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일대 해변 코끼리 바위

by 쁜지 이명희

35년간의 긴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냥 무료하게 지내고 싶었다. 2025년 3월 말에 집을 나섰다. 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20여일이 지나 4월 중순이 되었다. 나는 고성 영현면 농막에서 혼자 지냈다. 주말농장으로 활용하는 농막이다.

산 아래에 있는 농막에서 혼자 지내기는 두렵다. 야생동물이 무섭고 깜깜한 어둠은 더 무섭다. 그 곳에서 나는 낮잠을 잤다. 낮잠에서 깨어나 누운 채로 ‘씨잉~ 쏴아아 휘리릭’ 4월의 바람 소리도 듣고,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트는 소리도 가만히 들었다. 심심하고 무료한 날들이었지만 고독함이 주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농막을 정리하려는데 농막 입구에 큰 돌덩어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을 일구어서 취나물이랑 참나물을 가꾸려던 참이었다. 그 돌덩이는 어지간히 볼품사나웠다. ‘뭐, 색다른 형상이라도 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코끼리 바위다.’ 그랬다. 삼천포 남일대 해변의 코끼리 바위가 보고 싶었다. 유년시절 보았던 그 ‘코끼리 바위’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딱 하루면 그 바위를 보고 올 수 있겠다. 코끼리 바위를 떠올리자 내 마음은 한층 경쾌해졌다.

코끼리 바위를 보러 나섰다. 이른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비춰왔다. 무엇이 이 방부목 데크길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혼자 걷게 했을까? “쏴아-쏴아- 철썩” 파도 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나는 바닷가에 길게 이어진 방부목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유년 시절에 걸었던 길은 울퉁불퉁하고 미끈거리는 돌길이었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햇볕은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혼자 걷는 길이 적잖이 좋았다.


마침내 해변 동쪽 끝자락에 있는 코끼리 형상을 닮은 큰 바위 근처에 다다랐다.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히면서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어코 내가 여기까지 왔네.’ 모든 것이 푸르고 하얗고 매끄럽고 반짝반짝 빛났다. 코끼리 바위는 침식작용으로 생긴 해식아치다. 절벽과 연결된 아치 모양인데 코끼리 코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코끼리 바위는 코를 길게 내려 바닷물을 들이키면서 성큼성큼 바다로 들어갈 태세를 하고 있었다. 사진에 담았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코끼리 바위 가까이에 섰다. 바닷물이 차 있을 때에서 멀찌감치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재수가 좋았다. 무턱대로 왔는데 썰물이었다. 물이 빠져 나갔기에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도 있었다. 나는 큰 바위 아래 넓적한 돌을 골라 앉아 천태만상을 보았다. 바위 곳곳에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물미역이 여기저기서 흔들거렸다. 고동도 자갈처럼 흩어져 지천이었다. 맨들맨들한 돌층계는 바다의 밑바닥까지 이어져 있었다. ‘바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스러웠다. 그랬다. 바위 주변이 천 가지의 모습과 만 가지의 형상이라 제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있었지만 하나의 바다였다. 물이 출렁이고 생명이 이어지는 바다였다. 그래서 아득했다. 지구가 태어날 때 저 코끼리 바위도 같이 태어났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저리 멋지고 당당한 중년의 모습이 되었을까? 얼마나 견디었을까?

내가 이 바위를 처음 보았을 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초등학교 3학년 봄 소풍 때였다. 이리 멋진 코끼리 바위인데 그 때의 느낌은 크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새롭고 놀랍기만 하다. 이 곳, 해수욕장은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어찌 열 살이 지나서야 처음 보게 되었을까. 유년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서 한 고개만 돌면 코끼리 바위가 있는 남일대 해변이건만…. 그랬다. 동네 어른들은 어린 우리에게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동네 밖을 나가서 행여 길을 잃을까 봐 어른들은 우리에게 허풍스럽게 말했다. ‘마을 앞 하천을 건너가면 안 된다. 하천 가에서는 애기귀신이 자기와 같이 놀아달라고 조른단다.’ ‘마을 뒷산을 혼자 가면 안 된다. 몽달귀신이 네 뒤를 닿을 듯 말 듯 하면서 피곤하게 쫒아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난 읍내 중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동네 밖을 몰랐던 게다. 그 덕에 우리는 통신이 어려웠던 시절, 미아가 되지 않았고 여태껏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코끼리 바위가 있는 남일대 해변에서 느긋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닷물은 연신 출렁거리고 물은 더 짙은 녹색으로 바뀌었다. 4월의 바다에서 나는 냄새는 더욱 짭조름했다. 파도가 한 번 더 크게 부딪혔다. 나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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