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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Mar 28. 2023

귀멸의 칼날 속 다이쇼시대

 세계적인 ott회사인 넷플렉스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들의 상당부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일 정도로 한국영화, 한국 드라마, 한국의 배우들이 세계적으로 매우 핫합니다. 우리나라에 영화라는 신문물이 첫선을 보인 것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가족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영화회사 쇼치쿠(松竹,しょうちく)가 건립된 것도 1919년입니다.


  그런데 요즘 영화관에서는 한국영화가  일본 애니에 밀려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슬램덩크'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한국 영화관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일본애니의 부활의 신호탄은  코로나 19 확산으로 영화의 개봉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면서 영화관을 찾는 일도 거의 사라지던 2021년,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관객들의 발길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한 영화가 바로 '귀멸의 칼날(滅鬼の刃,きめつのやいば):무한열차(無限列車,むげんれっし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넉 달 가까운 장기 흥행으로 210만 명이 관람하였고, 일본에서는 약 3천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는 관객몰이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만화는 망가(マンガ, 漫畵)라고 하는데, 그 역사는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지금처럼 말풍선이 있는 그림이 아닌, 우스꽝스럽게 그린 삽화를 망가(マンガ)라고 불렀는데, 주로 풍속화가들이 만화를 그려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움직이는 형태로 만들어진 만화를 만화영화라고 부르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만화영화라고 하지 않고 아니메(アニメ)라고 합니다. 이는 animation을 일본식으로 아니메이션(アニメーション)이라고 발음하는데, 아니메이션의 앞부분만 딴 거죠.


‘귀멸의 칼날(滅鬼の刃)’은 고토우게 코요하루(吾峠 呼世晴,ごとうげ こよはる)가 2016년부터 4년간 『주간 챔프(週刊少年ジャンプ)』에 연재된 동명 장편 만화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무한열차」(無限列車, むげんれっしゃ)편을 원작으로 한 것입니다.



내용은 오니(鬼, おに)의 습격으로 가족이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은 가마토 탄지로(竈門炭治郎,かまどたんじろう)라는 소년이 혈귀로 변해버린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오니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십이귀월, 쥬니키즈키(十二鬼月,じゅうにきづき)의 하나인 엔무(魘夢, えんむ)가 지배하는 무한열차를 뛰어들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오니는 도깨비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영어로 demon으로 요괴에 가까운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의 만화, 혹은 만화영화는 코난, 아톰 등 모두 소년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독자가 대체로 중고등학생이라서겠지만, 소년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이미지 때문일 겁니다.

잘생기고 정의롭기까지 한 16살의 소년이 지닌 슬픈 서사는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 수밖에 없는데, 이 소년이 가족, 우정, 혹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로 싸운다면 독자나 관객은 무조건 응원하게 되죠. 이 영화 또한 일본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법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좀 특이하다고 느낀 것은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한 시대가 다이쇼 시대(大正時代,たいしょうじだい, 1912~1926)라는 겁니다. 우리에게 다이쇼시대는 무단정치의 시행으로 무참하게 일본에 짓밟혔던 암울한 시기였죠.



하지만 일본에서 다이쇼시대는 겨우 15년에 불과한 연호의 시대이지만 식민지에서 약탈해온 물자로 다이쇼 민주주의(大正デモクラシー), 다이쇼로망(大正ロマン)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개인의 해방, 서구의 첨단예술사조가 유행하고 대중문화가 꽃피던 시기였습니다.



1911년 도쿄에 처음으로 카페(カフェ)가 생겨, 커피(コーヒ), 양주, 양식을 먹고 마시고, 백화점(デパート)에는 서구에서 들어온 각종 소비재가 넘쳐나고, 기차를 타고 멀리 해수욕장에는 바캉스(バカンス)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시대였죠. 하지만 그렇게 밝기만 하던 시대는 아닙니다. 자연재해, 각종 분쟁과 소동,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대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대에 ‘오니(鬼)'라니? 뭔가 맞지 않습니다. 정부는 과거의 전통을 구습이라는 이름으로 타파하며, 서구의 과학기술과 사회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근대국가 수립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인데 말이죠.



그런데 만화에는 “밤에 사람을 잡아먹는 오니(夜に人を喰う鬼)”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어, 문명개화를 표방한 시기에 위화감을 조성합니다. 영화에서 그런 오니를 토벌하는 귀살대, 즉 “키사츠타이시(鬼殺隊鬼殺隊士,きさつたいし)”가 나옵니다.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가슴에 니치린토(日輪刀,にちりんとう)라는 전통적인 일본의 칼을 가슴에 품고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문명의 시대에 오니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정부는 이들 토벌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싸움은 더욱 처참하고 고독하지만 그들의 이웃과 가족을 위해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다이쇼시대는 어둠과 빛이 교차하던 시기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사라져가지만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왜 사라져야 하는지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1910년, 사회주의자들을 24명 사형시킨 데 이어 1925년에는 한일 양국에 치안보안법(治安維持法(ちあんいじほう)을 실행하여 많은 사람의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에는 사회주의자, 조선인들을 폭도로 몰아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사라져갔습니다. 그건 필경 오니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라면 그런 일을 자행하게 내버려 둬서도 안 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운 오니(鬼)니까 사람들은 눈을 감았습니다. 귀살대는 더 이상 오니가 사람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무한열차에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영화보다 더 ‘잔혹(残酷)’한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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