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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콜 May 17. 2022

혐오 세력에 부치는 일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며

***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차별 금지법을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한창이다. 국회를 찾아 호소하는 유명인들과, 도보 시위를 벌이는 성소수자부모협회 모습, 광장 앞에서 연일 단식투쟁 중인 활동가들까지. 법안 제정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작년 전국을 도보 행진하기도 했고 또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종 기사를 통해 이런 소식들을 접하고, 여러 단체가 연대해서 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가슴이 벅차다.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의 목소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사회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 현장에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마음도 따른다.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분류에서 공식적으로 삭제한 뒤, 매년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하 아이다호)이 되었다. 수십, 수백 년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자는 취지로 내가 있는 이 도시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이날을 기리는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 날이 주요 인터넷 매체의 달력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국제 강아지의 날, 푸른 하늘의 날, 김치의 날과 원자력의 날까지 표시된 네이버 달력에 5월 17일은 공란이다.) 하지만 이제는 성소수자 안건에 대한 유명인들의 공격적인 언행이, 메이저 언론사의 무관심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것을 알 만큼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늘이 아무것도 아닌 날일지라도, 나같은 누군가에게 오늘은 연대가 되고,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는 날이다.


그리고 마침 내일 5월 18일은 광주 민중항쟁의 기념일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독재는 이제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다. 독재의 시절이 지나가듯, 전염병의 창궐이 지나가듯,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틈에도 세계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이때 낡고 편견으로 가득한 것들은 어떻게든 역사의 부끄러운 유물이 되고야 만다. 사회는 궁극적으로 틀에 갇히지 않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세계가 발 딛고 온 방식이다. 억압하려는 자들이 아무리 발악한다 해도, 다리 아래 흔들리는 땅이 아니라 수평선 너머의 세상을 내다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흐름을 막고 싶은 사람들은 그냥 거기 멈춰 계시라. 세상은 변하고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것들은 모조리 도태될 뿐이다. 새롭고 무해한 것들이  자리를 모조리 채워나갈 것이다. 아직 낡은 것들이 가지 않아 새로운 것이  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 우리는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켜내고, 그것들과 함께 춤을 추는 방식으로 나아 것이다. 품위 있게. 우리가 계속해서 춤을   있다면,  목소리는 언젠가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그러나 혐오의 목소리는 그곳에 영영 닿지 못할 것이다. 혐오는 춤을   없으니까.


"1990년 5월 17일 세계 보건기구는 동성애를 질병 분류 목록에서 삭제했다. 세계 보건기구의 이 결정은 종교의 이름으로 죄악으로 낙인찍히고, 과학의 이름으로 질병으로 낙인찍혀온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엄한 이들로 대우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날을 기념하여 제정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은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맞서 모든 이들이 평등과 권리를 이야기하는 국제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중략) 아직 우리 앞에는 깨부숴야 할 여러 혐오와 차별들이 존재한다. 때로는 이러한 혐오 앞에 소중한 친구와 동료들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며 서로의 곁에 서고 위로를 건네는 수많은 동료들을 만나기도 했다. 질병과 범죄의 낙인을 가하는 차별과 불평등의 구조에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권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며 연대를 다지기도 했다. 우리의 삶이 곧 투쟁이기에, 앞으로의 삶에서도 우리는 때론 슬퍼하고 때론 분노하고 아파할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를 축복하며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다. 지나온 길에 무지개를 띄우고 평등의 꽃을 피우며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 2022년 5월 14일 기념집회 선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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