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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Dec 29. 2022

복권넨가죠. 짜릿하진 않아도 따뜻하네

여전히 손편지 연하엽서로 한해를 마감하는 일본 

드디어 일본에서는 넨가죠(年賀状, 연하장)을 써야 하는 분주한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편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연하장을 우편으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SNS로 신년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건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대부분은 연하장엽서, ‘넨가하가키(年賀はがき)’를 보내 신년인사를 합니다. 지금처럼 엽서 모양의 연하장이 탄생한 것은 1873년인데, 그로부터 20년 후인 1890년경부터 ‘넨가하가키’로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2023년 일본의 세뱃돈 연하장엽서 샘플


11월 초순부터 우체국, 편의점, 마트, 통신사이트 등에서 ‘넨가하가키’를 판매하는데, 복권당첨번호가 들어있는 ‘넨가하가키’는 한 장에 63엔 합니다. ‘넨가하가키’를 하나하나 손으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신년 관련 일러스트나 가족사진 같은 걸 인쇄하고 그 위에 간단하게 새해 인사를 적어 보냅니다. ‘넨가하가키’의 제작을 일찍 서두르는 데에는 보통 한 사람이 100장 이상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친한 지인한테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친지, 지인, 친구, 직장동료, 동창, 그 외 자신이 친하게 알고 지내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 ‘넨가하가키’를 보냅니다.



간혹 아주 오래간만에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 ‘넨가하가키’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못 보냈는데 ‘넨가하가키’를 받았을 때는 1월 7일까지는 답장을 보내야 합니다. 한 해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토시가미사마(年神さま)’가 오쇼가츠(설날, お正月)에 집마다 방문하여 7일 동안 머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간을 마츠노우치(松の内)라고 하는데 그 기간에는 답장을 보내야 하는 거지요. 그런데, 만약 집안에 불행한 일이 있었거나, 상을 당했을 때는 무채색의 ‘모추하가키(喪中はがき, 망중엽서)’를 보냅니다. 이러한 ‘넨가하가키’에는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올해는 12월 15일부터 연하장을 우체국에서 받기 시작하는데, 25일까지 연하장을 부쳐야 1월 1일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미리 우체국에서 ‘넨가하가키’를 보내도 우체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1월 1일 아침에 묶어서 배달해 줍니다. ‘넨가하가키’에 「1월 1일(1月1日)」의 소인을 찍히길 바라는 사람들이 연말에 너무 많이 몰려 우체국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되자 이런 시스템을 만든 거라고 합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새해 첫날(元日) 지인들에게 받은 연하장을 받기 위해 우편함을 열 때 그 두근거림이 참 좋습니다. 저도 예전에 우체통에 고무줄로 하나 가득 묶인 ‘넨가하가키’를 보고 있노라면 ‘아! 올해도 잘 살았구나’라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넨가하기키’에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습니다. 그림 속 엽서를 잘 보시면 연하장 양쪽 밑에 일련번호가 적혀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번호는 일종의 복권번호로 이런 엽서를 ‘오토시다마 쿠지비키 넨가하가키(お年玉くじ付きの年賀はがき)’라고 합니다. ‘세뱃돈 뽑기가 붙어있는 연하장’이라는 뜻으로, 이 ‘넨가하가키’는 1949년에 한 남성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새해 선물이 되기도 하는 세뱃돈 복권당첨 엽서의 1등 당첨금은 30만엔, 2등은 지역 특산물, 3등은 우표를 선물로 주는데 정확한 당첨자 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1등에 약 이천 명, 2등은 약 20만 명, 3등은 100중 14명 정도는 받는다고 하니 받을 가능성이 아주 낮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토시다마쿠지비키 넨가하가키(お年玉くじ付きの年賀はがき)’에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 거기에 나의 일상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본 2022년. 여러분은 정말 안녕들 하신 지 묻고 싶습니다. 부디 내년에는 뉴스가 보고 싶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그리고 원하는 바를 다 이루지 못해도 부디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아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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