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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Nov 30. 2022

혼혈아라는 말 써도 괜찮을까

  국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출생한 사람들을 여전히 혼혈아, 혹은 혼혈이라고 부르고 있죠? 사실 이 말을 1940년대 후반 일본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미국에 의해 패전된 일본에는 연합군최고사령부, 일명, GHQ(General Headquarters)라고 불린 점령군이 일본에 주둔했는데, 일본 여성과 외국인 군인, 그 중에서도 미군과 일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죠.  



 일본의 미점령시기에 등장한 혼혈아라는 말은 일본어로 콘게츠지(混血児,こんげつじ)라고 하는데, 이 말이 성폭력, 매춘, 빈곤, 우생학적 차별 등의 이미지를 동반한다고 하여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혼혈아에 대한 차별은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스스로를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에 근거해서 발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점령군이었던 미군과 일본여성, 그것도 평범한 여성이 아닌 매춘을 업으로 하는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선입견이 심각한 차별을 낳았습니다. 


 일본은 패전을 선언한 직후 1945년 8월18일, 「외국인 주둔지에 위안시설」설치에 관한 지침을 하달합니다. 일본경찰청에서는 민간매춘업자에게 정부가 적극지원할테니, 점령군을 위한 위안소시설설치에 협조를 부탁한 거죠. 정부는 1억명의 일본인의 순혈을 유지하고 선량한 일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을 위해 위안소를 설치하던 일본인이 이제는 점령군인 미군을 위해 자국의 여자들을 위안소로 보낸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소녀들을 공장에서 일을 한는 거라고 속여서 위안부로 끌고갔지만, 일본에서는 매춘업을 하는 여성들이 임금을 받고 위안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패전이후의 일본의 상황과 우리의 위안부문제를 착각해서는 안될 겁니다. 위안소에서는 자연스럽게 미군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미군정하에서는 사회문제화하지 않다가 미군정이 끝난 후 혼혈아문제를 미디어에서 거론하며 심각한 사회적 차별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에도 혼혈아라는 말이 한동안 사용되었지만 아무래도 “피가 섞였다”라는 혼혈(混血)은 일본인의 동질성이 강조된 순혈(純血)에 비하여 ‘열등하다’, ‘혼종’, ‘잡종’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고 하여 공식적으로는 사용을 금하게 되었습니다. 혼혈아 대신 코쿠사이지(国際児,こくさいじ) 즉 국제아라는 말도 등장했지만, 최근까지도 일본에서는 혼혈아의 영어, half-breed의 반을 의미하는 하프만 가져와서 하프(ハーフ)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하프라는 말은 혼혈아라는 말보다는 차별적 이미지는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엄마와 아빠의 문화적 유산을 절반씩만 갖고 있다거나, 혹은 어중간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반쪽이라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하프’대신 ‘더블(Double,ダブル)’라는 일본식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블이라는 말은 국적이 서로 다른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시도로 하나의 문화적 유산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하여 엄마, 아빠의 두 문화를 모두 가진 문화적으로 더 풍부한 사람이라는 긍정의 이미지를 갖게 하죠. 실질적으로 더블이라는 말로 인해 자신감, 나아가 자긍심까지 느낀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물론 혼혈인을 둘러싼 문제는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혼혈에 대한 차별의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새로운 용어가 아무리 생겨나도 그 말이 또 차별어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지금 세계는 다문화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화를 반으로 자르지 않고, 다른 문화를 편견없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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