는 제작비가 12억 엔으로 통념을 뒤엎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여됐다.
영화 '국보'의 제작팀은 어떻게 12억 엔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자는 판단이 섰을까. 이는 영화 '국보'가 일본이 아닌 해외를 겨냥해 제작된 작품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종의 이국취미적 취향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에미상 18관왕 휩쓴 쇼균(2024, Shōgun)의 경우처럼 '일본의 미=가부키', 전통을 중히 여기는 일본의 전통예능과 일본의 예술계가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통속성이 겸해진 작품으로 이는 서구인들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고 판단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국보'팀은 영화 '국보'를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을 하나의 목표로 했는데 실제로 칸에서 호평을 받아 일본에서 주목받게 됐다고 한다. 참고로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은 대만에서 대히트해 예상보다 높은 400억원 수익을 돌파해 주목을 받았다.
일본 기준으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다고 하지만 할리우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평균 영화제작비가 115억원이란 걸 생각할 때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영화, 외계인 1+2(700억원), 설국열차(440억원), 백두산(350억원), 한산(312억원) 등은 가볍게 300억∼400억원을 넘겼다. 일본 영화의 전성기는 1960년대까지이고 1970년대부터 일본 영화는 텔레비전에 자리를 내주며 점점 힘을 잃어갔다. 2006년경부터 텔레비전에서 히트한 드라마나 애니를 영화로 제작해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으로 영화가 제작돼왔다.
일본에서 영화제작에 제약이 많은 실사영화보다 환타직하고 몽환적인 장르를 다 표현할 수 있는 애니의 제작이 활발해진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물론 실사영화에서 블록버스터 영화가 제작되지 않은 게 꼭 금전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소한 일상에서 인간과 삶의 근원을 찾는 일본 문학에서 일본 영화가 나왔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상황을 고려하면 가부키를 무대로 한 영화 '국보'에 10억 엔을 투자하는 판단은 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게 복수의 영화 업계 관계자의 의견이었다.
'국보(国宝)'의 흥행은 여러모로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이번 영화 '국보'의 히트에서 가장 의외의 포인트로 지적되는 부분이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이다. 일본의 영화계에서도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의 영화는 관객도 좋아하지 않고, 영화관 측도 2시간의 영화에 비해 상영 횟수가 적어져 버리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영화 '국보'의 감독과 제작진은 그러한 일본 영화계의 상식에 정면 도전이나 하듯이 2시간 55분의 영화를 세상에 내보냈다. 그래서 3시간짜리 영화 '국보'가 크게 성공하자 언론은 '왜 약 3시간짜리 영화 국보가 히트할 수 있는가?' 하는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역대 영화 흥행 수입의 톱 4 작품, 아바타(2시간 42분), 어벤져스(3시간 1분), 타이타닉(3시간 14분) 등이 3시간을 넘는 영화로 '국보' 제작진은 정말 좋은 영화라면 상영시간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관객을 믿고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일본에서 영화제작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히트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 실사영화의 흥행 수입의 톱 자리에 있는 '춤추는 대수사선'은 TV에서 메가 히트한 드라마를 영화화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로 이후 TV국 주도의 영화화가 주류가 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제작위원회에 텔레비전 방송국이 참여하면, TV의 지상파로 영화의 선전도 쉬워지고, 흥행 수입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국보' 제작진은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하는 걸 선택했다. 이젠 그만큼 유튜브나 SNS로 직접 소통하고 홍보하는 시대가 됐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아마 가을쯤이 될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날엔 마음을 촉촉이 적시어 주는 이런 영화를 한 편쯤 보고 싶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