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의 부산 시위 영상을 보고
최근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부산 시위 현장 영상을 보았다. 한 남성은 조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러 가는 길이라며, 지하철을 막아선 장애인들을 향해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영상의 말미에 또 다른 남성은 "몸은 병신이어도, 정신은 병신이지 말아야지 "라고 소리치기도 하였다. 본 영상에 대한 댓글을 보니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시위에 분개하는 비장애인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자(비장애인 시민들)와 스스로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인 해당 누리꾼은 비장애인인 시민의 입장에 자연스레 공감을 하게 된다. 반면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공감이 되지 않을 것이며, 공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들은 시위하는 장애인을 완전히 타자화하여 본인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는 주류를 대변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이러한 주류의 정서를 깨부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일종의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짚어볼 점은, 전장연이 시위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2023년에 진행된 부산 전장연 시위의 구호 중 일부를 그대로 옮겨보겠다.
"장애인도 대한민국 시민으로 함께 살고 싶습니다. 장애인도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싶습니다.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받고 싶습니다. 시민 여러분, 함께해 주십시오" (출처: 비마이어 기사)
위 구호에 답이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 중 이동권을 보장받고 싶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독자 여러분은 이동권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계획할 때,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없을까에 대한 걱정을 한 적이 있는가? 물리적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그것은 시위로 인한 불편함, 혹은 배차시간이 길어 느끼는 불편함 등일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대중교통은 전적으로 장애인을 배제하고 비장애인만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머물러 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장애인석이 생겨나고 휠체어도 탑승 및 이동이 가능한 시설들이 생기고 있지만, 필자는 서울에서 지내기 시작한 2020년 이래로 단 한 번도 그러한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하는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아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동권은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당연시되고, 그렇게 사회에 고착화되어 간다.
필자가 이 문제에 대해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오늘은 비장애인이지만, 내일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원치 않는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네들의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은 오늘은 비장애인이지만 내일은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그렇게 상황이 변화하였을 때 전장연의 시위에 동참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들의 미래이다. 우리는 언제나 더 넓은 범위의 소수자성을 가질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지만 그 점을 늘 기억해야한다. 우리가 언제든 장애인의 소수자성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요절하지 않는 이상) 노인이라는 소수자성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이들은 모두 대상을 타자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