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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Jan 14. 2023

오니(鬼)와 ‘도깨비’

다이쇼 시대의 일본을 무대로 오니와의 싸움을 그린 다크판타지, ‘귀멸의 칼날(키메츠노 야이바, 滅鬼の刃,きめつのやいば)’의 흥행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오니(鬼, おに)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일본어에는 오니를 사용하는 속담이나 표현이 참으로 다양하게 있습니다. 우리말에도 어느 분야에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사람을 “∼의 귀재”라고 하는데, 일본어로도 같은 의미로 키사이(きさい,鬼才)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숨바꼭질을 ‘오니곡꼬(鬼ごっこ)’라고 하는데, 그건 우리말의 술래를 오니(鬼)라고 하기 때문이죠. 아마도 사람들을 잡는 건 오니밖에 없으니, 오니 놀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마음을 정말 독하게 먹었다는 의미로 “마음을 오니로 만들다:코코로니오니오쯔꾸르(心に鬼を作る,こころにおにをつくる)”, 혹은 “코코로오오니니스루(心を鬼にする.こころをおににする)”라고 하고, 잔인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사람들을 향해 오니고코로(鬼心,おにごころ)를 지닌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니모네루마(鬼も寝る間,おにのいぬま)”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는데, ‘무서운 오니가 잠든 사이’라는 뜻으로 무서운 상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아이가 잠시 낮잠을 자는 틈에 뭔가를 하자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처럼 귀신의 귀(鬼) 자를 쓰는 오니는 일본어에서 오니라고 하는데 때론 무섭고 때론 친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오니는 우리말로 ‘도깨비’로 번역되지만, ‘도깨비’와 ‘오니’는 비슷하면서도 좀 다릅니다. ‘도깨비’는 순우리말이어서 한자어보다는 훨씬 친근감이 있는데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키진(鬼神,きじん)이라는 엄연한 한자어가 있지만 ‘오니(鬼)’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도깨비’라고 하면 머리에 커다란 뿔이 달리고 몸에 호피 무늬의 옷을 걸치고 가시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지금도 아이들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이런 ‘도깨비’의 모습은 1915년부터 30년간 국어 교과서에 혹부리영감의 삽화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에 정착하였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상이라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의 근거로 중국의 설화에 기반을 둔 ‘선녀와 나무꾼’, ‘혹부리영감’ 등 일본 교과서에 실린 설화를 한국 교과서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오니는 한국 ‘도깨비’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 ‘도깨비’의 이미지는 거의 찾기 어렵지만, 범위를 야차, 망량(魍魎) 등으로 확대하면 다양한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오니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시대마다 모습을 달리하지만 일반적으로 오니라고 하면 붉은색 혹은 푸른색 피부에 머리에 뿔이 하나 혹은 두 개 나 있고, 날카로운 어금니와 날카로운 손톱을 기른 세 개의 손가락, 허리에는 호랑이 가죽을 두른 9척 장신에 전신에 빳빳한 털이 난 모습으로 금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합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에서 좀 더 무시무시할 뿐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니의 모습은 근세에 들어서서 생긴 비교적 새로운 이미지입니다. 붉은색 피부에 몸에 털이 나 있고, 눈도 하나, 다리도 하나, 손가락은 세 개, 송곳이 흐트러진 머리 등 다양한 요소가 더해집니다.



이처럼 문헌 속의 오니는 반인반수, 외다리, 외눈박이, 외팔이 등 기괴하고도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이미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불교와 음양도의 악귀, 야차나 나찰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니가 일본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720) 이지만 기록만 남아있어 이미지를 알 수는 없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즈모노후도키(出雲風土記いずものふどき)』(733년경)로 눈이 하나밖에 없거나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다가 12세기 말경에 출간된 『곤자쿠모노가리리슈(今昔物語集,こんじゃくものがたりしゅう)』, 『가키죠우지(飢餓草紙,がきぞうし)』 등에는 구체적으로 오니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오늘날 일본인들이 연상하는 오니의 모습에 근접해집니다.


飢餓草紙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의 ‘도깨비’가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1740년경)에 등장합니다. 독각귀(獨脚鬼)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한자를 잘 보면 다리가 하나인 귀신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오니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무서운 오니가 이미지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각종 전란, 무사의 반란으로 귀족과 왕실이 몰락하고, 무사 정권이 등장하던 시기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호기롭게 사람들을 위협하던 오니들도 귀신보다 더 무서운 무사들에 의해 제거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는데, 왕실을 무력화시킨 무사들은 오니도 없앨 만큼 강력하니 반항하지 말라는 경고에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본 이야기 속 오니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사람의 원령, 요괴, 전설상의 신 등 어마 무시한 능력을 지닌 공포스러운 존재이며 신적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 이것들을 일으키는 신비한 힘, 미확인 생물 등은 오니로 간주했던 거죠. 즉, "무언가 모르겠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만들어 낸 존재라 할 수 있죠.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오니가 영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예도 있다는 겁니다. 영(霊)적인 오니의 정체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 자신입니다. 인간의 원한과 질투와 분노가 자기 속의 오니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경우를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 거의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만,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げんじものがたり)』(1008)에는 이런 존재가 처음 등장합니다. 사랑하는 연하의 남자가 다른 어린 여자를 사랑하게 되자, 격한 배신감과 질투심은 마음속에 살기(殺氣)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마음의 괴물, 즉 모노노케(物の怪,もののけ)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존재인 모노노케는 상대 여자를 죽이게 되죠. 모모노케라는 말은 원령공주로 번역된 모모노케히메(もののけ姫,もののけひめ)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무시무시한 표정의 가면으로 알려진 일본의 ‘한냐(般若,はんにゃ)’라는 가면도 여성이 분노와 슬픔, 질투 등 감정이 오니로 변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결혼 후 무섭게 변한 부인은 ‘오니요메(鬼嫁,おによめ)’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도깨비’보다 일본의 오니는 인간의 욕망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 존재입니다. 우리의 모습 같기도 해서 불편합니다. 어쩌면 자신과 다른 신분, 다른 외모, 꺼리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기괴하고 두려운 오니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 오니들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동굴에서 거주하며 사람들을 해코지한다고 믿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를 구별을 통한 차별을 하며 마을 밖으로, 마음 밖으로 밀어내고 들을 오니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때론 내 안의 오니를 끌어내 모노노케를 만들고 나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을 죽이고자 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멋진 슈트 차림의 잘생긴 ‘도깨비’가 아니어도 좀 어리숙하고 귀여운 ‘도깨비’가 우리 옆에 있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다 도깨비방망이라도 한번 흔들어준다면,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물론 어설픈 거짓말에도 속아 넘어갈 ‘도깨비’를 만나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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