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에서 있을때 엄마가 충수염이 생겨 몇달을 절대안정한다며 안암동 고려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다행이 순산하였었다 지금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다
나도 세상물정 모르고 좌충우돌하고 엄마도 애기티를 못벗을 무렵에 네가 태어나 부모와 같이 커 왔다
내 필리핀 직장 파견으로 한국 출국전에 너의 돌잔치를 당겨하느라 외증조부와 외조부를 모시고 서울 이수역 갈비집에서 조촐히 모였었다. 외할아버지는 너의 진정한 후원자이셨고 정말 너를 손자보다 더 기뻐 하셧다. 이때가 한국은 1996년 IMF의 쓰라린 터널을 지날때였고, 우리 가족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아시아개발은행 (Asia Development Bank) 투자기관에서 보냈었지.
한국에 돌아와 다시 떠난 아빠의 영국 유학기간중에 우리 가족은 런던 교외의 서민 주택에 둥지를 짓고 런던의 Public 초등학교에 첫 등교한 날도 너는 씩씩하게 몇개의 영어단어로 화장실도 잘 다녀오고 같은 반 영국친구들과 잘 놀다 하교한 지혜가 대단한 아이였다.
런던의 한국인 교회 예배 후에 하루는 6-7살 너의 또래 어린아이들은 교회 홀에서 뛰어 다니며 놀기 바쁜데 너는 친구랑 놀지 않고 한쪽 구석에 놓인 아기가 있는 유모차 옆을 지켜 주었다. 얼마후 유모차에 돌아온 아이 엄마가 네게 물었단다. 왜 뛰어놀지 않고 유모차를 지키고 서 있니? 네 대답은 아기를 혼자서 두면 위험해서 내가 지키고 있었다고 대답했단다. 그 여자 집사님이 누구의 딸이냐고 한창 칭찬하고 다녀서 엄마가 뿌듯해 할정도로 너는 따뜻한 심성을 달란트로 받은 아이였었다.
아빠 취업을 따라 이주해온 홍콩에서는 Korea International School 1학년에 빈 자리가 안나서 교장 선생님의 인터뷰로 곧바로 2학년으로 등록하여 다녔고 전학간 Canadian International School에서 2학년을 두번 다녔었다.
홍콩의 Tai Koo Shing역 옆에 살던 아파트에서 일요일 아침에 네방으로 퍼진 휜 연기를 보고 아빠 방에 와 귀신이 보였다고 나를 깨워서 우리가 급히 화재 장소에서 피신할수 있었다. 우리 가족 세간 도구가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회사가 급히 마련해준 임시 주택에 이사하여 아빠 엄마가 낙담할때 울지말라고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오히려 부모를 위로해 주었다. 너는 다음날 아침 당당하게 교복없이 사복 차림으로 등교하였고 같이 따라간 엄마가 급히 학교교복을 사서 입혔는데도 전혀 너는 창피해하지 않았고 학교를 잘 다녔다. 정말 어려운 시기였는데 가족 모두 잘 이겨주었고 이때부터 아빠의 삶이 전환점을 맞고 부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중학교2학년때 홍콩의 최고 수재들이 다닌다는 Chinese International School(CIS)로 시험치고 인터뷰 하고 합격하여 전학했다. 이때 아빠 엄마는 무척 기뻣었다. 그런데 CIS에서 새 친구를 사귀고 학업을 따라가는데 처음에는 네가 힘들어 해서 마음이 아팠었다 괜히 어려운 학교로 보냈다 싶었어. 하지만 이것도 너는 잘 이겨내고 친구들도 잘 사귀고 학교 성적도 상위층 점수를 받아와서 뿌듯했다
미국 학교를 경험하고 싶어서 여름 방학때 미국의 Boston 필립스 아카데미 엑시터(Exeter)연수 프로그램에 한달갔었지. 첫 뉴욕 여행에서 타임스퀘어의 호텔에도 묵어봤고 보스톤으로 가서 랍스터도 먹어보고 너를 엑시터학교 기숙사에남겨 놓고 한달을 지내게 했는데 너는 혼자서 잘 지냈고 특히 뉴욕까지 어린아이가 버스를 타고 와서JFK공항에서 홍콩 비행기를 타는 조마조마한 일을 잘 마무리졌었다
잘 다니던 CIS를 고1마칠때 Lipochun 학교로 옮겨보겠다고 했을때 놀랐었다 굳이 왜 학교를 옮기려 하나 했었는데 이제보니 네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CIS 여름방학 프로그램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한달 배낭여행에 합류하는 동안에 Lipochun (LPC) 학교의 시험과 면접 결과를 기다렸지. 그때 LPC 면접 선생님의 질문이 너는 이미 좋은 학교에 다니는데 너를 뽑으면 중국 지방의 다른 아이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굳이 너를 뽑아야할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아주 어려운 질문였다고 기억한다. 나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요지로 잘 대답했었단다. 그리고 이때 입학시험치던 학생 소그룹에 리처드(지금의 홍콩 사위)가 있었다니 부부의 인연은 인연이다.
LPC는 대단한 축복였다. 학교 활동도 열심히 하였고 단체여행도 많이 하더라고. 2년후 미국 North Western 대학에 합격 소식을 받게되었고 그날 우리 가족이 그랜드하이얏트 호탤의 Steak House애서 저녁을 했다
LPC의 졸업식은 아빠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UN처럼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온 재학생들을 하나하나 불러 졸업장을 주는데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매우 부러웠다. 정말 좋은 고등학교였다. 더 많은 한국학생들이 지원하면 좋을텐데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아직 그 학교 이름을 잘 모른다. (언제 이 기숙사학교에 대해서 더 설명을 해야 겠다)
미국 시카고의 노스웨스턴 대학에 가보자고 가족이 모두 나서서 카나다 밴쿠버 캘거리 Banf 여행을 먼저 한후 일리노이주의 애반스톤에 가서 미국의 첫날을 지냈지. 가정집같은 호텔에서 잔 그 날의 뿌듯한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너의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 되었어.
대학 1학년 여름에는 홍콩에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리고 2학년때는 한국 PWC 회계사무소에서 인턴을 하였고 3학년 여름에는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데스밸리를 한바퀴 도는 큰 가족여행을 했었지. 이때 리차드를 우리가 버클리대학 교정에서 처음 보았구나. 좋은 인연이야. 인상이 아주 좋은 홍콩 청년 이었어.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졸업식날은 아빠 인생의 하이라이트 날이었다. 학굥의 미식 축구장에 깃발이 날리는데 네가 식장에 들어왔고 제일 앞줄에 앉아 대표 사진도 찍히고 우수 성적자로 일어서기도 하였어. 네가 알바했었다는 학교 앞 한국식당에 식사하러 가서 식당주인에게 감사 얘기도 한후, 우린 뉴욕으로 가서 진희 고모랑 뉴욕 양키 야구구장도 가보고 한인타운도 가보며 훗 날 뉴욕의 진출을 미리 준비했었지.
그이후로는 네가 커리어를 잘 쌓아서 시카고에서 Investment Bank인 William Blair, 뉴욕에서 세계최대 Fund회사인 CVC도 다니며 부모를 자랑스럽게 했고 H1b 취업비자도 운좋게 잘 풀려서 엄청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나하나 잘 풀려가는 너의 미국 드림을 응원한다
이번에 아빠의 60회 생일을 미리 축하하며 네 결혼신고 절차를 같이 하자며 동행한 10일간의 샌프란시스코 여행은 아빠에게 최고의 기억으로 남을거야. 고마워 내 딸.
네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한다.