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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 감독, 이상일(李相日)이 그리는 세상

by 최유경

최근 일본에서 실사영화로는 22년 만에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가 있다. 지난주에 소개한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 원작의 『국보』를 영화화한 ‘국보’이다. 이 영화는 출신이 너무나 다른 젊은 두 예술가의 성장통을 그렸다는 점에서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가부키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국보’는 칸영화제 감독 부문에서 최초 상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의외성보다 사실 더 놀랐던 것은 감독이 재일한국인이라는 거였다. 어찌 보면 노와 더불어 가장 일본다운 전통예능으로 꼽히는 가부키를, 그것도 조선학교 출신 재일한국인 감독이 영화화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게이샤’를 만든 것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그 또한 나의 편견임을 안다. 일본인이라고 가부키에 대하여 잘 아는 게 아니고,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재일한국인이라고 일본의 전통예술을 다루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왜 가부키였을까?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전작들을 살펴보면 그의 선택이 의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국보'의 감독은 재일한국인 3세 이상일(李相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감독으로 애플에서 제작한 ‘빠칭코’2부를 연출한 감독이다. 이상일의 아버지는 조총련계, 니가타 조선 초·중급 학교 교사로, 그는 4세 때 요코하마로 이사 온 후 요코하마의 조선 초중고를 다녔다. 졸업 후에는 가나가와 대학 경제학부에 진학하였는데 영화를 좋아한 이상일 감독은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영화학교에 들어가 영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의 이름이 일본 영화계에 알려지는 2006년작, ‘훌라걸스(フラガール)‘가 크게 성공하면서부터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조반 탄광(常磐炭鉱)이 폐광되자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폐광시설을 하와이의 춤과 노래가 있는 리조트로 탈바꿈시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오이 유우와 도요카와 에츠시가 주연한 영화이다. 이 영화로 그는 제30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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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색깔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아쿠타가상(芥川賞) 작가,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와 이상일 감독이 협업한 스릴러, 2010년작, 2005년 발생한 4인조 연쇄살인범들에 의해 9명의 희생자를 낸 ‘천안연쇄살인사건‘을 모델로 한 악인(悪人)'과 2016년에는 도쿄 하지오지(八王子)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사건을 다룬 ‘분노(怒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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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문학작품의 오묘한 감각을 스크린으로 그려내는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특히 나기라 유우(凪良ゆう)소설을 영화화한 2022년작, 영화 '유랑의 달(流浪の月)'은 나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영화는 비가 오는 날 저녁, 공원에서 비를 맞고 있는 10대 소녀, 카나이 사라사(家内更紗)의 이야기이다. 사라사는 병으로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그녀를 친척 집에 맡겨버리고 떠나버린다. 친척 집 오빠에게 수시로 성추행을 당하던 사라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늘 학교가 끝나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비가 내리는 그날도 사라사는 비를 맞으며 공원에 앉아있었다. 19살 대학생 사에키 후미(佐伯文)는 비에 흠뻑 젖은 사라사에게 우산을 건네주자, 친척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사라사를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와 머물게 하는데, 2달 정도가 지난 후 후미는 소녀 유괴범으로 체포된다. 사라사는 성적 학대의 경험으로 성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고, 후미는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 칼만 증후군(Kallmann syndrome)으로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들에겐 소아성애자 유괴범과 유괴범에게 납치된 불쌍한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두 사람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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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랑의 달이었을까?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지구에서 떨어진 달에서는 보여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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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은 이처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건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 낙인이 찍혀버린 사람들을 그려왔다. 그리고 이번 작품, ‘국보’ 역시, 가부키라는 일본의 전통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조직폭력 출신 집안의 소년 키쿠오(喜久雄)를 그리고 있다. 그에게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수적인 가부키 세계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키쿠오가 기어코 가부키에서 살아남은 50년의 세월을 그린 영화이다. 천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覇王別姬)’를 연상시킨다는 평이다.



감독은 가부키의 여성 역할 전문배우, 온나가타라는 존재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해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출신을 중하게 여기는 일본 예술계에서 여전히 한국인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며 기필코 살아남아 우뚝 선 이상일 감독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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