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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의 사임, 어떻게 하는 게 옳았었을까?

by 최유경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7일 자민당 선거에서 두 번이나 크게 패배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1년도 못 채운 채 총리직 사임을 표명했다. 표면적인 사임의 원인은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15년 만에 과반수 의석을 잃었고, 올 7월에 행해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다.



이시바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에서 사임은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대로 버티면 자민당이 분열할 거라며 사임을 권하는 고이즈미 장관과의 2시간 독대 후에 사임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그간 자민당 내에서는 사임 요구가 잇따랐는데,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금 상태로는 향후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주장이 잇따랐다고 한다. 선거참패의 원인이 총리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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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는 지난해 10월, 물가를 잡겠다고 약속하고 총리로 취임했지만, 미국과의 정치적 갈등, 쌀값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정치적인 데미지로 작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민당 내 이시바를 향한 사임 요구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70년을 집권한 자민당의 비례대표비율을 크게 줄어왔다. 2022년의 참의원 선거·비례선거에서 자민당은 약 1830만 표, 2024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약 1460만 표, 올 참의원 선거에서는 약 1280만 표를 얻어, 지난 3년간 550만 표의 비례표가 줄었다. 오랫동안 자민당의 몰표를 끌어다 준 단체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민당은 농민을 비롯한 건설, 방위 등 조직력으로 몰표를 끌어올 수 있는 조직을 기반으로 오랜 세월 집권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시바 정권은 급등한 쌀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축미를 대량으로 방출했고, 농민들은 공급과잉, 쌀가격 폭락을 우려하면서 심하게 반발했다. 쌀 부족 소동과 농업정책에 대한 반발로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도호쿠 6현과 니가타·나가노 등 쌀 생산지에서 1승 7패라는 참혹한 결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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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는 자민당 내 소수파로 '자신의 말로 말하는 몇 안 되는 정치가'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다. "국토균형발전(国土の均衡ある発展)"을 외치며 일본 경제발전을 이끈 다나카 카쿠헤이(田中角栄)의 보좌관 출신으로 다나카에 의해 정치에 입문한 이시바에게는 다나카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자민당 내에서는 선거의 참패를 이시바에서 찾았지만 지난달 하순 ANN 여론조사에서는 '이사바 총리의 사임을 원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65%에 달했다. 선거참패의 원인이 구아베파 의원들의 뇌물수수(裏金問題)로 인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여론 때문이었다. 총리관저 앞에서는 시민단체들이 모여 "이시바 힘내(石破頑張れ)"라는 데모가 열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자민당의 불법 정치 자금수수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2022년 11월, 공산당기관지를 통해서였다. 자민당의 5개의 파벌이 한 장에 2만엔 정도의 정치자금 파티권을 할당제로 판매했고, 거둬들인 돈의 사용처가 불분명했다. 구아베파 의원들이 상당수 관련되었지만, 이시바는 이들을 선거에 내보냈다. 당시 자민당을 찍지 않은 이유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위원에 대한 미온적으로 대응에 실망했다는 국민은 49%였다.



패전으로부터 80년 주년을 맞이하는 올 8월15일(종전의 날, 終戦の日) 기념식 전야제에서 이시바 총리는 "그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지금 다시 깊게 가슴에 새겨야 한다(あの戦争の反省と教訓を、今改めて深く胸に刻まねばならない)"며 2013년 2차 아베 정권 이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반성'이라는 말을 부활시켰다. 기념식에서 "나아가야 할 길을 두 번 틀리지 않겠다(進む道を二度と間違えない)"라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연한 맹세(不戦に対する決然たる誓い)를 밝혔지만, 이시바 총리의 '전후 80년 견해(戦後80年見解)' 발표는 당내 보수파의 반발을 우려해서 결국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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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취임 이전부터 히로시마, 나가사키 등에서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왔고, 그런 '이시바다움'이 지지율을 끌어올려 당내 소수파인 그가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총리가 되고 나서 그는 다수파와의 융합을 내세우며 이시바다움을 내세우지 못했고 결국 퇴진을 표명하게 되었다. 퇴진을 표명한 7일의 기자 회견에서 이시바는 "당내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융합을 위해 노력하면서 나다움을 잃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하는 게 옳았었을까?"라고 말했다. 정말 그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았었을까.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가 트이나 싶었던 기대는 우려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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