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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Dec 29. 2022

오즈 야즈지로(小津安二郎)의 꽁치의 맛

 늙어가는 삶을 받아들이자

여전히 삶의 틈새 속에서 비집고 나오는 쓸쓸함을 그린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의 유작 ‘꽁치의 맛(秋刀魚の味, さんまのあじ)’(1962)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허진호감독을 롯하여 빔벤더스(Wim Wenders) 등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오즈. 12월 2일에 태어나 환갑을 맞이하던 자신의 생일날에 생을 마감한 오즈 감독의 영화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가장 일본의 정서를 표현한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여비서가 결혼으로 결근했다는 보고를 듣던 간부가 ‘그럼 그만두는 건가’라고 말하며 또 다른 여직원에게 남편의 직업을 묻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 여직원은 혼자된 아버지를 모시고 있어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고 대답합니다. 그 여직원의 이름은 24살의 미치코(路子). 그녀가 모시고 있는 아버지, 히라야마는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과 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동창회(クラス会)에서 만난 은사는 그 옛날 호기 넘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빛바랜 양복에 갯장어도 먹어보지 못했다며 제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아버지는 “인생은 외톨이야”라며 신세 한탄을 하는 은사님의 곁에는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혼자 라면집을 운영하는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출가시키기로 합니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는 “너 시집가라”가 아니라 “시집갈 마음 없어? (嫁に行く気はないか)”라고 묻습니다. 다리미질하던 딸은 이런 아버지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납니다. 자신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생각해서 결혼을 거절했는데,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술에 취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던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야겠지만 딸이 결혼하면 집안일은 누가 하고, 또 누가 집에서 살갑게 맞아줄 것이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다가도 은사님의 딸처럼 혼자 늙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고 해서 아버지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맞선을 본 미치코는 혼담이 진행되어 결혼하게 되고 과년한 딸을 시집보내야 하는 아버지는 섭섭하고 안쓰럽게 혼례복을 입은 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딸이 시집가는 날, 술에 취한 아버지는 죽은 아내를 닮은 여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젊은 날 패기 넘치게 부르던 해군 행진곡을 부릅니다. 집에 돌아온 등이 굽기 시작한 아버지는 휑하게 텅 빈 2층 딸의 방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술집에서 부르던 군가를 쓸쓸하게 읊조리며 딸이 사라진 부엌에서 물을 스스로 따라 마시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오즈의 영화에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노쇠함, 무기력, 자녀들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고독, 쓸쓸함을 잔잔히 표현합니다. 술을 좋아하여 영화에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는 오즈는 유작, ‘꽁치의 맛’에서도 술을 마시는 장면을 여러 번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꽁치의 맛’이지만 영화에는 정작 ‘꽁치’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꽁치의 맛》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오즈는 이 영화가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본 서민들 식탁에 늘 올라가는 ‘꽁치(秋刀魚)’의 일본어에 가을 추(秋)자가 들어있어 일상과 가을을 오버랩하기 위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오츠는 인생에서 가을을 맞이한 부모가 천천히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 ‘인생은 계속된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되새겨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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